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고 품위 있는 '죽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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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고 품위 있는 '죽음의 모습'
  • 김정아
  • 승인 2012.06.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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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김정아 / 온가정의원 원장


어르신과 예비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천남구노인문화센터의 '죽음준비학교-아름다운 인생 beautiful life'에 강의를 나간 지 벌써 3년째이다. 인천에서는 처음으로 'well dying'을 준비하는 전문적 과정이 햇살노인전문기관과 여러 방면으로 연대하고 있는 남구노인문화센터에 개설되니, 의료부문은 당연히 우리가 맡아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어르신과 죽음을 둘러싼 공부와 토론을 하는 게 여간 재미있지 않다. 의료 강의 내용은 '품위 있는 죽음, 존엄사'와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해서인데, 지난 시간 만났던 어르신(여든살은 족히 넘은)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 마누라가 2년 전에 죽었는데, 나는 죽기 며칠 전까지도 병명을 몰랐어. 마누라가 병원을 여러 해 다녔는데, 글쎄 간경화였다는 거야. 인턴이라는 의사가 갑자기 우리한테 마누라가 며칠도 못 살 것 같다는 거야. 간경화가 심해져서 콩팥이 망가져서 오줌이 안 만들어진다고. 그러면서 중환자실로 데리고 갔어. 3일인가 중환자실에 있었지 아마. 그날 마누라 면회를 갔는데, 며칠도 못 살 사람 같지 않게 정신은 멀쩡해가지고 그냥 침대에 앉아 있는 거야. 주변에는 정신도 못 차리고 뭘 주렁주렁 단 사람들 투성이고 말이지. 멀거니 그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앉아 있는 거야. 10분도 안 봤는데, 면회시간 끝났다고 나가라고 자꾸 쫓아내는 거지. 하는 수 없이 '나 또 올게' 하고 나가려고 하니까 마누라가 다리로 침대를 확 치면서 신경질을 내는 거야. 그걸 억지로 떼어놓고 나오는데, 마음이 너무 짠하고 그랬지. 아 그러고 40분인지 만에 빨리 오라고 해서 가보니까 그새 죽었더라구. 의사들은 우리 마누라가 언제 죽을지 다 알더라구. 아마 시간도 알았을 것 같아. 그러면 그 큰 병원 어디 구석에 창고 같은 데라도 좋으니까 식구랑 좀 같이 있게 해주지. 그 사람 정신 멀쩡해 가지구 외롭게 혼자 죽었잖아. 뭐라도 할 말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손이라도 좀 잡고 있고 응? 죽을 병이면 죽어야지, 나이도 칠십아홉인데, 그래도 옆에 나라두 있었으면 덜 무섭고 덜 외로웠을 것 아니야. 나를 얼마나 원망했겠어. 너무 서운해 그 의사들이…. 아마 나 죽기 전까지는 이 서운함은 안 풀릴 것 같아."

정말 그렇다. 그렇게 살려달라고 매달린 것도 아니고 그냥 죽을 때까지 같이 있게 해 줬으면, 창고 같은 곳이라도 방  하나 내줬으면 하는 소원이 뭐 그리 어렵겠나 싶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재 의료제도에서는 보호자와 함께 있는 임종실 하나 내 주는 게 어렵다. 그래도 그 부인은 며칠 남지 않은 목숨에 인공호흡기는 하지 않고 그나마 자연스럽게 돌아가셨으니, 어르신 마음에 큰 상처는 덜 남기셨는지도 모르겠다.

2007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암의 말기에서 임종 직전이 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경우는 17.6%에 이르고 인공호흡기를 적용한 경우는 16.5%였다. 어르신 말씀대로 임종 환자를 진료한 의사는 이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타성에 젖어서, 혹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생이 며칠 혹은 몇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의료적인 도움을 받고 싶어할까?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하다. '고통에서부터 자유롭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표현한다. 거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족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을 추가하는 게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

나를 키워 준 어머니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 매일 20개도 더 되는 파킨슨병에 관한 약을 25년 동안이나 성실히 복용하셔도 점점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시더니, 그래도 당신이 익숙한 집에서 돌아가셨다. 의사로서 환자들을 오래오래 살게 해드리고 싶고, 죽음이 두려워 수의조차 마련하지 않으셨던 우리 어머니도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다. 막내딸과 약속한 대로 나도 100세까지 살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삶이 하루하루 지나다가 자연스레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어머니 죽음을 보면서 새삼 명료하게 알게 되었다.
 
'죽음준비학교'에서 만났던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보면, 의료적 상황이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가 아주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많은 보통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하고 있으나, 도리어 진료현장에서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어머니도 집에서 돌아가셨지만, 병원으로 가자는 오빠의 말을 따라 죽음에 대한 원만한 수용과 장례절차를 위해 어머니를 응급실로 모시고 갔다. 의사에게 어머니가 숨이 끊어진 지 최소한 20분은 넘은 것 같다고 말했는데도 상태에 대한 이학적 검사를 하기 전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보았다. 의사 개인의 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현 의료체계 내 대응방식이 아닌가 싶었다.

죽음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의사와 환자, 보호자가 머리를 맞대고 심사숙고하여 선택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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