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열리는 이야기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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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열리는 이야기마당
  • 박병상
  • 승인 2012.10.2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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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도심 까페에서의 인문학 강좌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된 도시는 빠르다.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 숭상하는 목표를 향해 옆을 바라보지 않고 질주하는 사람이나 자동차에 부딪혀 자칫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자동차를 타든 조용히 보행자 도로를 걷든, 부딪히지 않으려 조심조심 다니다보면 가끔 아는 이와 반갑게 마주칠 수 있지만 눈인사 손인사로 그쳐야 한다. 염출할 시간도 없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아 잠시라도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옷깃 스치는 이 대부분은 익명이다. 회색도시에서 낯설기 그지없다.

일을 마치고 동네로 들어와도 마찬가지다. 몇 동, 몇 호로 구별되는 아파트단지의 이웃들도 익명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 없지 않지만, 몇 층에 사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눈인사를 나눌 뿐인데, 그들과 가까이 지낸다고 큰 문제가 생길 거 같지 않다. 다만 단지 안에서 도무지 기회가 없다. 어린이놀이터에서 아이 핑계로 이야기 나누던 이웃들도 시들해졌다. 주차장이 좁다는 이유로 알량한 어린이놀이터에 아스팔트를 깔지 않았던가. 도시에도 동네에도, 이웃을 살갑게 만드는 이야기마당이 필요하다.

가지가지 약속이 넘치는 곳이 도시인 까닭에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건 물론 아니다. 한 해 1조 원 가까이 수입한다는 커피원두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전문점은 헤아리기 귀찮을 정도로 많다. 한데 적지 않는 돈을 준비하고 들어가야 하는 커피 전문점은 철저히 사적 공간을 제공할 뿐이다. 낯선 이와 공유하기 껄끄러운 사업 이야기나 개별 관심사에서 그친다. 삼삼오오, 또는 십 수 명이 공개된 주제를 찾아, 마주 않아 커피 마시며 이야기가 무르익는 살롱은 아니다. 적어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를 찾아 모이는 공간으로 커피 전문점은 활용되지 않는다. 커피를 주로 마시는 건 비슷하지만 유럽 도시에서 흔히 보는 카페의 풍경과 거리가 있다.

최근 인천 연수구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 유럽의 살롱문화를 지향하는 이야기마당을 꾸준하게 열어놓고 있다. 여러 분야의 인문학 강좌에 이어 참여자들의 한바탕 이야기 전개를 유도하는데, 아직 성황은 아니지만 참여자들은 조금씩 마음을 연다. 봄부터 계속된 만큼 그 이야기마당은 인지도를 높이고 있으며 그에 걸맞게 기대와 호기심으로 참여하는 이도 차츰 늘어난다. 인간의 욕망, 환경, 종교, 문학, 논어, 경제, 문화 주제들을 이야기해왔고 앞으로 철학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마당도 열릴 예정이다. 이야기를 주관하는 전문가의 자발적 참여를 이끈 그 커피 전문점의 능동적인 노력에 힘입은 바 컸다.

바쁘디 바쁜 우리의 회색도시는 저물면 갑자기 난삽해진다. 술집과 노래방을 전전하는 즐거움, 그리고 아스팔트에 흩어진 전단지를 흐느적거리며 밟을 권리 이외에 우리 도시에서 시민들이 누릴만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삭막한데, 많은 시민들은 이야기를 갈망한다. 마음 따뜻한 이웃과 만나고 싶다. 이럴 때,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마당이 여기저기에 열린다면 회색도시에서 지친 시민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모일 수 있다. 술잔 기울이며 삼삼오오 정치와 당면 주머니 경제를 논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을 수 있다. 같은 마음을 확인하는 이와 가깝게 지낼 수 있다. 친해지면 도시의 여러 문제를 같이 고민하면서 대안을 모색하면서 자신이 사는 지역에 비로소 뿌리내릴 수 있다.

요사이 전국의 자치단체, 그리고 종교단체나 시민단체에서 인문학강좌를 활발하게 전개한다. 바람직한 현상이긴 한데, 강좌 대상이 경제 여건으로 학교에서 인문학 강의를 받지 못한 차상위 계층이나 교도소 수형자에 머무르는 경향이 짙다. 한데 인문학은 입시 위주에 교육으로 일관하는 우리 사회에서 일반 시민에게 그리 가깝지 않았다. 대학이나 언론기관의 교양강좌를 수강하지 않는 한, 공부할 기회는 없다. 그러므로 시민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이야기마당은 의미가 크다. 연수구의 커피 전문점에서 시작한 이야기마당이 차츰 도시 여기저기서 열리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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