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를 거부할 권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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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거부할 권리에 대하여
  • 하석용
  • 승인 2012.11.19 13: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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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하석용 / 공존회의 대표 · 경제학 박사

돌아보면 참 많은 투표를 했다. 군부 독재 시절에 군대에서 반공개적인 투표도 해 보았고 유신개헌 찬반 투표 따위 몰상식한 투표에서는 투표 종사자로까지 참여를 해 보았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같은 기가 막힌 선거를 서울의 한 동사무소에서 선거 책임자로 바가지 쓸 번하다가 아슬아슬하게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그 많은 선거의 경험 중에서 내게 상쾌한 기억으로 남은 경우가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솔직하게 고백해서 내게는 대체로 승리하는 쪽을 선택하는 능력이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어쩌다 내가 선택한 쪽이 승리를 한 경우라 하더라도 세월이 흐른 뒤 그 결과에 내가 만족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이유는 단 세 가지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내가 대단히 중뿔나게 비상식적인 인간이거나 세상이 상식적인 선택지(選擇紙)를 내게 내밀 수 있을 만큼 합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과 그 두 가지 요소가 병합된 경우가 그것이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다소 중뿔난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내가 오늘 살고 있는 세상이 비상식적으로 못돼먹은 구석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 등으로 나는, 투표를 해야 하는 때마다 대개 한 번쯤은 이번 투표를 거부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리고 이제는 왜 답이 없는 선택지에 답이 아닌 답을 표기해야 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가 되는가라는 아주 상식적인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간절하게 털어내고 싶다.

인류가 역사적으로 권력의 담당자를 선택한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폭력이나 신비주의와 결합한 속임수에 의하기도 하였고 대물림, 제비뽑기, 기득권자에 의한 지명 또는 야합 같은 방법들도 있었다. 소위 공정이나 공평이라는 것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는 시험이나 투표라는 방법이 널리 등장하였지만 언제나 단 한 가지 방법으로 사회적 권력이 분할되는 경우는 없었고 이런 모든 방법들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소위 민주주의라는 체제 속에서 선거에 참여하거나 투표를 한다는 행위는 제시된 대안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정한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러한 선택을 위하여 제시되는 대안들이 항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이러한 제도가 정당제라는 틀 속에 갇히게 되면서는, 선택의 문제가 패거리의 문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되어서, 급기야 민주주의 위기론에 이르기까지 부조리를 극대화하게 된다. 요컨대 정당제에 기초한 민주주의는 역설적으로 사상과 가치선택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게 되는 자기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이러한 선거 또는 투표라는 제도는 사용과 가치의 평가가 제한적이어야 하고 꾸준한 개량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투표장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노상 납덩이처럼 무겁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간다면 대한민국 실정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으니 이 얘기는 이쯤에서 멈추기로 하자)

민주제 속에서 권력의 분점자들을 선택하는 소위 선거라는 제도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치명적인 결함을 비켜가기 어렵다. 하나는 그러한 권력의 담당자로서 적격한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그러한 선거의 결과로 항상 소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가치를 독점한다는 것이다. 정당이 일차 후보를 선별해서 추천한다고 해봤자 그러한 과정의 합리성을 신뢰할 방법이 없고 아무리 결선 투표를 거친다고 해도 전체 유권자의 50%를 넘는 지지를 얻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이 선거 또는 투표라는 제도를 폐기할 수 있겠느냐 라는 데 있다. 아마도 지금과 같이 과학이 지속적으로 발달해서 지정된 사회적인 임무에 최적인 DNA를 가진 자들을 찾아내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방안 정도가 나온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 인류는 이 제도를 대체할 마땅한 다른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를 바라본다면 우선 두 가지 개량적인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이제 공직 후보자 자격시험이나 공개적인 심사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선택(無選擇)의 의사표현을 양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9급 공무원의 권한을 얻기 위해서도 무시무시한 경쟁을 통과하여야 하는 시대에 막강한 통치 권력을 가지게 되는 선출직 공무원의 입후보 자격을 사전적으로 일정부분 검증하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싶고, 무선택 또는 투표거부의 권리를 기권 또는 불참여(不參與)라는 명칭으로 일괄 치부하는 것은 표현과 선택의 자유, 평등권의 원칙에 위반한다는 의심이 있다.

실제로 투표용지에 무선택란을 설치하여 투표하게 한다면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을 좀 더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선택의 득표 비율은 선택된 자에게 가장 강력한 정치적인 견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검증과정을 통하여 정치는 스스로 진화하는 활력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떠한 국민의 의사표현도 뭉개고 가서는 안 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된다면 만년 꼴찌라는 인천의 투표율이 졸지에 가장 강력한 정치적인 압력 수단으로 바뀌게 될지 또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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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kdcks 2012-11-26 14:14:05
무선택이건 기권이건 투표를 하기는 마찬가지네요.
다만 투표를 하지 아니한자가 정부와 지자체의 정치나 시정에 잘잘못을 논하지 말아야 하고
불만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거지요. 투표를 아니한자가 정치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불법을 저지르거나 항거를 한다면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게 제 생각 입니다.

늦가을 2012-11-21 22:59:35
하교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는 분이기에 존경합니다. 쏠림이 없는 삶을 을 살고자 하는 모습은 저도 배우고 싶습니다.

느낌대로 2012-11-20 16:32:18
"투표용지에 무선택란을 설치하여 투표하게 한다면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을 좀 더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강력한 정치적인 견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국민의 의사표현도 뭉개고 가서는 안 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겠는가?"
하석용님의 생각의 유연성은 정말 놀라울 정도 입니다^^ 하석용님께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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