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壬辰)년의 검은 용은 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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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壬辰)년의 검은 용은 떠나고
  • 박병상
  • 승인 2012.12.24 0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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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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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눈이 많으면 이어지는 봄에 비가 많다고 했던가? 봄비가 잦으면 풍년이 온다던데, 내년은 올해보다 여유 있을지 짐작할 수 없지만 괜스레 기대하고 싶다. 올겨울, 시작되자마자 눈이 많았다. 기후변화 때문이라는데, 실종된 삼한사온은 오한일온에 바통을 넘기고 말았다. 한 닷새 계속되던 냉기가 하루 풀리는가 싶더니 이내 수은주는 곤두박질이다. 이제 영하 10도는 추위도 아닌 것 같다. 검은 용의 해, 임진년(壬辰年)의 날은 이렇게 저물어간다. 검은 뱀의 해인 내년 계사년(癸巳年)의 사정은 어떨지.
검은 용은 비를 많이 내리게 해 풍년을 기약한다고 했는데, 올해 비가 적지 않았고 수해 역시 예외가 없었지만 최근 계속되는 기상이변 상황에서 특별히 지나치지 않았다. 다만 10미가 넘는 대형 보에 흐름이 차단된 4대강은 검은색으로 변했고 녹조류가 번성해 넘실거렸다. 썩어가는 물은 고인 호수에 넘쳤지만 그 물을 농업에 사용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상류의 비교적 깨끗한 강물도 강변의 오랜 농토에 붓기 어려웠다. 강바닥을 긁어 올린 모래에 뒤덮인 농토는 잡초가 우거진 ‘생태공원’으로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4대강에 물이 고이자 검게 썩은 호수에 검은 용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60년 만에 돌아온 검은 용은 풍년을 선사하지 못했다. 선사하고 싶었을 테지만 그럴 수 없었다. 4대강 사업으로 검게 변한 강물의 수위가 오르면서 주변 채소밭을 망가뜨리는데 그치지 않았다. 강물보다 높은 논밭도 안심할 수 없다. 오염되지 않은 강물을 끌어다 사용하려면 석유가 필요하고 비닐하우수와 같은 시설재배는 난방 없이 불가능한데, 국제 석유 가격이 상승하지 않았나. 석유 값이 오르는 만큼 중소 규모의 비닐하우스 농산물부터 판로를 잃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석유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은 대규모의 영농조합의 농산물과 막대하게 수입하는 해외 농산물의 가격도 앙등하게 만들 것이다. 농업 걱정에서 그칠 리 없다. 우리의 주요 수입원인 공산품 수출입도 안정될 수 없다.
논과 밭이 매립돼 도시와 연구단지로 뒤바뀌는 속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은데 신령한 검은 용이라도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식량 자급률이 26퍼센트에 불과한 올해 우리나라는 쌀마저 부족해지고 말았다. 아직 정부의 창고에서 맹독성 농약에 훈증된 채 쌓여 있는 쌀이 남아 있고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해외의 쌀도 적지 않지만, 재배면적이 줄어들면 안정된 자급은 지속될 수 없다. 지구적인 기후변화로 해외 농경지의 작황이 불안정하고, 그를 반영해 해외 농산물의 가격은 종잡지 못한다. 차차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걱정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대와 달리 검은 용은 제 꼬리를 뒤로, 물러설 것이다. 그 뒤를 검은 뱀이 이을 텐데, 임진년은 계사년보다 안정적일 수 있을까. 뱀은 지혜와 치유를 상징한다. 비록 검은 용이 물려준 뒷자리가 어수선해도 지혜를 발휘해 안정적으로 바로 잡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썩어가는 강물이 고이는 4대강은 대형 보의 안전을 장담하지 못한다. 현지 사정을 조사한 학자들은 무너질 가능성을 강력하게 경고하는데,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상류의 대형보가 무너지면 그 하류의 보들은 연거푸 맥없이 무너질 테고, 피해는 주변 농부와 도시인들에게 집중될 것이다.
지진대 위에 올라선 일본의 핵발전소마다 이어질 사고를 걱정하지만, 지진과 쓰나미에서 거리가 멀다 생각하는 우리도 마냥 안심할 수 없다. 부실공사와 관리운영의 난맥상이 누적적으로 드러나기 때문만이 아니다. 수명을 설계로 보장한 기간을 넘기면서 사고 가능성이 현격하게 높아지기 때문인데, 지혜로운 검은 뱀은 폐쇄를 요구하겠지만 이번에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한 이는 아직도 경각심을 공유하는 것 같지 않다. 요행을 바라는 걸까.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가 심한 지구온난화는 세계적 현상이고, 올해 두드러진 세계 가뭄과 그에 따른 식량 위기는 내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세계 인구는 여전히 늘어나고, 기후변화로 인한 사막화와 경작지 가뭄은 세계 식량의 안정적 수급을 걱정하게 하지만 수출로 돈 벌어들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우리는 별 걱정이 없다. 검은 용의 과오를 물려받을 검은 뱀은 제 지혜를 잘 발휘해줄까. 작년에 받은 민중의 고통은 제대로 치유해줄까. 검은 용을 보내며, 막연하지만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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