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이 장애가 되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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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이 장애가 되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 유해숙
  • 승인 2012.10.3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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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유해숙 교수 / 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

 

지난 26일 새벽 2시10분, 또 중증 장애인이 화재로 숨졌다. 소방대원이 9분 만에 불길을 잡았지만 김주영씨(33·여)는 끝내 숨진 채 발견되고야 말았다. 피해자 김주영씨는 인권활동가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철폐연대)'에 참여하여 장애인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편견과 차별에 맞서던 사람이었다. 김씨는 생전에 24시간 활동보조인 제도를 정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필요한 사람에게 하루 24시간 활동보조인을 지원하고 장애등급제와 본인부담금의 폐지를 주장해 왔다.

김씨가 잠자던 방에서 현관문까지는 비장애인이라면 다섯 발짝도 채 안 되는 거리였다. 방문과 현관문 모두 문턱이 전혀 없어 전동휠체어를 타면 2~3초면 탈출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김씨에게는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만큼 먼 거리였다. 평소 김씨의 발 노릇을 하는 전동휠체어가 부엌에 놓여 있었지만, 김씨는 활동보조인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전동휠체어에 올라탈 수 없었다. 활동보조인은 불이 나기 3시간 전인 전날 밤 11시에 퇴근했다. 

손상과 장애

 손상(impairment)은 장애(disability)인가? 청각에 손상이 있는 사람이 장애가 되려면 이로 인해 사회적 소통이 불가능할 때이다. 만약 모든 시민들이 수화를 하도록 초등학교때 교육을 받았다면 이것은 청각 손상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 만약 활동보조서비스가 모든 장애인에게 24시간 보장된다면, 손상은 또한 장애가 되지 않는다.

손상이 바로 장애라는 관점은 손상 자체가 개인의 문제이며, 손상을 가진 사람은 비정상인(장애인)이라고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개인적 장애모델 또는 개인적 비극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구분해 놓고 손상을 그 자체로 장애로 본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 또는 제도적 노력과 무관한 것이다.

한편, 손상이 장애가 되는 것은 손상 때문이 아니라 손상에 대한 사회와 국가의 태도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사회적 장애 이론은 장애를 특정한 역사적·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이런 맥락에서 장애는 장애인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사회적 장애이론은 손상을 사지의 일부나 전부가 부재한 것, 또는 사지, 기관, 몸의 작동에 불완전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면, 장애을 손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거의 또는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사회활동의 주류적 참여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이 관점에서 손상은 어느 시대와 사회에서 존재했지만, 이것이 다루어지는 방식(장애화되는 양식)은 모두 다르다.

 문제는 정치다.

 장애에 대한 관점의 변화는 장애의 발생원인에 대한 사회적 자각에도 원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장애의 정치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장애는 그 사회의 정치적인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장애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손상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손상을 가진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운동이다.

김주영씨는 한국의 장애의 정치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 정치는 김주영씨가 그토록 외쳤던 손상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를 실현하지 못했다. 그리고 장애의 정치의 결핍은 결국 손상을 장애가 되도록 함으로써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김주영씨가 주장했던 장애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우리사회는 김주영씨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또는 현재이든 미래에서이든지 간에 잠재적인 손상을 가질 수 있다. 노령이나 임신과 같은 일시적인 손상이나 장애인들의 90%가 후천적 원인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 손상의 위험에 처해 있다. 이제 다시는 김주영씨 같은 비극이 없도록 성찰해야 한다. 그 성찰이 장애의 정치로 이어져서 장애가 손상이 되는 우리사회의 비극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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