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우리의 거울
상태바
반짝이는 우리의 거울
  • 공주형
  • 승인 2012.08.12 14: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칼럼] 공주형 / 미술평론가, 인천대학교 초빙교수


렘브란트, 〈서른넷의 자화상〉, 1640

1640년 호화로운 이탈리아 풍의 옷을 걸친 렘브란트가 베레모를 쓴 채 정면을 응시합니다. 밝은 조명 아래 드러난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묻어납니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 해야 할까요. 서른 넷, 그는 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의 아름다운 아내,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대저택, 훌륭한 초상화가라는 평가까지 그의 것이었지요. 주문 그림이 쉴 새 없이 밀려들었던 그는 인생의 절반 지점에서 이미 생의 절정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의 최후는 어떠했을까요.

1669년 그는 숨을 거둡니다. 세상을 떠나던 바로 그 해 그는 자신의 모습을 〈63세의 자화상〉으로 남겼습니다. 그 모습이 〈34세의 자화상〉과 사뭇 다릅니다. 짙은 붉은 색 코트에 동일한 색상 베레모 차림이 다소 소박합니다. 어두운 화면 속에 묻힌 노년의 얼굴에서 조급함이 찾아지기도 하고요. 얼굴에 깃들었던 여유로움만 그의 인생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했던 아내는 요절했고, 낭비벽으로 그는 이미 십 년 전 세상에 파산을 선언했지요. 게다가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라는 명성까지 옛 말이 되어버렸답니다.

그의 예술은 시대를 앞선 것이었습니다. 동시대인들은 새로운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지요. 더 이상 그림을 주문하는 개인도 단체도 없었습니다. 고급 주택가에서 빈곤 지역으로 그는 삶의 거처도 옮겨야 했습니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그는 죽음에 임박한 시점까지 한 가지 일에 몰두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10월 8일 돌 호프 건너편, 로젠흐라흐트에 살던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 관을 나른 사람 여섯 명, 유족은 자식 두 명, 비용은 20길더."

예술과 삶 모두에서 많은 이야기를 남긴 그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야속할 정도로 짧습니다. 다만 우리는〈34세의 자화상〉과 〈63세의 자화상〉을 오가며 드라마틱했던 그의 삶과 예술을 짐작해 볼 뿐입니다. 흥미로운 일은 그의 인생이 정상에 섰을 때와 바닥을 쳤을 때를 기록한 두 점의 자화상이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나란히 소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렘브란트, 〈63세의 자화상〉, 1669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아름다운 감동을 들어 올렸던 장미란 선수가 모든 경기 일정을 마치고 이곳을 찾았답니다. 다름 아닌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기 위해서이었다지요. '장미란 선수가 렘브란트의〈34세의 자화상〉과〈63세의 자화상〉중 어디에 더 오래 머물렀을까'. 그 소식을 신문에서 접하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꽤 진지하게 마주했을 것으로 짐작해 보았습니다. 두 점의 렘브란트가 아닌, 그 안에 비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말입니다. 장미란 선수의 경기를 보며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패배를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제 현재를 제가 성찰해 보았던 것처럼요.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는, 그래서 남의 모습에서 내 민낯을 자주 마주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