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이 아름다운 평창 봉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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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이 아름다운 평창 봉평
  • 이창희
  • 승인 2012.08.10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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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수풍물] 이효석이 살아 있는 듯

 이효석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25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봄>이 선외가작으로 뽑힌 일이 있으나 정식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 것은 <도시와 유령>(1928)부터이다. 이 작품은 도시유랑민의 비참한 생활을 고발한 것으로, 그 뒤 이러한 계열의 작품들로 인하여 유진오와 더불어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진영으로부터 동반자작가라는 호칭을 듣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31년 이경원과 혼인하였으나 취직을 못하여 경제적 곤란을 당하던 중 일본인 은사 주선으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취직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지탄을 받자 처가가 있는 경성으로 내려가 그곳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은 경향문학 성격이 짙은 <노령근해 >(1930)·<상륙>(1930)·<북국사신 > 등으로 대표된다. 생활이 비교적 안정되기 시작한 1932년경부터 그의 작품세계는 초기의 경향문학적 요소를 탈피하고 그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는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향토적·이국적·성적 모티프(motif)를 중심으로 한 특이한 작품세계를 시적 문체로 승화시킨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오리온과 능금>(1932)을 기점으로 하여 <돈 豚>(1933)·<수탉>(1933) 등은 이 같은 그의 문학의 전환을 분명히 나타내주는 작품들이다. 1933년에는 ‘구인회’에 가입하여 순수문학의 방향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다음해에는 평양에 있던 숭실전문학교로 전임하였다. 그의 30대 전반에 해당하는 1936∼1940년 무렵은 작품 활동이 절정에 달하였을 때이다. 해마다 10여 편의 단편과 많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화분>(1939)·<벽공무한>(1940) 등 장편도 이때 집필된 것이다.

<산>·<들>·<모밀꽃필무렵>(1936)·<석류>(1936)·<성찬>(1937)·<개살구>(1937)·<장미 병들다>(1938)·<해바라기>(1938)·<황제>(1939)·<여수>(1939) 같은 그의 대표적 단편들이 거의 이 시기 소산이다. 1940년에 상처를 하고 거기에 유아마저 잃은 뒤 실의에 빠져 만주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돌아왔다. 이때부터 건강을 해치고, 따라서 작품 활동도 활발하지 못하였다. 1942년 뇌막염으로 병석에 눕게 되고, 20여일 후 36세로 요절하였다.

학창시절 체호프(Chekhov,A.)에 탐닉하기도 하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이 같은 외국 문학 영향을 적절히 소화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데 성공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자연이나 인생을 바라보는 문학관에 있어서 싱그(Synge,J.M)나 로렌스(Lawrence,D.H) 등의 영향을 엿볼 수 있으며, 표현이나 구성의 기법면에서는 체호프·맨스필드(Mansfield,K.) 등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영향들을 소화하여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효석 작품세계 특징은 한마디로 향수의 문학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 지향은 안으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밖으로는 이국, 특히 유럽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난다.

전자는 <모밀꽃 필 무렵>에서와 같이 고향 산천을 무대로 한 향토적 정서 표현으로 나타나는 경우와, <들>·<분녀>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근원적으로 인간 자체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에덴과 같은 것을 추구하는 원초적 에로티시즘(primitive eroticism)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후자는 서구적인 것에 대한 동경으로서 현대문명과 자유를 갈망하는 지향에서 이루어진 엑조티시즘(exoticism : 異國風)인 바, 이 같은 동경의 세계를 서정적 문체로 승화시켜 특유의 작품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메밀꽃 필 무렵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장돌뱅이 허생원은 떠돌이 생활 중에도 봉평장에는 빠지지 않고 들른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아름다운 풍광 중에서도 봉평은 그에게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봉평 여름장은 아직 해가 중천인데 파장이 가까워선지 장판이 썰렁하기만 하다. 허생원과 조선달, 윤봉운은 대화장으로 가기 위해 갈 길을 서두른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떠돌이의 삶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다.

그날 밤, 세 사람은 봉평에서 대화에 이르는 밤길을 가게 된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막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눈이 부시다. 그들은 가는 길에 아까 주막에서 만났던, 허생원처럼 왼손을 쓰는 젊은 장돌뱅이 동이를 만난다. 자신을 닮은 듯한 동이를 보자 허생원은 젊은 시절이 생각나는지 일행들에게 지난날 자신이 겪은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젊은 시절 허생원은 봉평 포목전에서 아름다운 처녀 분이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그리고 그날, 메밀꽃이 활짝 핀 여름밤, 멱을 감으러 냇가로 갔다가 분이와 하룻밤을 보낸 후 그는 그녀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래서 분이 아버지가 진 빚 삼백 냥을 갚아주기 위해 씨름판에도 나가고 아끼던 나귀도 판다. 그날도 돈을 마련해서 봉평에 왔으나 분이는 아버지 빚 대신 어디론가 팔려간 뒤였다. 그 뒤로 여기저기 수소문해 봐도 분이를 찾을 길이 없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허 생원은 아직도 홀몸이다.

동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머니가 달도 차기 전에 자신을 낳고 집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그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라났다고 했다. 그리고 동이 어머니의 고향이 바로 봉평이며 지금은 제천에 있다는 말도 듣는다. 허 생원이 개울을 건너다 물에 빠지자 동이가 업어서 건네준다. 동이의 등 위에서 허 생원은 어머니가 아비를 찾지 않느냐고 묻는다. 동이는 항상 그랬듯이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리워한다고 대답한다. 허생원은 동이가 바로 분이와 자신의 아들임을 확신하고 조선달 일행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그는 대화장을 포기하고 동이를 따라 제천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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