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 상이 아니듯, 늙음 또한 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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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상이 아니듯, 늙음 또한 벌이 아닐까
  • 공주형
  • 승인 2012.11.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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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공주형/미술평론가, 인천대 초빙교수



.‘저렇게 아름답고, 품위 있게 나이 들 수만 있다면.’ 노년을 문화사적으로 조망한 신간 펫 테인의 《노년의 역사》의 표지에 실린 그림과 우연히 만난 순간 든 생각이었습니다. 18세기 화가 크리스티안 자이볼트(Christian Seybold, 1695~1768))의<그린 스카프를 걸친 노파>의 주인공은 나이든 여성입니다. 이 그림은〈자화상>을 비롯하여 인상적인 여러 점의 초상화를 남긴 화가 특유의 차분한 응시가 잘 표현된 초상화 중 한 점입니다.

 

그림 제목처럼 주인공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을 이마와 눈가에 탄력 잃은 피부와 주름살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그림의 첫인상을 좌우한 것은 노파 피부의 처짐의 정도와 목에 가득한 주름의 개수와 깊이가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눈길은 초록 빛 스카프와 그 아래로 살짝 드러난 희끗한 머리카락의 안정적인 조화를 향했습니다. 마음이 오래 노파가 두른 스카프와 비슷한 빛깔이 감도는 눈동자에 깃든 담담함과 고요함에 머물렀습니다. 젊음이 섣불리 흉내 낼 수 없는 연륜의 무게란 이런 것일까요.

 

인류의 역사에서 노년은 시대의 분위기와 개인의 관점에 따라 인식을 달리해 왔습니다. 20대의 괴테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을 60년이 걸쳐 완성한 대작《파우스트》에 담았지요. 반면에 프랑스의 대문호 67세의 위고는 《레미제라블》에서 등장인물 장발장을 통해 강인하고, 감동적인 노년을 그려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노년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동반으로 파악되기도 했습니다. 7세기의 대주교 이시도루스는 노년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각각 우리를 쾌락과 욕망과 같은 가장 폭력적인 주인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과 나쁜 점은 우리의 신체를 쇠약하게 만들어 그로 인해 고통 받게 한다는 것으로 꼽았습니다. 또한 1세기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모든 이에게 하나의 유형의 노년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 《노년》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년을 부끄러운 비밀, 금기시된 주제’로 간주했습니다. 하지만 100세 장수가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고령화 사회로 진입을 앞둔 시점에서 노년은 우리 사회의 화두로 관심이 다양화 되는 추세에 있습니다. 노년의 의미를 다룬 《노년의 역사》의 출간에 대한 언론의 뜨거운 관심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엿보게 합니다. 노년에 대한 새 책의 출간으로 그 어느 때보다 노년에 대한 달콤한 말과 글이 분주히 오갔던 지난 달 말, 치매를 앓던 부인을 2년 동안 지극정성 간호하던 70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건이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얻은 벌이 아니다.” 박범신 소설 《은교》의 한 대목에처럼 우리의 젊음이 상이 아니듯, 늙음도 벌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참담한 노년에 대한 책임감 있는 성찰 없이 행복한 노년에 관한 무책임한 낙관만 계속된다면 그 또한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상은 아닐지언정 벌 또한 아닌 우리들의 노년을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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