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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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
  • 곽한왕
  • 승인 2012.09.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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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칼럼] 곽한왕 /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


필자는 철이 들면서 대통령 선거를 했는데, 청년기에는 군부독재 세력이 아닌 분 중에 나라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이에게 투표를 하였으나, 늘 의지와 무관하게 박정희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여기서 군부독재란 박정희 대장, 전두환 대장, 노태우 대장으로 이어지는 모두 '별'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결국 1962년부터 1992년까지 '썩은 별'들이 대통령을 했고, 민정당이라는 군부세력을 등에 업고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니 1997년까지는 군부와 연합한 정부가 우리나라 역사다.

특이한 사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통령을 7번이나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5.16쿠데타로 1962년부터 이듬해까지 대통령 직무대행을 했고, 1963년부터 1979년에 그의 부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 저격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5대, 6대, 7대, 8대, 9대 대통령을 했다.

1961년 5월16일 쿠데타부터 1979년 10월26일까지 박정희가 집권한 기간이다. 집권 18년6개월이고, 그 가운데 군정이 945일이고, 긴급조치 제9호 기간이 무려 1669일 9시간으로 4년6개월에 달했다. 박정희 18년 집권기 가운데 절반 정도가 사실상 계엄 상태였다.

왕조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33년 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외국언론이나 우리나라 대다수 사학자들은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부르는데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박정희가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한국을 산업대국으로 이끄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칭송하면서, 그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이가 많다. 사실 경제 성장을 이야기할 때, 박정희(7% 성장)보다 고도성장을 한 시기는 전두환 정권(10%) 시절이다. 이런 논리라면 최고 경제성장을 이끈 전두환의 아들 전재국씨가 대선에 출마하면, 지금 박근혜를 지지하는 분들은 전재국씨 지지운동을 벌여야 한다.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발언으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7월15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에서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며, 5·16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초석을 만들었다"라고 주장했다. 또 "전 국민의 50퍼센트 이상이 5·16이 구국의 혁명이라고 지지하고 있으며, 유신헌법을 제정할 때에도 유권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지지했다"라고 말해 쿠데타와 유신독재를 사실상 정당화한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독재와 인권유린'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즉,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를 옹호하는 관점이자 철학을 가진 분이 박근혜 후보다. 5·16쿠데타와 유사한 군부 쿠데타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발생하곤 했는데,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그 당시 정부가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런가? 

이승만 장기독재에 염증을 느낀 학생과 시민들은 4.19혁명을 일으켜 일제와 독재정부에게 영치를 당했던 자유민주주의가 꽃피는 시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박정희를 포함한 소수 군인들은 자유민주주의 단초를 총칼로 저지하고 집권 후에도 그 악습은 계속돼 자신에게 저항하는 세력을 투옥하거나 사망시키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했다.   

박정희는 일제 강점기에는 만주에서 일본군 정보장교로, 해방 후에는 남로당에 가입해 공산주의자로 되었고, 4.19민주혁명의 열기를 몰아내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대통령으로 됐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언제든지 변신했던 사람이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저지하는 활동을 하다, 긴급조치 9호에 걸려 1978년 인천교도소와 서울구치소, 영등포 교도소를 두루 '견학'하기도 했다. 시대의 징표가 되고자 하던 많은 분과 '징역동기'로 살았다.

5·16쿠데타 세력은 불법집단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 단기간에 산업화 성과를 내려고 20여 년 동안 밀어붙인 결과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시켰다. 1969년 외환위기와 부실기업 문제는 1972년 8·3조치로 나왔고, 1970년대 정부 주도 중화학공업에 대한 중복·과잉투자로 기업이 정권에 예속되고 온갖 부정부패 온상이 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정부 주도 경제정책은 대기업과 재벌에 부실한 자기자본과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면서 세계화라는 '개방의 덫'에 걸리게 해 자생하지 못했다. 1997년 IMF(외환위기)라는 사태를 맞아 중소기업인과 서민들의 삶이 파괴되고 그후 10년 후 비슷한 글로벌 경제위기(달러 파동)를 경험해야 했다. 이로 인해 서민과 중산층은 속절 없이 무너져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로,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표출했다.

박근혜 후보는 5.16쿠데타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 아울러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박정희 대통령의 정부주도 경제정책으로 야기된 외환위기와 미국의 달러 파동으로 한국경제를 다시 한 번 피폐하게 만든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선행되어야 박근혜는 대통령 후보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8월20일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박근혜씨는 압도적인 지지(투표율 41% 득표율 84%)를 얻으며 선출됐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는 고유의 권한이다. 자,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 왔고 이제 출발선상에 있다.

*곽한왕은 경기도 파주에서 출생했고, 인천에서 30여년 동안 시민사회활동을 했다. 현재 천주교 인권위 이사,민주화 기념 계승사업회 이사 등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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