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공동체 회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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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공동체 회복을 위해
  • 유해숙
  • 승인 2012.09.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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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유해숙 교수 / 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빈곤과 실업 문제는 시시각각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아무 대책 없이 일터에서 쫒겨나 죽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 같이 불안하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공동체는 '차이가 편안하게 드러나는 공동체'라고 했다. 여기서 핵심은 '차이'와 '편안'이다. 누구의 차이라도 편안하게 드러날 수 있는 공동체! 

요즘 나는 어느 때보다 이런 공동체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것은 강자의 차이만 맘껏 드러나고 약자의 차이는 무시되거나 죽을 각오를 해야 겨우 드러낼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대안 공동체를 위한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인간은 모두 차이 나는 존재이고 이 차이는 동등한 가치로 존중되고 자유롭게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차이에 대한 존중과 표출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가능하다. 이 공동체 모습은 '당당하고 풍요로운 공동체' 일 것이다. 여기에서 '당당하다'는 것은 시민들이 자각하여 권리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이고, '풍요롭다'는 것은 이런 삶의 존재 조건, 즉 인간다운 삶의 조건(minimum standard of living)에 대한 사회적 보장을 의미한다.

서구 복지국가가 가능했던 것은 이런 공동체에 대해 자각한 시민과 이들의 세력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자각한 시민과 조직하는 시민이 있어 가능했다. 자각한 시민이 자각한 시민을 만들고, 기존 지배세력이 주입한 '쇼핑몰 사회' 약육강식의 상식을 전복하고, 시민이 가치 있는 존재로서 의미를 찾는 자각과 실천이 있어 가능했다. 또한 시민이 주인이 되어 함께 통치하는 정치의 회복이 핵심이다. 이는 시민이 세력으로 되어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만들까? 서구의 복지국가 형성을 보면서 복지는 공동체를 갈망하고, 실천하는 사람들, 즉 자기 삶의 공간에서 공동체의 마중물이 된 사람들이 자각하고 실천하여 세력이 되었을 때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쇼핑몰 사회가 심화되고 있다. 그동안 마중물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쇼핑몰을 인간다운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헌신해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쇼핑몰은 건재하다. 이런 현실 앞에서 길을 잃었다. 이 마중물들은 현실의 모순을 어느 정도 완화했는지 몰라도 방향을 바꾼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는 사이 쇼핑몰이 우리 마음 속 규율장치, 즉 벤담이 말한 '판옵티콘'으로 되었고, 마중물들은 지쳐가고 있다. 그들은 각자 따로 열심히 하면서, 각자 현장에서 한국사회 문제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이제 쇼핑몰 사회 속 마중물을 위한 조그마한 몸짓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중물들이 쉬고, 즐기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낀다. 이들이 살아남는 것이 오늘날 진보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 산자들이 성찰하고 토론을 시작하면서, '차이가 편안하게 드러나는 공동체'를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공동체를 우리 사회에 확산할 수 있는 상상을 해야 한다.

마중물들의 쉼과 회복 과정에서 시민들과 소통하고, 그 소통 속에서 새로운 마중물들이 도처에서 만들어질 때 비로소 한국사회는 '당당하고 풍요로운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상이 우리사회 상식이 되기를 오늘도 기도하고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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