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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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가하지 마라
  • 이우재
  • 승인 2012.08.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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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의 공자왈 맹자왈]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가하지 마라

21세기가 중국의 시대가 되리라는 것은 이제 상식 축에도 못 끼는 이야기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중국은 미국에 밀려 2위에 그치고 말았지만, 모든 종목에 걸쳐 결코 미국에 뒤지지 않는 스포츠 강국임을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뚜렷이 각인시켰다. 국가별 GDP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이제 일이십년의 문제일 뿐이며, 그것을 기초로 군사력에서 미국을 따라잡는 것도 결국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중국을 세계를 이끄는 지도적 위치의 국가로 인정하는데 주저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언가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것을 학문이나 사상, 문화 등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부족으로 보는 듯하다. 즉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 하드 파워(hard power)는 이제 따라잡을 만큼 따라잡았으나, 학문이나 사상, 문화 등 소프트 파워는 아직 요원하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자유 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세계를 이끌어 왔다면, 앞으로 중국은 무엇을 전면에 내걸고 세계를 이끌어 나갈 것인가? 최근 중국 정부가 세계  각국에 하나 이상씩 개설 중인 공자아카데미는 바로 그런 고민의 소산으로 보인다. 즉 미국적 가치를 대신할 중국적 가치로 공자를 전면에 내세우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 사상의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 공자의 2-3대 제자들 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논어』 안에서 공자는 흔히 말하는 인(仁)과 예(禮) 뿐만 아니라 효(孝), 충(忠), 신(信), 지(知), 정(政)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것을 정리하여 공자 사상의 핵심이 어떻다고 한두 마디 말로 정리하는 것은 실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다. 『논어』 안에 그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했다. “증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일관되어 있다.” 증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공자가 자리를 뜨자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증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입니다.”(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忠恕而已矣.-『논어』「이인」) 충(忠)은 남송의 유학자 주희(朱熹)에 의하면 자신을 다하는 것이요(盡己之謂), 서(恕)는 자기 몸을 미루는 것이다(推己之謂). 다른 말로 하면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하는 성실함이 충이고, 자기 입장을 미루어 남도 자기와 같다는 것을 아는 것이 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온갖 정성을 다하는데 이것이 바로 충이다. 다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남도 나와 같은 사람인 것을 알고 내 입장을 미루어 남의 입장도 생각하는 것, 즉 내가 배고파 괴로우면, 남도 배고플 때 괴로우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줄 아는 것, 이것이 서이다. 공자는 자신의 모든 가르침이 하나의 원칙으로 관철되어 있다고 하였고, 증자는 그것을 풀이하여 충과 서라고 하였다. 증자의 해석이 과연 맞았는지 여기서는 더 이상 확인이 안 된다. 그러나 단서는 더 있다.

공자가 말했다. “자공아! 너는 내가 많이 배워 그것을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대답해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공자가 말했다. “아니다. 나는 하나로 일관되어 있다.”(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 然 非與. 曰 非也 予一以貫之.-『논어』「위령공」) 여기서도 공자는 자신의 학문이 사실은 하나의 원칙으로 관철되어 있다고 하고 있다(一以貫之). 다만 그 하나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자공이 물었다. “한 마디 말로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아마 서(恕)일 것이다.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가하지 마라.”(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위령공」) 같은 자공과의 대화이다. 여기서 공자는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한 마디 말로 서(恕)를 추천하면서, 그 서를 풀이하기를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가하지 마라(己所不欲 勿施於人)”라고 하고 있다. 이걸로 미루어 볼 때 앞에서 공자가 자공에게 자신의 학문이 하나의 원칙으로 관철되어 있다고 했을 때의 그 하나가 서이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상 증자와 자공과의 대화를 종합하여 보면 공자 사상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서, 즉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가하지 마라”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중국은 공자 아카데미를 통하여 전세계 인류에게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가하지 마라”는 원칙을 공유할 것을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중 간에는 김영환 전기 고문 문제로 외교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소위 북한인권활동가로 불리는 김영환이 중국 공안에게 잡혀가 전기 고문을 당했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물론 부인하고 있으나, 지난 박정희 시대, 전두환 시대 그렇게 숱한 고문이 자행되었건만 한 번도 당국이 고문을 시인한 적이 없었던 우리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뻔히 짐작할 수 있는 사안이다. 영장 없는 장기 구금에 영사나 변호인 접견도 허용되지 않은 상황 자체가 고문에 대한 충분한 간접 증거 그 자체이다. 김영환이 중국 실정법을 위반하였으면 중국법에 따라 사법 절차를 진행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전세계가 금지하고 있는 고문을 자행했다면 그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중국 어민이 불법 조업을 단속하는 우리 해경을 흉기로 찔러 죽이는 사태가 발생했어도 자국민에 대한 문명적인 법집행만을 요구하던 중국이 어떻게 우리 국민에 대해서는 전기 고문을 자행할 수 있는지 도저히 그 이중적인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중국은 공자 아카데미를 짓는 데 열중하지 말고 공자의 가르침인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부터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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