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의 메타세콰이어와 보이스의 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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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메타세콰이어와 보이스의 참나무
  • 도지성
  • 승인 2012.09.06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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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도지성 / 서양화가

 
모처럼 바람이나 쐬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담양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가는 도중에 비가 억수로 내렸지만, 다행히 담양에 이르러서는 비가 멎었다. 담양은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담양' 하면 메타세콰이어 길, 죽녹원, 담양천 제방을 따라 아름드리 고목이 늘어선 관방제림이 유명한 곳이다. 읍내 중심을 흐르는 담양천, 맑은 물속엔 이름 모를 수련 종류가 가득하여 물결 따라 춤을 춘다. 조용한 시골 읍은 나무는 많고 높은 건물이 없어 참으로 편안한 느낌이다.

메타세콰이어 길은 담양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에 나무가 높이 늘어선 전국 최고의 가로수 길이다. 지금은 옆으로 넒은 새 길이 만들어져 있고, 이 길은 끝부분을 차들이 못 들어오게 막아 관광객들이 걸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곳 메타세콰이어는 1970년대 초반에 정부에서 펼친 가로수 조성 사업 때 3~4년생의 작은 묘목을 심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은 10m가 훌쩍 넘는 키로 자랐다. 이 아름다운 숲길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독일의 개념미술가 요셉 보이스는 1982년 카셀 도큐멘타(Documenta)에 '7000개의 참나무(7000oaks)'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카셀 도큐멘타 전시장 주변에 현무암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다시 그 주변을 따라 7000그루 나무심기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돌과 참나무를 한 세트로 함께 심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7000개의 참나무 가운데 첫 나무를 그가 직접 심었으나, 보이스 사망으로 5년이 지나 1987년에 마지막 나무는 보이스 아들이 심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작업', '의미 없는 무모한 작업'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보이스의 나무들은 아직도 자라고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매일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생태학 운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보이스의 나무심기 프로젝트는 확대된 의미의 '사회적 조각' 개념으로 이해된다.

요셉 보이스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가이다. 7000그루 참나무 프로젝트는 나무를 심고 그 옆에 화강암 비석을 같이 세워, 그 행위 자체에 기념비성을 부여하였다. 요셉 보이스 프로젝트가 40년 전에 담양의 공무원들이 심은 메타세콰이어와 공통점이 있다면, 나무를 심고 가꾸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 것이다. 그러나 두 행위에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 보이스의 행위만을 예술로서 인정한다. 그것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행위이지만, 자연을 개발하고 파괴하는 서구의 현실에 대한 예술가로서 비판적인 행동에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담양의 메타세콰어 숲길 조성을 예술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셉 보이스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라고 했다. 그것은 보편적인 행위 자체도 예술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사실 아름다운 나무 숲길은 어떤 예술품보다도 우리에게 휴식을 주고 서정적 느낌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고차원의 예술은 아니어도 작은 예술로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아파트 하나 없이 낮은 건물과 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담양은 아직까지 동양적 가치가 살아 있는 곳이다. 서구화로 편리성과 경제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것은 언젠가 파국을 맞는다. 작은 섬에 골프장을 만들고, 갯벌을 매립하여 도시를 만드는 것은 비문화적 반예술적 행위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데는 더 많은 예술적 행위들이 필요하다. 담양에 가서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걸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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