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기르는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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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기르는 식물
  • 정길수
  • 승인 2012.08.2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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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정길수 교수 / 경인여대 간호과


유난히 무더웠던 올해 여름! 하지만 지독한 무더위가 언제 우리를 괴롭혔는지 잊을 정도로 살갗을 스치는 공기의 느낌이 달라졌다. 해마다 그렇듯이 소서, 대서, 입추, 처서의 절기들은 우리를 더위 속에 몰아넣었다가 우리가 기진맥진할 즈음 배신하지 않고 꺼내준다. 자연이 오만한 인간을 길들이는 섭리 중 하나일 것이다.

오락가락 하는 비 때문에 며칠 동안 산책을 못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집을 나섰다. 산책길에서 아침마다 마주치는 나무와 풀들이 어찌 변했는지 궁금했다. 숨 막히는 도심 속 그래도 내게 위안을 주는 우리 동네 산책길은 내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벗이다. 이 동네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지도 벌써 십년이 넘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우리 집 주변 거리의 풍경은 어설프고 삭막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제법 농익은 동네 분위기를 풍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게 이 동네가 정겹게 다가오도록 하고, 내가 이 동네를 좋아하도록 만든 일등 공신은 나무들이다. 내 빽빽한 검은 머리카락 속에 하얀 머리카락이 스멀대며 비집고 자리 잡는 동안 우리 동네 나무들도 나이를 먹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지며 까다로워지고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은데, 늙은 나무들은 자신의 삶이 아무리 치열하고 어려울지라도 투덜대는 법 없이 일 년 열두 달 한결 같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를 선사한다. 봄에는 나무마다 돋아나는 순하고 여린 새순을 보며 마음이 설레고, 여름에는 짙푸른 나뭇잎 그늘 아래 서서 더위에 지친 숨을 고르며, 가을에는 빨갛고 노란 색색의 낙엽들로 덮인 거리를 걸으며 삶의 쉼표를 찍고, 겨울에는 하늘을 배경삼아 앙상한 나뭇가지가 표현하는 자연의 '드로잉'에 감탄한다. 내가 나무에게 주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나무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게 무엇이든 아낌없이 준다. 이래서 자연의 섭리에 감응한 사람들이 도회지를 버리고 자연 속으로 은둔하는 것일까?

몇 달 전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문득 내가 사는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문득 한 집 베란다에 시선이 꽂혔다. 아파트 한 동 168 가구의 베란다 발코니 중 유일하게 화분이 놓여 있었다. 그 3개의 화분은 그 집을 다른 집과 차별화시키고 있었다. 아름다운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꽃과 식물들로 치장한 아파트 발코니 모습이 떠올랐다. 여행을 할 때마다 거리의 행인들에게 즐거움과 여유를 선사하는 그 풍경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황급히 집에 돌아와 우리 집 베란다의 화분들을 살폈다. 베란다 구석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키우다 물려주신 이름 모를 식물 화분이 애처롭게 날 바라보았다. 그 식물은 어머니가 떠나신 일 년 뒤 2007년에 단 한번 꽃을 피웠을 뿐 더 이상 내게 아름다운 하얀 꽃을 구경할 기쁨을 주지 않았다. 물론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매 해 꽃을 피웠지만. 그래서 포기하고 일주일에 한 번 물만 주었다. 내게 애증의 감정을 갖게 한 그 식물 화분과 다른 식물이 자라는 두 개의 화분을 발코니에 내놓았다. 발코니에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창문 안 베란다에서 식물을 다루는 것과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장마철에 한 화분의 식물은 공중 낙하하여 사망했고 다른 화분의 식물은  작렬하는 태양을 이기지 못해 치명적 화상을 입어서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신세가 되었다. 모두 식물 기르기에 무지한 나를 만난 탓이다. 어머니는 어떻게 그 많은 화분 속 식물을 몇 십 년 동안 죽이지 않고 기르셨는지…. 어머니가 남겨주신 화분 중 현재 살아 있는 식물 화분은 단 세 개뿐이다. 다행히 발코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식물이 생기를 찾아 잎이 무성해지고 건강해졌다. 올 여름 그 뜨거운 하늘에 꼿꼿이 맞서 견딘 그 의연함에 나까지 덩달아 힘을 얻는다.

발코니에 식물 기르기는 삭막한 내 아파트에 생기를 불어넣고 익명의 누군가와 식물이 선사하는 아름다움과 여유를 나누자는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발코니에 화분을 내놓는 행위 이상의 의미와 감동,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게으른 나는 아직도 우리 집 발코니 화분 속 식물의 이름은 물론이고 어떻게 해야 그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일 년 뒤 쯤 우리 동네 누군가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어머! 저 두 집이 발코니에 식물을 기르니 나도 한 번 해볼까' 생각하며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우리가 봄과 여름이면 형형색색의 꽃들로 뒤덮인 우리 아파트를 꿈꾸는 일은 지나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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