'가천대학교'란 이름의 어색함과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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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학교'란 이름의 어색함과 불편함
  • 윤현위
  • 승인 2012.06.21 23: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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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윤현위 / 자유기고가


필자는 서울시 광진구에 산다. 외부로 답사를 가거나 인천에 올 때에는 서울외곽순환도로를 이용하는데, 이 때 항상 처음 만나는 학교가 있다. 바로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경원대학교다. 올해 봄부터였을까?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거의 다 도착하여 깜짝 놀랐다. 경원대학교 간판이 가천대학으로 되어 있었다. 학교 홍보차원에서 경원대학교는 오래전부터 외곽순환도로를 지나면 잘 보이게 간판을 걸어 두었다. 이제 더 이상 경원대학교는 존재하지 않고 가천대학교만이 존재한다. 뭐 그게 대수일까? 가톨릭대학교보다 대학정보에 앞서는 대학이 하나 더 나왔다고 큰일이라도 난 것일까?

사실 '가천'이라는 용어는 인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가천은 현재 가천대학교의 가천경원재단 이사장, 가천문화재단 이사장인 이길여 박사의 호이다. 이 호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을 지낸 류승국 박사가 지어준 것이라고 가천문화재단 홈페이지는 전한다. 중구 용동에서 처음 산부인과를 시작한 그는 1978년 의료법인 가천길병원을 설립한다. 동인천에 있는 길병원을 떠올리시길. 현재의 길병원을 생각해 보라. 다른 지역에까지 눈을 돌리지 않고 인천 자체만 봐도 그 성장세가 엄청나다.

경원대학교 이야기를 해보자. 경원대학교는 원래 경원학원의 최원영씨가 1979년에 설립한 학교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본인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어려움을 겪자, 학교에서 218억을 유용하면서 경원학원을 이길여 이사장에게 넘기게 된다. 1990년대 후반에 이런 일이 있었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길여 박사 자신이 경원대학교 총장으로 활동한다.

이름은 달랐지만 이길여 박사 휘하에는 신명여고, 가천길대학, 가천의과대학, 경원대학교가 포진하게 되면서 이렇게 교육계의 수직계열화를 이루어낸 것이다. 대학의 서열이 서울에서 거리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 한국의 교육지형에서 이런 일은 결코 작지 않다. 더군다나 양의학과 한의학을 모두 보유한 사립대학재단은 여기가 유일하다.

그런데 교명까지 변경한 건 왜 그랬을까? 30년이나 넘게 써온 경원이란 교명을 굳이 자신의 호로 바꾼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물론 자신이 원래 이사장으로 있던 재단의 이름이니 그 이름으로 변경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결국은 같은 이야기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사립대학이 국공립대학보다 훨씬 많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사립학교법 개정 때 몸부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립대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는 생각보다 강하다.

사립학교는 개인재단 사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상당부분은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교육의 가치는 결국 공적의 영역이고 공공의 가치이다. 경원대학교라고 했을 때 이미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길여 박사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린다. 인수한 지도 10년이 넘어간다. 지방에까지 알려진 전국구 인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인천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서는 그렇다. 개인이 만든 재단이나 단체에 자신의 호를 사용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30년이나 운영된 학교이며 수십 만 명이 졸업을 한 학교다.

교육은, 그리고 학교의 경우 물리적 자산에 대한 소유는 개인이 할 수 있지만 결국 여러 동문과 재학생들이 주인이다. 오랜 시간 다양한 주체들의 교육이라는 사회적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학교가 존재하고, 경원대학교라는 이름이 이들을 연결해왔다. 2011년에 경원대학교 9대 동문회는 교명변경에 대해 소송을 냈으나 올해 4월에 패소했다. 재판부는 대학의 통폐합과 교명변경은 외부의견의 수렴대상이 아니며 학교재단 재량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제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렇게 가천대학으로 되어 가고 있다.

이 땅의 사립대학교 중에 개인의 이름이나 호를 이용한 경우가 또 있을까 궁금해졌다. 없지는 않다. 광운대학교는 1934년 조선무선강습에서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이 초기 설립자가 조광운 박사이다. 1937년도에 상명여고로 출발한 상명대학교는 설립자 이름이 배상명이다. 모두 해방되기도 전 일이다. 근래에 들어서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인하대학교는 한진그룹에서 소유하고 있는 사립대학이다. 그래서 한진그룹에서 설립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사실 인하대학교는 1900년대 초부터 인천에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노동이주를 한 분들이 성금을 모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달해서 만든 학교다. 1970년대에 한진그룹이 인하대를 소유했지만 학교 이름이 바뀌진 않았다. 인하대학교 옆에는 정석항공과학고등학교라고 있다. 역시 인하대와 같은 재단이다. 정석은 한진그룹 설립자인 조중훈 회장의 호다. 2000년대 넘어서 인하대학교는 도서관을 하나 더 신축했는데, 그 도서관 이름을 정석학술정보관으로 했다. 재벌도 학교를 소유했다고 해서 교명을 바꾸진 않았다. 최근에 소유주가 두산으로 바뀐 중앙대학교도 여전히 중앙대학교 아닌가.

가천의과대학과 경원대학교를 하나로 만드는 과정에서 학교를 인수한 쪽에서야 자신들의 재단 이름, 이사장 호를 대학으로 하는 게 당연한 일일 수도 있고 희망사항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명 변경은 학교가 개인의 재산, 특정 재단의 소유라는 의식이 깔려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대학은 대학에 속해 있는 모든 구성원의 것이다. 여기에는 동문들도 포함될 수 있고 지역사회도 포함될 수 있겠다. 여전히 아쉽다. 이 글은 이길여 이사장을 폄하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경원대학교로 돌아가지는 글도 아니다. 대학은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다니는 학교고, 한국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사립대학이 많은 이 땅에서 재단이 바뀌는 경우는 종종 있어 왔다. 이번 일을 통해서 학교와 교육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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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2012-06-22 20:31:46
똑 같은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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