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다시 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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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다시 흘러야 한다
  • 박병상
  • 승인 2012.08.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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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체열이 많아 그런지 올 삼복더위는 참 견디기 힘겨웠다. 입추가 지나며 희한하게 기온이 내려가고 대낮의 열기가 밤에 식어지면서 잠자리가 나아지긴 했지만, 기억 속에 가장 힘겨웠던 이번 삼복더위 여파는 남았다. 주로 한 시간 정도 걷던 운동을 한 달 이상 포기하면서 몸이 개운하지 않건만, 일을 못해 늘어난 목록의 숙제는 충분한 수면을 한동안 보장할 것 같지 않다.

예전이면 여름 볕이 강하면 반드시 하늘은 소나기를 한바탕 퍼부어 주위 온도를 잠시 식혀주었는데, 요즘은 아니다. 적어도 도시에서 소나기는 실종되었다. 1994년이 올해보다 기간도 길고 온도가 높아 훨씬 더웠다지만 기억에 남지 않았다. 이번 더위에 유난히 맥을 못 춘 건 1994년과 달리 소나기가 기온을 낮추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르는데, 삼복이 지나자 비가 중부지방에 소나기처럼 내렸다. 더위와 갈증의 흔적이라는 저 끔찍한 녹조는 정부의 장담처럼 이번 비로 과연 물러날 것인가.

이번 여름 4대 강의 녹조. 우리 강은 생긴 이래 그런 경험은 없었을 것이다. 녹조야 팔당이나 충주댐처럼 흐름이 차단된 호수의 어귀에 이따금 나타났지만 올 여름 같지 않았다. 녹색 페인트 원액을 부어놓은 듯, 넓디넓은 강은 진한 녹색으로 뒤덮였다. 휘젓다 빼놓은 막대기에 덕지덕지 붙은 녹조류는 보는 이의 간담을 시퍼렇게 만들 정도였다. 하필 그 녹조가 상수도 취수원을 끔찍하게 뒤덮지 않았나. 덕분에 생수공장은 숨 쉴 겨를 없이 돌아갔을 테고, 시민들의 수돗물 불신은 상수도 품질 개선에 기울였던 지자체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었다.

정부는 끓여 먹으면 괜찮다고 했다. 남조류 일종에서 분비하는 '지오스민'이라는 독성물질이 있지만 인체에 유해한 수준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경우에 따라 발생하는 악취는 활성탄소로 제거할 수 있다면서 놀란 시민을 달래려 한 정부의 발표가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민들은 근원적으로 현 정부를 믿지 못한다. 상식과 달리 진실과 거리가 먼 주장을 번번이 펴왔기에 불신이 팽배해지지 않았던가. 한데 안심할 수 없다는 다른 주장도 사실을 근거로 나온다. 지오스민 농도가 정부의 주장처럼 낮지 않다는 점, 활성탄소 설비를 갖춘 정수장이 많지 않다는 점이 속속 드러난 것이다.

불안해 하는 시민에 대해 현 정부의 수장은 상식과 다른 주장을 폈다. 강의 흐름을 멈추게 한 4대강의 대형 보가 녹조의 원인과 관계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게 아닌가. 지나친 폭염과 가뭄이 그 원인이라는, 다분히 의도적인 주장을 느닷없이 내세웠는데, 일부 보수 언론의 지지 사설에도 불구하고 즉각 수많은 반론을 일으켰다. 올해 장마의 강수량이 그리 적지 않았다는 점, 1994년 폭염 때에도 4대강에 녹조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 이번 녹조는 폭염이 시작되기 전부터 두드러졌고 심지어 작년 겨울에도 발생했다는 점들을 근거로, 4대강 사업으로 물이 고이자 녹조가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이 시민단체는 물론 과학계에서 빗발친 것이다. 상식이 게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아무도 학술적 조사를 바탕으로 학회지에 게재하지 않았으므로, 이번 녹조가 4대강 사업 때문이라는 과학적 논문은 아직 없다. 하지만 근거마저 없는 건 아니다. 누구라도 현장에 가서 문제의 강물을 떠와 연구하면 논문은 나올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상식, "물속에 질산염, 인산염이 풍부하고, 물이 정체되어 수중 산소가 고갈될 때 발생한다"라고 명백하게 기록돼 있지 않은가. 상식 중의 상식인 사실을 청와대가 부정했지만, 그런다고 자연현상이 뒤바뀔 리 없다. 실제 정부는 이미 2년 전, 그러니까 4대강에 16개 대형 보로 흐름을 가로막을 때, 계단처럼 물이 고일 거대한 호수에 녹조가 발생할 것이라 예견한 바 있다.

청와대 주장을 옹호한 어떤 신문은 이번의 녹조를 4대강 사업이 원인이라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괴담'으로 규정하는 무모함을 과시했는데, 방송도 수준이 비슷했다. 괴담이라는 표현은 없었지만, 한결같이 가뭄과 폭염에 녹조 발생의 혐의를 한정했던 거다. 그러면서 아무리 수온이 따뜻해져도 물이 흐르던 4대 강에 녹조가 발생한 적이 없다는 점, 겨울임에도 물이 막히자마자 4대강 사업이 만든 호수에 녹조가 발생했다는 점, 우리보다 훨씬 여름이 무더운 지역의 강이라도 흐름을 잃지 않으면 녹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생태계가 다양한 우포늪에 녹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우포늪처럼 생물이 다양한 생태계를 보존하다면 발생하는 녹조를 초기에 제거하는 생물이 있겠지만, 굽이치며 모래와 함께 흐르던 강을 운하처럼 획일적으로 파헤치며 모래를 들어낸 뒤 호수처럼 멈춘 4대강은 다르다. 발생한 녹조를 제거할 방법이 없다. 봄과 가을이나 겨울철의 호수에 더러 발생하는 녹조는 방지막으로 확산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지만 여름철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상류의 농공단지에서 인산염과 질산염이 풍부하게 흘려드는 강물이 멈추지 않았나. 거듭되는 뙤약볕으로 따뜻하다면 무성생식으로 늘어나는 단세포 남조류의 번성을 막을 도리가 없다. 한 시간에 한 차례 분열한다 해도, 남조류는 하루가 지나면 800만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더위를 상당히 식힐 이번 비로 4대강의 녹조가 얼마나 희석될까. 결론적으로 흐름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희석된 효과는 금방 사라질 공산이 크다. 4대강의 대형 보에 설치된 갑문을 열어 강물을 빗물로 절반 이상 희석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남조류를 먹는 생물마저 없는 호수에 질산염과 인산염이 공급되는 한, 빗물로 산소까지 늘어난 만큼 머지않아 다시 녹조는 끔찍해질 것이다. 문제는 녹조 증가로 산소가 고갈된 이후 발생할 수 있다. 죽어가며 내놓을 녹조의 독성은 단순해진 4대강 생태계에 가녀리게 존재하는 생물들에게 재앙이 될 것이며, 아직 활성탄소 설비를 갖추지 못한 상수원에 독성물질이 스며들게 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벌써 저녁이면 귀뚜라미가 운다. 머지않아 매미는 귀뚜라미에 '바통'을 넘길 텐데, 4대강의 녹조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팔당에서 상수원을 채취하는 인천시도 안심하려면 멀었다. 하지만 흐르던 모래를 잃은 낙동강과 금강과 영산강과 남한강이 더 걱정이다. 그 물을 받아 마셔야 하는 사람만이 아니다. 오랜 생태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남한강의 물을 받는 팔당댐도 수온이 내려간다고 안심할 수 없다. 게다가 지구온난화는 국지성호우를 동반하는 더운 가을을 길게 연장하곤 한다. 이런 마당에 대책은 고작 활성탄이어야 할까.

시간과 비용은 둘째 치고, 활성탄은 그 물을 마시는 사람에게 혜택이 한정된다. 강물을 늘 새롭게 정화하며 유지하게 하는 수많은 생태계에 거의 도움주지 못한다. 22조 원,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들어갔더라도, 늦기 전에 4대강의 16개 대형 보는 철거되어야 한다. 철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고려한다면 우선 갑문이라도 활짝 열어 강물을 흐르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특징인 화강암 모래와 함께 강물이 흐르면 인산염 질산염을 제거하는 미생물이 살아나 녹조류는 희석이 아니라 비로소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람도 생태계도 건강을 회복할 것이다. 4대강의 강물을 다시 흐르게 하는 일, 다음 정권까지 미뤄야 할 만큼 한가한 사안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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