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주왕산 대전사 - 바위가 아름다운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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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주왕산 대전사 - 바위가 아름다운 사찰
  • 이창희
  • 승인 2012.07.30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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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수풍물] 바위와 사찰과의 만남



청송 주왕산 대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72년(신라 문무왕 12) 의상이 세웠다는 설과 919년(고려 태조 2) 눌옹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절이 있는 산과 절의 이름은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주왕내기》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이 붙였다고 한다. 또한 신라의 주원왕이 수도했던 산이라서 주왕산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과 주왕암이 있다.

이 중 백련암은 주왕의 딸 이름에서 유래하며, 옛날에는 이 암자에 큰 종이 걸려 있어 아침 저녁으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고 하나 지금은 걸려 있지 않다. 주왕암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주방사로 추정되며, 나한전과 가학루·산령각 등이 남아 있다.

주요 건물로는 보광전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과 사적비·부도 등이 남아 있다. 이 중 보광전은 정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이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 보광전 앞의 석탑은 근처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짜맞춘 것이다.

절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 우물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본래 이 절에서는 부처에게 올리는 물을 매일 냇가까지 가서 길어오곤 하였다. 이를 귀찮게 여긴 승려들이 조선 중기에 앞뜰에 우물을 파고 그 물을 길어서 청수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불이 나서 전각이 불에 타고 말았다.

뒷날 한 도사가 와서 불이 난 이유를 설명하기를, 이 절의 지세는 배가 바다에 떠서 다니는 부선형인데 우물을 판 것은 마치 배 바닥에 구멍을 낸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다시 우물을 메웠다 한다. 이밖에 노루가 우물에 빠져 죽은 뒤 메웠다는 설도 있다. 이 물을 마신 승려들의 힘이 넘쳐 난폭해지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많아지자 메웠
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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