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짠물'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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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짠물'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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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1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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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선배들과 어울려 당구장에 간 대학 새내기 A씨는 당구실력이 얼마냐 되냐는 선배들의 질문에 ‘200점’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배들은 ‘인천 점수가 짜다’ 며 그의 실력을 믿지 않았다.

#. 회사원 B씨는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러 사무실을 나섰다. 깜박하고 사무실에 지갑을 놓고 나온 B씨. 동료 C에게 신세를 지기로 하자 곁에서 지켜보던 동료 D가 ‘인천 짠물’ 이라며 놀렸다.

인천문화정책연구소가 2001년 인천 사람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천 짠물’ 이라는 별명을 들어본 적 있느냐” 는 질문에 응답자의 70%가 “그렇다” 고 답했다. “누가 그렇게 부르느냐” 는 질문에는 대부분이 “서울지역을 비롯한 외지인” 이라고 답했다.

외지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인천 사람들을 ‘짠물’이라고 부르는 걸까? 인천시립박물관이 ‘인천짠물에 대한 해명’ 이라는 제목으로 개최하고 있는 기획전시는 ‘인천 짠물’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나름의 해명을 시도하고 있다.

인천 짠물에 대한 첫 번째 해석은 실제로 물이 짜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삼국사기’ 에서는 ‘미추홀(현재의 인천)은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고 했고 ‘세종실록지리지’ 등 옛 지리지들도 인천의 특산물로 소금을 기록하고 있다. 근대에 들어서는 1907년 최초의 근대식 염전인 천일염전이 주안 갯벌에 조성된 것을 시작으로 천일염전이 속속 생겨났으며 1930년대에는 전국 소금 생산량의 절반이 인천 일대에서 생산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해석은 인천사람의 씀씀이가 인색하다는 것이다. 앞서 밝혔던 설문조사에서 “외지사람들이 인천 짠물이라 부르는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50% 이상이 “금전적인 인색함”이라고 답했다. “근대시기 일을 찾아 전국에서 몰려들었던 부두 노동자들은 성실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가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짠물’이라는 별명이 생겨났을 것”이라는 지용택씨(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의 설명은 꽤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짜다’ 는 의미가 인색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굳세고 야무진 근성을 의미하기도 했다. 인천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인천의 근성으로 물들어갔다. 인천인들은 일제와 자본가의 부당한 착취속에서도 노력과 끈기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민족학교를 세우고 사회에 환원했다. 인천사람인 동아일보 이길용기자는 금메달을 딴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리기도 했다.

인천인들은 말한다. “인천이 짠물인 이유는 세상이 싱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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