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문화 토양을 바꿔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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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문화 토양을 바꿔나간다"
  • 이장열
  • 승인 2012.08.05 2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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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대 사람들 톡톡 인터뷰]②부평아트센터 조경환 관장
부평아트센터 조경환 관장
취재 : 이장열 기자

휑한 관장실 옆 창문으로 신호등이 보인다. 빨간불이었다가 녹색불로 연신 바뀌는 그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고, 차들도 멈춰서는 광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2층 관장실에서 조경환(53) 관장을 마주했다. 기자 눈에는 빨간불과 녹색불이 조 관장 얼굴로 여러 차례 '오버랩'되어 들어 왔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사실 이것 말고는 없습니다. 24시간 머리 속에서는 관객과 만나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때로 주위에서 일 중독자가 아닌가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3년차 부평아트센터 관장에게 휴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 관장과 마주 앉아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탁자 위에 놓인 종이에 뭔가를 그리는 습관을 지닌듯 했다. 그와 함께 수첩과 메모는 늘 한 몸으로 따라 다녔다.
 
조 관장과 인터뷰는 7월 27일과 31일에 걸쳐 부평아트센터 관장실에서 진행됐다. 인터뷰 시간을 따지면 4시간 정도다.
 
조 관장은 기자에게 인터뷰 한 번으로 어떻게 그 사람과 사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부터 민감한 반응이다. 사태를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평가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기자는 후자에 무게를 둔 발언으로 여겼다.
 
2010년 4월 부평아트센터가 공식 개관한 뒤, 3년이 지나가는 동안 지역사회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는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내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두는 시점이다.
 
조 관장 스스로 몸 속에 '시간 관념'이 체화돼 있다. 지역사회 실적과 평가에 대한 부담감이 고스란히 기자에게 전파된 셈이다.
 
현재 지역에서 회자되는 '말과 글 세계'에 부평아트센터가 갇혀 있다는 생각에서 시간에 구속되는 항들인 그가 어디 학교 출신인지, 고향이 어딘지, 그리고 전 경력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현 부평아트센터 모습을 끄집어 내려는 기자의 경솔함과 욕심을 지적하는 듯 했다. 한편 시간에 나를 대입시켜도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속내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한 켠에 자리잡았다.
 
'24문화편의점', 부평아트센터
 
-부평아트센터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조 관장은 말 보따리가 풀리는 듯 거침없이 말을 건넸다.)
 
오는 9월에 예술전문법인이 되면, 사업비에 대해 후원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후원금을 받을 수 없었죠.. 현재 구상하고 있는 지역문화 확대프로그램들을 펼쳐낼 동력이 생길 수 있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후반기에는 시민합창단을 구성해 뮤지컬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시민참여프로그램을 기획해 준비 중입니다.
 
-참여를 새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 센터가 세워지는 출발점이 시민 참여가 아닌가요?
 
센터가 처음 개관할 때, 창작자 중심으로 지역문화예술가들에게 개방을 우선시하는 방향이었습니다. 예술가의 참여가 중심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10 포커스인 부평'이었습니다. 지역예술단체 10개 참여해 기획한 개관 전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역예술가들이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전문적인 시스템의 부재, 마케팅 결핍, 예술혼의 미흡 등으로 결국 지역민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실패했습니다. 지역문화예술들과 공연 기회를 갖는 것은 부평아트센터가 나아갈 목표이지만, 예술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면 지역예술인과 부평아트센터 모두 자멸하는 길이라고 새삼 느꼈습니다.
 
-아트센터가 맡아야 할 몫은 무엇인가?
 
'포커스 인 부평'을 준비하면서 지역예술단체가 기획서를 들고 오는 경우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부평아트센터가 지역예술의 대중성과 예술성을 담보할 수 있는 매니지먼트 구실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케팅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인력을 갖춘 아트센터가 지역예술공연 기획부터 참여해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 촉매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또 다른 중요한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십정동 동네 아저씨'가 됐
 
-이 방식은 지역예술단체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텐테.
 
당연히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 지점이 가장 큰 문제이고,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바로 '인천을 알면 얼마나 아느냐'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3대가 인천을 살아야 인천사람이라고 하는 어느 예술가의 말에서 숨이 턱 막힐 정도였습니다.
 
이런 말은 '저항'으로 느껴졌고, 이 말에 주눅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최면을 걸었습니다. 언제까지는 제 진심을 이해하겠지, 땀이 이런 오해들을 한 순간에 날려 버릴 것이라는 최면 말입니다.
 
공식 개관하기 6개월 전부터 센터 인근 암자에 혼자 기거하면서, 정말 이런 말들이 정말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혼자라는 생각이 밤마다 혼자 있는 방에서 가득 차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런데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맷집도 생겼고, 또 이 곳에 산 지 3년째입니다. 십정동 주민으로 산지가 말입니다. 이제는 제 앞에서 이런 말들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잠은 잘 옵니다.
 
-인천에 왜 왔는가?
 
제가 한 번씩 생각하는 질문입니다. 내가 왜 인천에서 와서 '죽을 뚱 살 뚱' 모르고 일에 미쳐 있는가, 다른 지역에서도 그렇게 했을까, 하고 자신에게 반문을 해 봅니다.
 
아마도 다른 데에 가서도 일에 미치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인천이 다른 지역에서는 갖고 있지 않은, 강점을 가졌다는 것에서 비전이 있다고 생각한 일이 제 에너지로 분출되는 것 같습니다. 인천에 국제공항이 있다는 점에서, 인천문화의 국제성을 발견한 점입니다.
 
서울에도 없는 국제공항의 존재, 문화예술의 국제교류 장으로서 인천이 발돋음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발견이 인천에 오게 한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천과의 인연은 이렇습니다. 26년 전 제 친구가 십정동 한센나환자촌과 양계장이 있던 혜광학교 사감으로 있을 때, 자주 드나들었던 데가 바로 이 곳입니다. 그런 제가 다시 바로 이 곳에서 일할 줄 꿈에도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지난달 열린, 2012 한-일 어린이연극캠프 '챌린지 연극' 연습

문화
토양을 바꾸는 촉매체
 
-앞으로 인천문화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이 터가 옛 기무사 자리였고, 1980년 김종필씨가 수사를 받았던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지금은 문화공간으로 확 바꿨습니다. 변화라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터에 부평아트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인천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로서 부평아트센터는 자리매김될 것입니다.
 
지역예술공연에 팬이 생기고, 수익이 나고, 지역민들이 찾아와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담대한 기획력을 발휘하는 일에 부평아트센터는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무척 힘듭니다. 성공한 사례를 보여주는 수밖에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입주 예술단체 극단 '십년 후'의 공연 작품을 기획단계부터 부평아트센터가 적극적으로 매니지먼트 역할을 해 지역공연예술단체와 지역 배우들이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장기 공연으로 이어지도록 한 성공 사례가 지역에 전파되면서, 이런 방식에 일었던 부정적인 시선들은 다소 없어진 상태입니다.
 
지역예술, 시장 안으로
 
-지역문화는 '육성'해야 하는 측면도 있지 않는가   

사실 지역의 문화를 육성해야 몫이 아직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역 문화가 평가에서 무풍지대로 계속 남아 있겠다는 발상은 지역 문화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문화도 마케팅 관점을 도입하는 첫 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지방정부가 지원을 하고, 간섭을 하지 않는 문화정책을 기본으로 해서, 지역의 마케팅 기획력을 갖고 있는 부평아트센터와 같은 예술전문기관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은 앞뒤가 없고 순위가 없는 대등한 관계로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예술, 정치적 타협은 금물
 
-문화가 행정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요?
 
어느 지역에서나 예술 분야는 정치와 행정에 약한 고리에 놓여 있습니다. 자생력이 부족해서 정치와 행정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과 행정가는 지역예술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에 가치 판단을 할 문제는 아니고, 늘 예술인들이 긴장을 해서 그 부분들을 줄여 나가는 것이 합리적 방법입니다. 늘 배척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에게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책에서 배운 것도 있지만, 예술행정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체험적으로 터득한 원칙은 정치적 타협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당하게 하는 것의 다른 말입니다. 적당하게 하는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면, 예술인들의 혼은 죽게 마련이고, 그것을 지켜본 관객들은 단박에 알고 다시는 극장을 찾지 않습니다. 이런 타협들이 결국에는 지역예술들을 정체시키고 죽게 만든  요인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몫은 행정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몫입니다.
 
'그림자 비용'까지 생각해야
  
-그럼, 지역문화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지역 예술의 가장 큰 취약점은 마케팅입니다. 기획자는 성공을 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입니다. 기획자가 나서서 까다롭게 해야 예술공연이 성공합니다. 마케팅은 단순한 홍보가 아닙니다. 뻥튀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용이 부실하면 마케팅은 거짓이 되고, 신뢰가 무너집니다. 따라서 마케팅 부분은 내용의 질을 담보하는 역할까지 책임지는 영역입니다. 예술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대중적 성공도 이끌 수 없습니다.
 
단순한 보여주는 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술의 질을 관객들에게 드러낼 때 관객들은 교통비, 식사비 등의 '그림자 비용'까지 지불해서까지 극장으로 찾아옵니다.
 
나를 잊고, 부평아트센터만 기억하라.

-부평아트센터는 조경환에게 무엇인가?
 
제 일터입니다. 제가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일입니다. 아트센터에 많은 사람이 와서 즐겁게 예술의 감동을 받아 돌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모든 피로가 싹 가십니다.
 
제 나이 33세 때, 두산 연강홀 극장장으로 일하면서부터 예술행정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늘 일하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옆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왔습니다. 뒤를 돌아볼 재주가 없었고, 여유도 없었던 탓입니다.
 
제 나이 이제 오십을 넘어서까지 부평초처럼 예술공간을 떠도는 인생에서, 부평에 자리잡고 일하는 모습을 한 번 돌아보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구두를 신고 센터 곳곳을 누빕니다만.(웃음)
 
3년 전 관장으로 부임하면서 십정동으로 이사를 하고, 아침 저녁으로 걸어서 출퇴근을 합니다. 시간이 나면 어슬렁 어슬렁 거리면서 십정동 골목길을 쏘다니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동네 사람들과도 안면을 트고, 정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일본 기타쿠슈 아이들이 연극캠프 마지막 날에 아이들에게 한 말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나를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2년 여름, 인천과 부평아트센터는 희미하지만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것이 제 바람입니다."
 
조 관장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런데 기자가 찍은 최 관장 얼굴에서는 죄다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며칠 전 일본 기타큐슈 어린이들이 아트센터에서 4박5일 동안 머물렸던 여파가 조 관장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이 프로그램으로 직접 일본에 가서 그들과 함께 다시 입국하는 등의 일정을 소화했고, 이 프로그램이 마무리될 때까지 조 관장은 일과가 끝난 뒤에도 다음 일정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늦게까지 한 탓이다.
 
그리고 그를 두 번 만났다. 두 번째 만남에서 첫 인터뷰에서 받은 인상과 느낌에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뒤 무심코 한 말이 내내 귓전에서 맴돌았다.
 
"내게 딸 아이가 하나 있는데, 대학 4학년이다. 졸업하기 전에 아빠와 꼭 한번 여행을 가고 싶다고, 알바로 여행비를 벌었다고 함께 가자는 전화를 오늘 받았다."
 
기자가 "바빠서 못 가시겠다"고 하자, 그는 잠시 멈칫하며  "그  전화 받고 내내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해가 진 저녁 무렵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 관장은 낡은 구두를 이끌고, 뚜벅뚜벅 다시 관장실로 발길을 옮겼다. 지나가는 도중에 동네 마트에 들러 담배 한 갑을 구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른바 '골초' 수준이다.
 
마트 벽에 붙은 공연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녹색불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자신의 일터로 걸어가는 모습이 천상 십정동 동네 아저씨다. 한 쪽으로 기운 어깨가 눈에 밟힌다.
  
-그럼, 지역문화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지역 예술의 가장 큰 취약점은 마케팅입니다. 기획자는 성공을 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입니다. 기획자가 나서서 까다롭게 해야 예술공연이 성공합니다. 마케팅은 단순한 홍보가 아닙니다. 뻥튀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용이 부실하면 마케팅은 거짓이 되고, 신뢰가 무너집니다. 따라서 마케팅 부분은 내용의 질을 담보하는 역할까지 책임지는 영역입니다. 예술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대중적 성공도 이끌 수 없습니다.
 
단순한 보여주는 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술의 질을 관객들에게 드러낼 때 관객들은 교통비, 식사비 등의 '그림자 비용'까지 지불해서까지 극장으로 찾아옵니다.
 
나를 잊고, 부평아트센터만 기억하라.

-부평아트센터는 조경환에게 무엇인가?
 
제 일터입니다. 제가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일입니다. 아트센터에 많은 사람이 와서 즐겁게 예술의 감동을 받아 돌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모든 피로가 싹 가십니다.
 
제 나이 33세 때, 두산 연강홀 극장장으로 일하면서부터 예술행정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늘 일하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옆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왔습니다. 뒤를 돌아볼 재주가 없었고, 여유도 없었던 탓입니다.
 
제 나이 이제 오십을 넘어서까지 부평초처럼 예술공간을 떠도는 인생에서, 부평에 자리잡고 일하는 모습을 한 번 돌아보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구두를 신고 센터 곳곳을 누빕니다만.(웃음)
 
3년 전 관장으로 부임하면서 십정동으로 이사를 하고, 아침 저녁으로 걸어서 출퇴근을 합니다. 시간이 나면 어슬렁 어슬렁 거리면서 십정동 골목길을 쏘다니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동네 사람들과도 안면을 트고, 정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일본 기타쿠슈 아이들이 연극캠프 마지막 날에 아이들에게 한 말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나를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2년 여름, 인천과 부평아트센터는 희미하지만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것이 제 바람입니다."
 
조 관장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런데 기자가 찍은 최 관장 얼굴에서는 죄다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며칠 전 일본 기타큐슈 어린이들이 아트센터에서 4박5일 동안 머물렸던 여파가 조 관장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이 프로그램으로 직접 일본에 가서 그들과 함께 다시 입국하는 등의 일정을 소화했고, 이 프로그램이 마무리될 때까지 조 관장은 일과가 끝난 뒤에도 다음 일정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늦게까지 한 탓이다.
 
그리고 그를 두 번 만났다. 두 번째 만남에서 첫 인터뷰에서 받은 인상과 느낌에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뒤 무심코 한 말이 내내 귓전에서 맴돌았다.
 
"내게 딸 아이가 하나 있는데, 대학 4학년이다. 졸업하기 전에 아빠와 꼭 한번 여행을 가고 싶다고, 알바로 여행비를 벌었다고 함께 가자는 전화를 오늘 받았다."
 
기자가 "바빠서 못 가시겠다"고 하자, 그는 잠시 멈칫하며  "그  전화 받고 내내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해가 진 저녁 무렵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 관장은 낡은 구두를 이끌고, 뚜벅뚜벅 다시 관장실로 발길을 옮겼다. 지나가는 도중에 동네 마트에 들러 담배 한 갑을 구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른바 '골초' 수준이다.
 
마트 벽에 붙은 공연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녹색불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자신의 일터로 걸어가는 모습이 천상 십정동 동네 아저씨다. 한 쪽으로 기운 어깨가 눈에 밟힌다.
 
-문화가 행정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요?
 
어느 지역에서나 예술 분야는 정치와 행정에 약한 고리에 놓여 있습니다. 자생력이 부족해서 정치와 행정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과 행정가는 지역예술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에 가치 판단을 할 문제는 아니고, 늘 예술인들이 긴장을 해서 그 부분들을 줄여 나가는 것이 합리적 방법입니다. 늘 배척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에게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책에서 배운 것도 있지만, 예술행정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체험적으로 터득한 원칙은 정치적 타협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당하게 하는 것의 다른 말입니다. 적당하게 하는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면, 예술인들의 혼은 죽게 마련이고, 그것을 지켜본 관객들은 단박에 알고 다시는 극장을 찾지 않습니다. 이런 타협들이 결국에는 지역예술들을 정체시키고 죽게 만든  요인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몫은 행정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몫입니다.
 
'그림자 비용'까지 생각해야
  
-그럼, 지역문화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지역 예술의 가장 큰 취약점은 마케팅입니다. 기획자는 성공을 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입니다. 기획자가 나서서 까다롭게 해야 예술공연이 성공합니다. 마케팅은 단순한 홍보가 아닙니다. 뻥튀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용이 부실하면 마케팅은 거짓이 되고, 신뢰가 무너집니다. 따라서 마케팅 부분은 내용의 질을 담보하는 역할까지 책임지는 영역입니다. 예술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대중적 성공도 이끌 수 없습니다.
 
단순한 보여주는 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술의 질을 관객들에게 드러낼 때 관객들은 교통비, 식사비 등의 '그림자 비용'까지 지불해서까지 극장으로 찾아옵니다.
 
나를 잊고, 부평아트센터만 기억하라.

-부평아트센터는 조경환에게 무엇인가?
 
제 일터입니다. 제가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일입니다. 아트센터에 많은 사람이 와서 즐겁게 예술의 감동을 받아 돌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모든 피로가 싹 가십니다.
 
제 나이 33세 때, 두산 연강홀 극장장으로 일하면서부터 예술행정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늘 일하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옆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왔습니다. 뒤를 돌아볼 재주가 없었고, 여유도 없었던 탓입니다.
 
제 나이 이제 오십을 넘어서까지 부평초처럼 예술공간을 떠도는 인생에서, 부평에 자리잡고 일하는 모습을 한 번 돌아보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구두를 신고 센터 곳곳을 누빕니다만.(웃음)
 
3년 전 관장으로 부임하면서 십정동으로 이사를 하고, 아침 저녁으로 걸어서 출퇴근을 합니다. 시간이 나면 어슬렁 어슬렁 거리면서 십정동 골목길을 쏘다니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동네 사람들과도 안면을 트고, 정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일본 기타쿠슈 아이들이 연극캠프 마지막 날에 아이들에게 한 말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나를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2년 여름, 인천과 부평아트센터는 희미하지만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것이 제 바람입니다."
 
조 관장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런데 기자가 찍은 최 관장 얼굴에서는 죄다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며칠 전 일본 기타큐슈 어린이들이 아트센터에서 4박5일 동안 머물렸던 여파가 조 관장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이 프로그램으로 직접 일본에 가서 그들과 함께 다시 입국하는 등의 일정을 소화했고, 이 프로그램이 마무리될 때까지 조 관장은 일과가 끝난 뒤에도 다음 일정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늦게까지 한 탓이다.
 
그리고 그를 두 번 만났다. 두 번째 만남에서 첫 인터뷰에서 받은 인상과 느낌에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뒤 무심코 한 말이 내내 귓전에서 맴돌았다.
 
"내게 딸 아이가 하나 있는데, 대학 4학년이다. 졸업하기 전에 아빠와 꼭 한번 여행을 가고 싶다고, 알바로 여행비를 벌었다고 함께 가자는 전화를 오늘 받았다."
 
기자가 "바빠서 못 가시겠다"고 하자, 그는 잠시 멈칫하며  "그  전화 받고 내내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해가 진 저녁 무렵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 관장은 낡은 구두를 이끌고, 뚜벅뚜벅 다시 관장실로 발길을 옮겼다. 지나가는 도중에 동네 마트에 들러 담배 한 갑을 구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른바 '골초' 수준이다.
 
마트 벽에 붙은 공연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녹색불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자신의 일터로 걸어가는 모습이 천상 십정동 동네 아저씨다. 한 쪽으로 기운 어깨가 눈에 밟힌다.
  
-그럼, 지역문화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지역 예술의 가장 큰 취약점은 마케팅입니다. 기획자는 성공을 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입니다. 기획자가 나서서 까다롭게 해야 예술공연이 성공합니다. 마케팅은 단순한 홍보가 아닙니다. 뻥튀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용이 부실하면 마케팅은 거짓이 되고, 신뢰가 무너집니다. 따라서 마케팅 부분은 내용의 질을 담보하는 역할까지 책임지는 영역입니다. 예술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대중적 성공도 이끌 수 없습니다.
 
단순한 보여주는 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술의 질을 관객들에게 드러낼 때 관객들은 교통비, 식사비 등의 '그림자 비용'까지 지불해서까지 극장으로 찾아옵니다.
 
나를 잊고, 부평아트센터만 기억하라.

-부평아트센터는 조경환에게 무엇인가?
 
제 일터입니다. 제가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일입니다. 아트센터에 많은 사람이 와서 즐겁게 예술의 감동을 받아 돌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모든 피로가 싹 가십니다.
 
제 나이 33세 때, 두산 연강홀 극장장으로 일하면서부터 예술행정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늘 일하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옆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왔습니다. 뒤를 돌아볼 재주가 없었고, 여유도 없었던 탓입니다.
 
제 나이 이제 오십을 넘어서까지 부평초처럼 예술공간을 떠도는 인생에서, 부평에 자리잡고 일하는 모습을 한 번 돌아보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구두를 신고 센터 곳곳을 누빕니다만.(웃음)
 
3년 전 관장으로 부임하면서 십정동으로 이사를 하고, 아침 저녁으로 걸어서 출퇴근을 합니다. 시간이 나면 어슬렁 어슬렁 거리면서 십정동 골목길을 쏘다니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동네 사람들과도 안면을 트고, 정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일본 기타쿠슈 아이들이 연극캠프 마지막 날에 아이들에게 한 말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나를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2년 여름, 인천과 부평아트센터는 희미하지만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것이 제 바람입니다."
 
조 관장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런데 기자가 찍은 최 관장 얼굴에서는 죄다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며칠 전 일본 기타큐슈 어린이들이 아트센터에서 4박5일 동안 머물렸던 여파가 조 관장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이 프로그램으로 직접 일본에 가서 그들과 함께 다시 입국하는 등의 일정을 소화했고, 이 프로그램이 마무리될 때까지 조 관장은 일과가 끝난 뒤에도 다음 일정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늦게까지 한 탓이다.
 
그리고 그를 두 번 만났다. 두 번째 만남에서 첫 인터뷰에서 받은 인상과 느낌에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뒤 무심코 한 말이 내내 귓전에서 맴돌았다.
 
"내게 딸 아이가 하나 있는데, 대학 4학년이다. 졸업하기 전에 아빠와 꼭 한번 여행을 가고 싶다고, 알바로 여행비를 벌었다고 함께 가자는 전화를 오늘 받았다."
 
기자가 "바빠서 못 가시겠다"고 하자, 그는 잠시 멈칫하며  "그  전화 받고 내내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해가 진 저녁 무렵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 관장은 낡은 구두를 이끌고, 뚜벅뚜벅 다시 관장실로 발길을 옮겼다. 지나가는 도중에 동네 마트에 들러 담배 한 갑을 구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른바 '골초' 수준이다.
 
마트 벽에 붙은 공연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녹색불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자신의 일터로 걸어가는 모습이 천상 십정동 동네 아저씨다. 한 쪽으로 기운 어깨가 눈에 밟힌다.
 
-지역문화는 '육성'해야 하는 측면도 있지 않는가   

사실 지역의 문화를 육성해야 몫이 아직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역 문화가 평가에서 무풍지대로 계속 남아 있겠다는 발상은 지역 문화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문화도 마케팅 관점을 도입하는 첫 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지방정부가 지원을 하고, 간섭을 하지 않는 문화정책을 기본으로 해서, 지역의 마케팅 기획력을 갖고 있는 부평아트센터와 같은 예술전문기관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은 앞뒤가 없고 순위가 없는 대등한 관계로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예술, 정치적 타협은 금물
 
-문화가 행정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요?
 
어느 지역에서나 예술 분야는 정치와 행정에 약한 고리에 놓여 있습니다. 자생력이 부족해서 정치와 행정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과 행정가는 지역예술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에 가치 판단을 할 문제는 아니고, 늘 예술인들이 긴장을 해서 그 부분들을 줄여 나가는 것이 합리적 방법입니다. 늘 배척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에게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책에서 배운 것도 있지만, 예술행정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체험적으로 터득한 원칙은 정치적 타협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당하게 하는 것의 다른 말입니다. 적당하게 하는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면, 예술인들의 혼은 죽게 마련이고, 그것을 지켜본 관객들은 단박에 알고 다시는 극장을 찾지 않습니다. 이런 타협들이 결국에는 지역예술들을 정체시키고 죽게 만든  요인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몫은 행정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몫입니다.
 
'그림자 비용'까지 생각해야
  
-그럼, 지역문화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지역 예술의 가장 큰 취약점은 마케팅입니다. 기획자는 성공을 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입니다. 기획자가 나서서 까다롭게 해야 예술공연이 성공합니다. 마케팅은 단순한 홍보가 아닙니다. 뻥튀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용이 부실하면 마케팅은 거짓이 되고, 신뢰가 무너집니다. 따라서 마케팅 부분은 내용의 질을 담보하는 역할까지 책임지는 영역입니다. 예술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대중적 성공도 이끌 수 없습니다.
 
단순한 보여주는 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술의 질을 관객들에게 드러낼 때 관객들은 교통비, 식사비 등의 '그림자 비용'까지 지불해서까지 극장으로 찾아옵니다.
 
나를 잊고, 부평아트센터만 기억하라.

-부평아트센터는 조경환에게 무엇인가?
 
제 일터입니다. 제가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일입니다. 아트센터에 많은 사람이 와서 즐겁게 예술의 감동을 받아 돌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모든 피로가 싹 가십니다.
 
제 나이 33세 때, 두산 연강홀 극장장으로 일하면서부터 예술행정가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늘 일하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옆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왔습니다. 뒤를 돌아볼 재주가 없었고, 여유도 없었던 탓입니다.
 
제 나이 이제 오십을 넘어서까지 부평초처럼 예술공간을 떠도는 인생에서, 부평에 자리잡고 일하는 모습을 한 번 돌아보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구두를 신고 센터 곳곳을 누빕니다만.(웃음)
 
3년 전 관장으로 부임하면서 십정동으로 이사를 하고, 아침 저녁으로 걸어서 출퇴근을 합니다. 시간이 나면 어슬렁 어슬렁 거리면서 십정동 골목길을 쏘다니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동네 사람들과도 안면을 트고, 정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일본 기타쿠슈 아이들이 연극캠프 마지막 날에 아이들에게 한 말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나를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2년 여름, 인천과 부평아트센터는 희미하지만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것이 제 바람입니다."
 
조 관장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런데 기자가 찍은 최 관장 얼굴에서는 죄다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며칠 전 일본 기타큐슈 어린이들이 아트센터에서 4박5일 동안 머물렸던 여파가 조 관장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이 프로그램으로 직접 일본에 가서 그들과 함께 다시 입국하는 등의 일정을 소화했고, 이 프로그램이 마무리될 때까지 조 관장은 일과가 끝난 뒤에도 다음 일정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늦게까지 한 탓이다.
 
그리고 그를 두 번 만났다. 두 번째 만남에서 첫 인터뷰에서 받은 인상과 느낌에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뒤 무심코 한 말이 내내 귓전에서 맴돌았다.
 
"내게 딸 아이가 하나 있는데, 대학 4학년이다. 졸업하기 전에 아빠와 꼭 한번 여행을 가고 싶다고, 알바로 여행비를 벌었다고 함께 가자는 전화를 오늘 받았다."
 
기자가 "바빠서 못 가시겠다"고 하자, 그는 잠시 멈칫하며  "그  전화 받고 내내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해가 진 저녁 무렵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 관장은 낡은 구두를 이끌고, 뚜벅뚜벅 다시 관장실로 발길을 옮겼다. 지나가는 도중에 동네 마트에 들러 담배 한 갑을 구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른바 '골초' 수준이다.
 
마트 벽에 붙은 공연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녹색불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자신의 일터로 걸어가는 모습이 천상 십정동 동네 아저씨다. 한 쪽으로 기운 어깨가 눈에 밟힌다.
  
-그럼, 지역문화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지역 예술의 가장 큰 취약점은 마케팅입니다. 기획자는 성공을 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입니다. 기획자가 나서서 까다롭게 해야 예술공연이 성공합니다. 마케팅은 단순한 홍보가 아닙니다. 뻥튀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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