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우리를 만드는 합창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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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우리를 만드는 합창을 해야
  • 이장열
  • 승인 2012.08.26 1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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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대 사람들 톡톡 인터뷰] ③ 인천시립합창단 윤학원 예술감독
윤학원 지휘자(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취재 : 이장열 기자
 
지난 21일 오후 2시, 인천시립합창단 단장실에서 윤학원 지휘자(73, 예술감독)를 인터뷰했다. 오전 합창단 연습을 마치고 나온 윤 감독을 인터뷰하기 앞서 기자는 '윤학원의 청춘합창'(두란노, 2012. 2) 을 펼쳐놓고 그를 우선 만났다.
 
인천시립합창단 지휘자 윤학원 예술감독은 '인천 사람'이다. 동인천 앞 인현동과 송현동 중앙시장은 윤 감독이 자라고 살았던 데다. 윤 감독은 1938년 황해도 옹진 온천리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1949년에 처음 인현동으로 이사 와 인천과 인연을 맺고 살았다.
 
1950년 6.25전쟁이 나자, 나룻배를 타고 영종도에 피란 갔다가 1951년 부산으로 피난배를 다시 탔다. 충남 웅천 근처 바닷가에서 배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져 버리는 바람에 간신히 구조돼 휴전이 되기 전까지 그 곳에서 살다가, 1953년 휴전이 되자 다시 인천 인현동으로 올라왔다.
 
송림국민학교를 거쳐 기독교학교인 영화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시절에는 인천 내리교회에서 중등부 회계를 맡고 있었는데, 그 때 깡패들에게 연신 두들겨 맞고 들어오자 아버지가 권투를 시작하라고 말해 한동안 권투에 빠져 있었다. 예술가는 빌어먹는다는 아버지의 생각과 화학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천공고로 입학하게 됐다. 인천공고 밴드부 부장을 맡았다. 당시로서는 인천공고에서 드물게 연세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하며 지휘자로서 꿈을 키워나갔다.
 
1962년 인천문화원 어린이 합창단 지휘자로서 활동했다. 그리고 1995년부터 현재까지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및 지휘자로서 인천에서 왕성하게 새로운 도전을 쉼 없이 펼쳐 나가고 있다.
 
윤 감독의 자서전 격인 책을 보고 있다가, 약속한 인터뷰 시간이 되어 윤 감독을 만나러 걸어가는 먼 발치에서 머리가 희끗히끗한 윤 감독의 뒷모습이 보였다. 단박에 그임을 알아차렸다.
 
단장실은 고즈넉하게 아담했다. 책상 1개과 책장 1개 , 회의용 탁자 1개, 2인용 쇼파 2개가 전부였다. 책장 위에는 백자 모양의 도자기들이 올려져 있었다.
 
기자는 단장실에 들어가 윤 감독과 인사를 나눴다. 2인용 쇼파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윤 감독은 허리를 곧추세운 채 흐트림 없이 그 자세를 유지했다. 기자는 간간이 허리를 쇼파에 기댔다. 부드러움 속에 단단함이 깃들어져 있는 기품이 그의 목소리에도 묻어났다.
 
특히 윤 감독은 오는 9월 26일 인천종합예술회관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하는 '동 합창' 공연에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합창 운동'의 주창자 윤 감독의 작은 결실을 거두는 공연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듯했다.
 
윤학원 지휘자는 '한국합창사'에 두 가지 의미로 기록된다. 하나는 합창에 안무를 처음 도입한 지휘자, 그리고 '합창 운동'을 이끈 지휘자로 말이다.
 
인천에서 살았기에 합창은 자연스러운 선택

□ 합창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인천은 합창과 연관이 밀접한 곳이다. 선교사 언드우드와 여러 선교사들이 인천을 통해서 들어왔다. 선교는 인천이 그 시발점이다. 그래서 기독교와 성가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성가는 바로 합창이다. 그래서 합창과 기독교는 하나이다.
 
인천에선 합창이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인천에서는 호산나합창단 등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인천에 교회가 굉장히 많은 것도 이러한 역사성과 관련되어 있다.
 
1950년대 벌써 메시아 전곡을 조그만 교회에서도 합창할 정도로 인천은 합창의 도시였다. 인천에 살았기 때문에 제가 합창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천, '합창 운동'시발점

□ '합창 운동'을 펼쳐나가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제가 지금 '합창 운동'의 일환으로 인천에서 '동(洞) 합창' 을 하고 있다. 8-9년 전부터 인천시의원들을 쫒아다니면서 '합창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올해 들어서 인천시가 제 이야기를 듣고, 인천시 시민합창단을 만들자고 제의를 했다. 따라서 우선 '동 합창단'을 만들기로 했다. 현재 8개 동에서 구성했다.  '동 합창단'은 50명-70명이다.
 
동네 주민이면 나이에 상관 없이 지원할 수 있다. 70-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해서 '동 합창단'이 꾸려졌다. 지휘자와 반주자들은 인천시립합창단에서 파견한다.
 
인천시가 저에게 올해 초 시민합창단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을 때, 제가 몇 개 동만 하지 말고, 인천시 동 전체가 하자고 제안했다. 인천시가 올해에는 몇 군데 동을 중심으로 하고, 앞으로 모든 동으로 '동 합창단'을 확대한다는 약속을 했다.
 
9월 26일 인천종합예술회관에서 8개 동 합창단이 한데 모여서, 연합 합창 공연을 한다. 동 합창단이 2곡씩 부르고, 마지막 공연에서는 8개 동 합창단과 시립합창단이 합동 공연을 한다. 그 때 연합 공연은 제가 지휘를 맡게 된다.
 
이날 동 합창단 공연은 대단할 거다. 지금도 동 합창단 단원들이 9월 26일 공연을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합창,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 합창의 매력은 무엇인지?

옆 사람과 같이 한다는 것이 합창이다. '우리'를 만들어낸 것이 합창이 가진 큰 장점이다. 합창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을 만들어 준다.
 
요즘 같은 동네에 살아도 서로 인사도 안 하고 산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서 합창을 하게 되면, 자연히 인사도 하고, 친해지고, 동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합창은 나하고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다. 동료 의식도 생기고 좋은 점이 정말 많다.
 
한국의 '합창'을 움직이게 만들다

□ 합창에 안무를 처음 도입했는데, 어떤 이유로 생각하셨나요?

제가 선명회합창단을 맡았던 때가 1970년이다. 그 때 TV를 보니까 가수들 주위에서 안무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 것을 보던 일반 사람들이 공연 내내 서서 하는 합창을 보면 싫증이 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합창에 안무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한국민요에 먼저 안무를 도입했다. 그 당시 안무 도입을 두고, 합창계에서 욕도 많이 했다. "그게 합창이냐"고 말이다. 그러나 모두 따라 왔다. 지금은 한국의 합창이 다 움직인다. 제가 움직이게 만든 사람이다.(웃음)
 
대우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할 때에는 세종문화대강당에서 합창단이 아래서 올라오고, 위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오케스트라 안에서 합창단이 올라가기도 하고, 여러 시도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 결과 비표까지 모두 매진되고, 3, 4회 연속 공연이 모두 매진됐다. 그 당시 세종문화회관이 3,000석이었는데, 정말 대단한 호응이었다.
 
전국,  100개 '어린이합창단' 만들 계획

□ 향후 활동 계획은?

제가 '남자의 자격' 출연으로 이름이 난 이후 합창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합창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쳐 나가려고 한다. 그것이 인천에서부터 시작한 '동 합창'이고, 또 한편으로는 '전국어린이합창'이다.
 
현재 제가 CTV 예술감독이다. CTV 회장께 이왕 제가 예술감독이니, 'CTV 어린이합창단'을 만들겠다고 하고 허락을 받았다. 잘 되면 방송을 하라고까지 약속을 받았다.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전국에 22개 합창단이 만들어졌다. 부산, 전주, 대구 등지에서다. 지난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속리산에 여름캠프를 마련해 전국 어린이 400명이 모여서 연습을 했다.
 
아주 재미 있게 진행됐다. 연합 합창 연습은 제가 직접 지휘를 했다. 불과 3개월 만에 400여명이 모였다. 제가 보기에는 이 '합창 운동'은 앞으로 더욱 확장될 것 같다. 어린이들이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었는데, 끝났을 때에는 서로 헤어지기 아쉬워 울기도 할 정도로 좋았다. 한 마디로 대성공이었다.
 
저는 '합창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다. 앞으로 어린이가 합창을 많이 해야 이 어린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합창 운동이 확산된다.
 
앞으로 어른들은 '동 합창'으로 나아가고, CTS를 중심으로 전국에 '100개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 목표다. 석 달 만에 22개 합창단이 만들어졌기에, 100개 합창단은 이른 시일 안에 만들어질 것으로 믿는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다.      
 
인천 10시민대합창의 '화음'  

□ 인천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에서 찾아야 하는가?

인천이 다른 도시와 다른 것이 여러 출신 지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말하자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데가 인천이다.
 
이북에서도 내려와 살고, 전남에서도 오고, 대구와 부산에서도 많이 왔다. 그야말로 '합창 운동'을 해야 하는 곳이다.
 
'합창 운동'이 발전되면 모든 동으로 확대되고, 나중에 '10만 인천사람'이 모두 한 데 모여 합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다. 인천은 합창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연합하지 않으면 못 사는 도시가 인천이기 때문이다.

□ 인천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에서 찾아야 하는가?

인천이 다른 도시와 다른 것이 여러 출신 지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말하자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데가 인천이다.
 
이북에서도 내려와 살고, 전남에서도 오고, 대구와 부산에서도 많이 왔다. 그야말로 '합창 운동'을 해야 하는 곳이다.
 
'합창 운동'이 발전되면 모든 동으로 확대되고, 나중에 '10만 인천사람'이 모두 한 데 모여 합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다. 인천은 합창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연합하지 않으면 못 사는 도시가 인천이기 때문이다.

□ '합창 운동'을 펼쳐나가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제가 지금 '합창 운동'의 일환으로 인천에서 '동(洞) 합창' 을 하고 있다. 8-9년 전부터 인천시의원들을 쫒아다니면서 '합창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올해 들어서 인천시가 제 이야기를 듣고, 인천시 시민합창단을 만들자고 제의를 했다. 따라서 우선 '동 합창단'을 만들기로 했다. 현재 8개 동에서 구성했다.  '동 합창단'은 50명-70명이다.
 
동네 주민이면 나이에 상관 없이 지원할 수 있다. 70-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해서 '동 합창단'이 꾸려졌다. 지휘자와 반주자들은 인천시립합창단에서 파견한다.
 
인천시가 저에게 올해 초 시민합창단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을 때, 제가 몇 개 동만 하지 말고, 인천시 동 전체가 하자고 제안했다. 인천시가 올해에는 몇 군데 동을 중심으로 하고, 앞으로 모든 동으로 '동 합창단'을 확대한다는 약속을 했다.
 
9월 26일 인천종합예술회관에서 8개 동 합창단이 한데 모여서, 연합 합창 공연을 한다. 동 합창단이 2곡씩 부르고, 마지막 공연에서는 8개 동 합창단과 시립합창단이 합동 공연을 한다. 그 때 연합 공연은 제가 지휘를 맡게 된다.
 
이날 동 합창단 공연은 대단할 거다. 지금도 동 합창단 단원들이 9월 26일 공연을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합창,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 합창의 매력은 무엇인지?

옆 사람과 같이 한다는 것이 합창이다. '우리'를 만들어낸 것이 합창이 가진 큰 장점이다. 합창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을 만들어 준다.
 
요즘 같은 동네에 살아도 서로 인사도 안 하고 산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서 합창을 하게 되면, 자연히 인사도 하고, 친해지고, 동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합창은 나하고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다. 동료 의식도 생기고 좋은 점이 정말 많다.
 
한국의 '합창'을 움직이게 만들다

□ 합창에 안무를 처음 도입했는데, 어떤 이유로 생각하셨나요?

제가 선명회합창단을 맡았던 때가 1970년이다. 그 때 TV를 보니까 가수들 주위에서 안무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 것을 보던 일반 사람들이 공연 내내 서서 하는 합창을 보면 싫증이 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합창에 안무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한국민요에 먼저 안무를 도입했다. 그 당시 안무 도입을 두고, 합창계에서 욕도 많이 했다. "그게 합창이냐"고 말이다. 그러나 모두 따라 왔다. 지금은 한국의 합창이 다 움직인다. 제가 움직이게 만든 사람이다.(웃음)
 
대우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할 때에는 세종문화대강당에서 합창단이 아래서 올라오고, 위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오케스트라 안에서 합창단이 올라가기도 하고, 여러 시도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 결과 비표까지 모두 매진되고, 3, 4회 연속 공연이 모두 매진됐다. 그 당시 세종문화회관이 3,000석이었는데, 정말 대단한 호응이었다.
 
전국,  100개 '어린이합창단' 만들 계획

□ 향후 활동 계획은?

제가 '남자의 자격' 출연으로 이름이 난 이후 합창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합창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쳐 나가려고 한다. 그것이 인천에서부터 시작한 '동 합창'이고, 또 한편으로는 '전국어린이합창'이다.
 
현재 제가 CTV 예술감독이다. CTV 회장께 이왕 제가 예술감독이니, 'CTV 어린이합창단'을 만들겠다고 하고 허락을 받았다. 잘 되면 방송을 하라고까지 약속을 받았다.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전국에 22개 합창단이 만들어졌다. 부산, 전주, 대구 등지에서다. 지난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속리산에 여름캠프를 마련해 전국 어린이 400명이 모여서 연습을 했다.
 
아주 재미 있게 진행됐다. 연합 합창 연습은 제가 직접 지휘를 했다. 불과 3개월 만에 400여명이 모였다. 제가 보기에는 이 '합창 운동'은 앞으로 더욱 확장될 것 같다. 어린이들이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었는데, 끝났을 때에는 서로 헤어지기 아쉬워 울기도 할 정도로 좋았다. 한 마디로 대성공이었다.
 
저는 '합창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다. 앞으로 어린이가 합창을 많이 해야 이 어린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합창 운동이 확산된다.
 
앞으로 어른들은 '동 합창'으로 나아가고, CTS를 중심으로 전국에 '100개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 목표다. 석 달 만에 22개 합창단이 만들어졌기에, 100개 합창단은 이른 시일 안에 만들어질 것으로 믿는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다.      
 
인천 10시민대합창의 '화음'  

□ 인천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에서 찾아야 하는가?

인천이 다른 도시와 다른 것이 여러 출신 지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말하자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데가 인천이다.
 
이북에서도 내려와 살고, 전남에서도 오고, 대구와 부산에서도 많이 왔다. 그야말로 '합창 운동'을 해야 하는 곳이다.
 
'합창 운동'이 발전되면 모든 동으로 확대되고, 나중에 '10만 인천사람'이 모두 한 데 모여 합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다. 인천은 합창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연합하지 않으면 못 사는 도시가 인천이기 때문이다.

□ 인천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에서 찾아야 하는가?

인천이 다른 도시와 다른 것이 여러 출신 지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말하자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데가 인천이다.
 
이북에서도 내려와 살고, 전남에서도 오고, 대구와 부산에서도 많이 왔다. 그야말로 '합창 운동'을 해야 하는 곳이다.
 
'합창 운동'이 발전되면 모든 동으로 확대되고, 나중에 '10만 인천사람'이 모두 한 데 모여 합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다. 인천은 합창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연합하지 않으면 못 사는 도시가 인천이기 때문이다.

□ 합창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인천은 합창과 연관이 밀접한 곳이다. 선교사 언드우드와 여러 선교사들이 인천을 통해서 들어왔다. 선교는 인천이 그 시발점이다. 그래서 기독교와 성가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성가는 바로 합창이다. 그래서 합창과 기독교는 하나이다.
 
인천에선 합창이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인천에서는 호산나합창단 등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인천에 교회가 굉장히 많은 것도 이러한 역사성과 관련되어 있다.
 
1950년대 벌써 메시아 전곡을 조그만 교회에서도 합창할 정도로 인천은 합창의 도시였다. 인천에 살았기 때문에 제가 합창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천, '합창 운동'시발점

□ '합창 운동'을 펼쳐나가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제가 지금 '합창 운동'의 일환으로 인천에서 '동(洞) 합창' 을 하고 있다. 8-9년 전부터 인천시의원들을 쫒아다니면서 '합창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올해 들어서 인천시가 제 이야기를 듣고, 인천시 시민합창단을 만들자고 제의를 했다. 따라서 우선 '동 합창단'을 만들기로 했다. 현재 8개 동에서 구성했다.  '동 합창단'은 50명-70명이다.
 
동네 주민이면 나이에 상관 없이 지원할 수 있다. 70-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해서 '동 합창단'이 꾸려졌다. 지휘자와 반주자들은 인천시립합창단에서 파견한다.
 
인천시가 저에게 올해 초 시민합창단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을 때, 제가 몇 개 동만 하지 말고, 인천시 동 전체가 하자고 제안했다. 인천시가 올해에는 몇 군데 동을 중심으로 하고, 앞으로 모든 동으로 '동 합창단'을 확대한다는 약속을 했다.
 
9월 26일 인천종합예술회관에서 8개 동 합창단이 한데 모여서, 연합 합창 공연을 한다. 동 합창단이 2곡씩 부르고, 마지막 공연에서는 8개 동 합창단과 시립합창단이 합동 공연을 한다. 그 때 연합 공연은 제가 지휘를 맡게 된다.
 
이날 동 합창단 공연은 대단할 거다. 지금도 동 합창단 단원들이 9월 26일 공연을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합창,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 합창의 매력은 무엇인지?

옆 사람과 같이 한다는 것이 합창이다. '우리'를 만들어낸 것이 합창이 가진 큰 장점이다. 합창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을 만들어 준다.
 
요즘 같은 동네에 살아도 서로 인사도 안 하고 산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서 합창을 하게 되면, 자연히 인사도 하고, 친해지고, 동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합창은 나하고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다. 동료 의식도 생기고 좋은 점이 정말 많다.
 
한국의 '합창'을 움직이게 만들다

□ 합창에 안무를 처음 도입했는데, 어떤 이유로 생각하셨나요?

제가 선명회합창단을 맡았던 때가 1970년이다. 그 때 TV를 보니까 가수들 주위에서 안무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 것을 보던 일반 사람들이 공연 내내 서서 하는 합창을 보면 싫증이 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합창에 안무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한국민요에 먼저 안무를 도입했다. 그 당시 안무 도입을 두고, 합창계에서 욕도 많이 했다. "그게 합창이냐"고 말이다. 그러나 모두 따라 왔다. 지금은 한국의 합창이 다 움직인다. 제가 움직이게 만든 사람이다.(웃음)
 
대우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할 때에는 세종문화대강당에서 합창단이 아래서 올라오고, 위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오케스트라 안에서 합창단이 올라가기도 하고, 여러 시도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 결과 비표까지 모두 매진되고, 3, 4회 연속 공연이 모두 매진됐다. 그 당시 세종문화회관이 3,000석이었는데, 정말 대단한 호응이었다.
 
전국,  100개 '어린이합창단' 만들 계획

□ 향후 활동 계획은?

제가 '남자의 자격' 출연으로 이름이 난 이후 합창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합창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쳐 나가려고 한다. 그것이 인천에서부터 시작한 '동 합창'이고, 또 한편으로는 '전국어린이합창'이다.
 
현재 제가 CTV 예술감독이다. CTV 회장께 이왕 제가 예술감독이니, 'CTV 어린이합창단'을 만들겠다고 하고 허락을 받았다. 잘 되면 방송을 하라고까지 약속을 받았다.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전국에 22개 합창단이 만들어졌다. 부산, 전주, 대구 등지에서다. 지난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속리산에 여름캠프를 마련해 전국 어린이 400명이 모여서 연습을 했다.
 
아주 재미 있게 진행됐다. 연합 합창 연습은 제가 직접 지휘를 했다. 불과 3개월 만에 400여명이 모였다. 제가 보기에는 이 '합창 운동'은 앞으로 더욱 확장될 것 같다. 어린이들이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었는데, 끝났을 때에는 서로 헤어지기 아쉬워 울기도 할 정도로 좋았다. 한 마디로 대성공이었다.
 
저는 '합창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다. 앞으로 어린이가 합창을 많이 해야 이 어린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합창 운동이 확산된다.
 
앞으로 어른들은 '동 합창'으로 나아가고, CTS를 중심으로 전국에 '100개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 목표다. 석 달 만에 22개 합창단이 만들어졌기에, 100개 합창단은 이른 시일 안에 만들어질 것으로 믿는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다.      
 
인천 10시민대합창의 '화음'  

□ 인천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에서 찾아야 하는가?

인천이 다른 도시와 다른 것이 여러 출신 지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말하자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데가 인천이다.
 
이북에서도 내려와 살고, 전남에서도 오고, 대구와 부산에서도 많이 왔다. 그야말로 '합창 운동'을 해야 하는 곳이다.
 
'합창 운동'이 발전되면 모든 동으로 확대되고, 나중에 '10만 인천사람'이 모두 한 데 모여 합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다. 인천은 합창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연합하지 않으면 못 사는 도시가 인천이기 때문이다.

□ 인천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에서 찾아야 하는가?

인천이 다른 도시와 다른 것이 여러 출신 지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말하자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데가 인천이다.
 
이북에서도 내려와 살고, 전남에서도 오고, 대구와 부산에서도 많이 왔다. 그야말로 '합창 운동'을 해야 하는 곳이다.
 
'합창 운동'이 발전되면 모든 동으로 확대되고, 나중에 '10만 인천사람'이 모두 한 데 모여 합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다. 인천은 합창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연합하지 않으면 못 사는 도시가 인천이기 때문이다.

□ '합창 운동'을 펼쳐나가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제가 지금 '합창 운동'의 일환으로 인천에서 '동(洞) 합창' 을 하고 있다. 8-9년 전부터 인천시의원들을 쫒아다니면서 '합창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올해 들어서 인천시가 제 이야기를 듣고, 인천시 시민합창단을 만들자고 제의를 했다. 따라서 우선 '동 합창단'을 만들기로 했다. 현재 8개 동에서 구성했다.  '동 합창단'은 50명-70명이다.
 
동네 주민이면 나이에 상관 없이 지원할 수 있다. 70-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해서 '동 합창단'이 꾸려졌다. 지휘자와 반주자들은 인천시립합창단에서 파견한다.
 
인천시가 저에게 올해 초 시민합창단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을 때, 제가 몇 개 동만 하지 말고, 인천시 동 전체가 하자고 제안했다. 인천시가 올해에는 몇 군데 동을 중심으로 하고, 앞으로 모든 동으로 '동 합창단'을 확대한다는 약속을 했다.
 
9월 26일 인천종합예술회관에서 8개 동 합창단이 한데 모여서, 연합 합창 공연을 한다. 동 합창단이 2곡씩 부르고, 마지막 공연에서는 8개 동 합창단과 시립합창단이 합동 공연을 한다. 그 때 연합 공연은 제가 지휘를 맡게 된다.
 
이날 동 합창단 공연은 대단할 거다. 지금도 동 합창단 단원들이 9월 26일 공연을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합창,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 합창의 매력은 무엇인지?

옆 사람과 같이 한다는 것이 합창이다. '우리'를 만들어낸 것이 합창이 가진 큰 장점이다. 합창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을 만들어 준다.
 
요즘 같은 동네에 살아도 서로 인사도 안 하고 산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서 합창을 하게 되면, 자연히 인사도 하고, 친해지고, 동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합창은 나하고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다. 동료 의식도 생기고 좋은 점이 정말 많다.
 
한국의 '합창'을 움직이게 만들다

□ 합창에 안무를 처음 도입했는데, 어떤 이유로 생각하셨나요?

제가 선명회합창단을 맡았던 때가 1970년이다. 그 때 TV를 보니까 가수들 주위에서 안무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 것을 보던 일반 사람들이 공연 내내 서서 하는 합창을 보면 싫증이 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합창에 안무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한국민요에 먼저 안무를 도입했다. 그 당시 안무 도입을 두고, 합창계에서 욕도 많이 했다. "그게 합창이냐"고 말이다. 그러나 모두 따라 왔다. 지금은 한국의 합창이 다 움직인다. 제가 움직이게 만든 사람이다.(웃음)
 
대우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할 때에는 세종문화대강당에서 합창단이 아래서 올라오고, 위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오케스트라 안에서 합창단이 올라가기도 하고, 여러 시도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 결과 비표까지 모두 매진되고, 3, 4회 연속 공연이 모두 매진됐다. 그 당시 세종문화회관이 3,000석이었는데, 정말 대단한 호응이었다.
 
전국,  100개 '어린이합창단' 만들 계획

□ 향후 활동 계획은?

제가 '남자의 자격' 출연으로 이름이 난 이후 합창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합창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쳐 나가려고 한다. 그것이 인천에서부터 시작한 '동 합창'이고, 또 한편으로는 '전국어린이합창'이다.
 
현재 제가 CTV 예술감독이다. CTV 회장께 이왕 제가 예술감독이니, 'CTV 어린이합창단'을 만들겠다고 하고 허락을 받았다. 잘 되면 방송을 하라고까지 약속을 받았다.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전국에 22개 합창단이 만들어졌다. 부산, 전주, 대구 등지에서다. 지난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속리산에 여름캠프를 마련해 전국 어린이 400명이 모여서 연습을 했다.
 
아주 재미 있게 진행됐다. 연합 합창 연습은 제가 직접 지휘를 했다. 불과 3개월 만에 400여명이 모였다. 제가 보기에는 이 '합창 운동'은 앞으로 더욱 확장될 것 같다. 어린이들이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었는데, 끝났을 때에는 서로 헤어지기 아쉬워 울기도 할 정도로 좋았다. 한 마디로 대성공이었다.
 
저는 '합창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다. 앞으로 어린이가 합창을 많이 해야 이 어린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합창 운동이 확산된다.
 
앞으로 어른들은 '동 합창'으로 나아가고, CTS를 중심으로 전국에 '100개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 목표다. 석 달 만에 22개 합창단이 만들어졌기에, 100개 합창단은 이른 시일 안에 만들어질 것으로 믿는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다.      
 
인천 10시민대합창의 '화음'  

□ 인천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에서 찾아야 하는가?

인천이 다른 도시와 다른 것이 여러 출신 지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말하자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데가 인천이다.
 
이북에서도 내려와 살고, 전남에서도 오고, 대구와 부산에서도 많이 왔다. 그야말로 '합창 운동'을 해야 하는 곳이다.
 
'합창 운동'이 발전되면 모든 동으로 확대되고, 나중에 '10만 인천사람'이 모두 한 데 모여 합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다. 인천은 합창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연합하지 않으면 못 사는 도시가 인천이기 때문이다.

□ 인천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에서 찾아야 하는가?

인천이 다른 도시와 다른 것이 여러 출신 지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말하자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데가 인천이다.
 
이북에서도 내려와 살고, 전남에서도 오고, 대구와 부산에서도 많이 왔다. 그야말로 '합창 운동'을 해야 하는 곳이다.
 
'합창 운동'이 발전되면 모든 동으로 확대되고, 나중에 '10만 인천사람'이 모두 한 데 모여 합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다. 인천은 합창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연합하지 않으면 못 사는 도시가 인천이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살았기에 합창은 자연스러운 선택

□ 합창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인천은 합창과 연관이 밀접한 곳이다. 선교사 언드우드와 여러 선교사들이 인천을 통해서 들어왔다. 선교는 인천이 그 시발점이다. 그래서 기독교와 성가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성가는 바로 합창이다. 그래서 합창과 기독교는 하나이다.
 
인천에선 합창이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인천에서는 호산나합창단 등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인천에 교회가 굉장히 많은 것도 이러한 역사성과 관련되어 있다.
 
1950년대 벌써 메시아 전곡을 조그만 교회에서도 합창할 정도로 인천은 합창의 도시였다. 인천에 살았기 때문에 제가 합창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천, '합창 운동'시발점

□ '합창 운동'을 펼쳐나가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제가 지금 '합창 운동'의 일환으로 인천에서 '동(洞) 합창' 을 하고 있다. 8-9년 전부터 인천시의원들을 쫒아다니면서 '합창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올해 들어서 인천시가 제 이야기를 듣고, 인천시 시민합창단을 만들자고 제의를 했다. 따라서 우선 '동 합창단'을 만들기로 했다. 현재 8개 동에서 구성했다.  '동 합창단'은 50명-70명이다.
 
동네 주민이면 나이에 상관 없이 지원할 수 있다. 70-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해서 '동 합창단'이 꾸려졌다. 지휘자와 반주자들은 인천시립합창단에서 파견한다.
 
인천시가 저에게 올해 초 시민합창단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을 때, 제가 몇 개 동만 하지 말고, 인천시 동 전체가 하자고 제안했다. 인천시가 올해에는 몇 군데 동을 중심으로 하고, 앞으로 모든 동으로 '동 합창단'을 확대한다는 약속을 했다.
 
9월 26일 인천종합예술회관에서 8개 동 합창단이 한데 모여서, 연합 합창 공연을 한다. 동 합창단이 2곡씩 부르고, 마지막 공연에서는 8개 동 합창단과 시립합창단이 합동 공연을 한다. 그 때 연합 공연은 제가 지휘를 맡게 된다.
 
이날 동 합창단 공연은 대단할 거다. 지금도 동 합창단 단원들이 9월 26일 공연을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다.
 
합창,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 합창의 매력은 무엇인지?

옆 사람과 같이 한다는 것이 합창이다. '우리'를 만들어낸 것이 합창이 가진 큰 장점이다. 합창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을 만들어 준다.
 
요즘 같은 동네에 살아도 서로 인사도 안 하고 산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서 합창을 하게 되면, 자연히 인사도 하고, 친해지고, 동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합창은 나하고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다. 동료 의식도 생기고 좋은 점이 정말 많다.
 
한국의 '합창'을 움직이게 만들다

□ 합창에 안무를 처음 도입했는데, 어떤 이유로 생각하셨나요?

제가 선명회합창단을 맡았던 때가 1970년이다. 그 때 TV를 보니까 가수들 주위에서 안무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 것을 보던 일반 사람들이 공연 내내 서서 하는 합창을 보면 싫증이 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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