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동안이나 붉은 꽃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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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동안이나 붉은 꽃 피운다
  • 정충화
  • 승인 2012.07.23 22: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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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화의 식물과 친구하기] 배롱나무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1960년대 초에 발표됐다는 대중가요 '노랫가락 차차차'의 한 소절이다. 이 노랫말에 함의된 '삶의 무상성'이라는 관념적 의미를 지워버리고 앞부분을 풀이하자면 "꽃이 제아무리 붉어야 열흘을 넘기기 어렵다"라는 뜻일 게다. 그런데 이 노랫말이 무색하게도 한여름 된더위 속에서 무려 백일 동안이나 붉은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7월에 피기 시작해 9월까지 붉은 꽃을 피워서 나무백일홍(木百日紅)으로도 불리는 배롱나무가 그것이다. 초본식물 가운데 '백일홍'이라는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이 있긴 하지만 꽃이 오래 간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두 식물 간에 상관관계가 없다.  

사실 백일을 훨씬 넘기고도 꽃이 지지 않는 식물은 많다. 무려 천일 동안이나 붉은 꽃빛을 유지한다는 천일홍도 그 하나다. 공원 화단에 많이 심는 천일홍은 볼 때마다 메마른 느낌의 조화를 보는 것 같다. 거리 화단에 많이 심는 페튜니아도 초여름부터 서리가 내릴 무렵까지 오래도록 꽃을 피우지만, 이 꽃 역시 정이 붙질 않는다. 그런데 오래 가는 꽃치고 시종 아름다움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노추가 드러난 꽃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시구가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 중)   
    
원산지가 중국으로 알려진 배롱나무는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이다. 교목이긴 하되 키가 작은 편에 속하며 잔가지가 많다. 줄기는 연붉은 갈색을 띠며 비늘처럼 껍질이 벗겨져 매끄러운 상태가 된다. 잎은 타원형으로 표면에 윤이 난다. 꽃은 7∼9월에 피며 가지 끝에서 원추꽃차례로 촘촘히 달린다. 갈라진 6개의 꽃잎과 꽃받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꽃잎이 파마머리처럼 뽀글뽀글한 게 특징이다. 꽃 빛은 대부분 붉거나 홍자색이며 드물게 흰 꽃이 피는 나무도 있다. 열매는 10월경 익는다. 

꽃이 오래 가는 배롱나무는 관상용으로 적합하여 공원이나 사찰, 도로변 조경수로 많이 심는다. 목재로서 활용가치도 높아 조각품, 장식품의 소재로 쓰인다. 배롱나무 꽃은 차로 달여 마시고 음식 재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한방에서는 자미엽이라 부르는 잎을 백일해와 기침 약재로, 자미근이라 부르는 뿌리를 각종 여성질환을 다스리는 약재로 사용해왔다고 한다. 매끄러운 나무껍질을 긁으면 간지럼을 탄다 하여 충청 지역에서는 간즈름나무, 간지럼나무로 부르며 목백일홍(木百日紅), 자미화(紫薇花)로도 불린다. 

배롱나무는 중부 이남 지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전주-남원 간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변 화단 곳곳에서 이 나무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순천 송광사, 고창 선운사, 부안 개암사, 강진 백련사, 순창 강천사, 서산 개심사 등 이름만 들어도 울컥 그리움이 솟는 남녘 사찰에 가면 어느 곳에서나 배롱나무 한두 그루쯤은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사찰에 배롱나무가 많은 것은 매끈한 나무껍질처럼 승려와 불자들이 세속의 탐욕이나 미련을 모두 벗어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비들 또한 나무껍질에서 청렴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찾아내고 이 나무를 애호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그 매끄러운 표피가 여인의 나신을 떠오르게 한다 하여 여염집 안마당에 심는 것을 금기시했다고 한다. 시각에 따라 사랑채와 안채에 나무를 심는 기준이 이렇게 달랐으니 다른 면에서는 또 얼마나 그 편차가 컸을까 싶다.    

배롱나무 꽃은 사실 하나의 개체가 100일 동안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원추형 꽃대에서 하나의 꽃잎이 시들면 곁에 있던 다른 꽃잎이 터지고 그렇게 개개의 꽃잎이 피고 지는 가운데 꽃 전체가 외관상 붉은빛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개개의 삶도 그들 꽃잎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같은 공동체적 삶이 조화와 공존을 유지하는 데 어느 일방의 희생이 강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갈수록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려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불협화음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강자이건 약자이건, 부유층이건 하층민이건 간에 자연과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그저 극미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그처럼 하찮은 것들이 분수를 모르고 날뛰고 있으니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글/사진 : 정충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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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 2012-07-24 08:13:37
사물을.통한 삶의 통찰이.보이는 글입니다. 오늘.아침 욕심을.버리고 하루를 살아가게 일러.준.글쓴이에게 고마움을.전합니다. 한 독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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