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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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예찬
  • 장현정
  • 승인 2012.07.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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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 상담팀장


서른 살이 되던 첫 해에 저는 친구들과 '기념파티'를 열었습니다. 왠지 의식을 치러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었는데, 그만큼 비장했습니다.

그 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계란 한판", 꺾였네", "이제 시집가야지…"등등 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서른 살의 숨은 의미는  "나이를 먹어간다"는 뜻 같습니다.

처음 서른 살을 앞두고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20대의 풋풋함은 사라지고 젊은이들에게 주어지는 많은 기회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제한이 있는 시험, 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조건 등을 볼 때마다 우울해졌습니다. 서른 살이나 되었는데 결혼도 하지 않고, 그냥저냥 시시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이 실패한 것만 같았습니다. 젊고 예쁘고 싱그러운 아이들이 나를 밀쳐내고 더 사랑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른 살이 되면 지금보다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스물아홉의 많은 청년들의 고민일 것입니다. 나이가 서른이나 되었으니 "빨리 무언가를 해 보이라"는 어른들의 메시지 때문이기도 합니다.

Erikson이라는 심리사회이론을 주장한 학자는 24세부터 54세까지를 성인중기(또는 중년기)라고 구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기고, 아이를 양육하고, 다른 사람을 돌보고 생산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시기라고 하였습니다.

서른 살은 자아정체감의 혼란을 느끼는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고 생산성을 향해 에너지를 투입하기 시작하고,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시기입니다. 부모로서 가정을 책임지기 시작하고 직장에서도 숙련되기 시작하며 사회적 책임도 점점 커져갑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그 결정에 대해 스스로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독립이 늦은 우리나라 청년들의 사춘기가 대학시절 이후까지 지속된다고 보았을 때, 서른 살은 사춘기의 소년소녀와 성인의 사이에 끼어 있는 시기로 성인이 되기 시작하는 시기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어른이 되는 시기인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해보자면, 서른 살의 저는 스무살 때의 저보다 훨씬 더 자신감이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고,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주장하거나 요구할 줄 알며 필요할 때는 양보도 하고 협상도 하며 관계를 이끌어 갑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남을 덜 미워하며 내 높은 기대를 조정하거나 포기할 줄도 압니다. 직업의 소중함을 알고 일에서의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줄 알고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하기도 합니다. 혼자 밥도 잘 먹고 혼자 영화를 보기도 하고 원할 때는 혼자 여행을 떠날 줄도 압니다. 내가 원할 때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습니다.

스무 살을 그리워할 때도 있지만, 그때의 저보다 서른 살의 제가 더 좋습니다. 또 어제의 저보다 지금의 제가 더 좋습니다. 아마도 내일의 저도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성장과 성숙을 받아들이는 것은 건강한 자아의 시작입니다. 심리치료에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을 통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서른 살이 된 우리 자녀들에게 그들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들을 격려하고 지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자신이 원하는 결정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지켜보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재촉하지 말고 믿어주고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든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나이라고 가능성을 열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른 살의 청년들은 소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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