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축은 속도의 희생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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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축은 속도의 희생양이 아니다
  • 박병상
  • 승인 2010.04.19 23: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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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작년 말 인천시의회에서 단절된 중앙공원의 연결 여부에 대한 질의를 받은 인천시 담당 국장은 “연결육교를 설치해 간석역에서 인천터미널까지 걸어서 오갈 수 있도록 조성할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아스팔트로 6곳이 끊어진 중앙공원을 연결하는 데 245억 원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면서, 2010년 하반기에 130여 억 원을 들여 3군데부터 연결할 계획을 밝힌 국장은 보행자와 자전거는 물론이고 휠체어를 타는 시민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도록 완만하게 부설될 연결육교에 경관조명을 비춰 “국제도시로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계획”까지 덧붙였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국격’이니 ‘명품도시’니 운운하는 공직자들이 국가와 도시를 대외적 상품가치로 평가하려는 태도를 보이지만, 정작 지역에 정주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그 과정에 반영되는 것 같지 않아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백인 남성일 외국인이 감탄하면 덩달아 우리도 우쭐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들이 우리를 그저 신비로운 존재로 폄하하는 ‘오리엔탈리즘’에 대비되는 ‘옥시덴탈리즘’, 다시 말해 그들의 칭찬에 몸 둘 바 모르는 화상으로 우리가 비칠 수 있다. 자존심보다 정체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중앙공원의 연결육교는 경관조명으로 인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게 중요하지 않다. 이용하는 시민들의 편의와 안전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지난 3월 30일 6차 인천 녹지축 탐사에 나선 인천환경운동연합 회원들.
검단 가현산을 오르고 있다. 

아무튼, 올해 말이면 중앙공원은 연결되리라. 도로가 먼저 뚫린 뒤 공원이 조성되었으므로 아스팔트가 공원을 단락시킨 게 아닐지라도, 이제 연결될 테니 주말에 일찌감치 공원으로 나온 시민들은 뒤에서 다가오는 자동차를 걱정할 필요 없이 편안하게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봄기운을 만끽하다 오후에 문학경기장으로 프로야구 시합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에 만보를 걸으려는 중년의 직장인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려는 젊은이도 안전하고 편안한 중앙공원을 이용할 것이다. 시민들의 만족도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게 틀림없다.

인천은 주요 녹지가 서쪽의 섬에 위치한다. 편서풍 지대의 서편에 있는 녹지와 갯벌에서 수분과 산소를 함유하는 공기가 들어온다는 건 바람직하지만 녹지가 태부족한 공간에서 시민들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곧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텐데,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인 도심을 더욱 덥게 만드는 ‘열섬화 현상’은 시민들을 지치게 만들 것이다. 그나마 강화와 김포의 녹지를 가현산에서 계양산을 지나 철마산, 오봉산과 문학산에 이어 청량산까지 연결하는 외곽의 ‘S자 녹지축’이 있어 숨을 쉴 수 있는데, 그것 참! 그 녹지마저 훼손될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시간 날 때마다 녹지축을 실태를 살피는 시민과 환경단체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환경단체와 뜻 있는 시민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든 건 인천시의 재검토 번복 결정이었다. 인천의 유일한 도시의 녹지축을 허물어 버릴 게 틀림없는 도로인 만큼 시의회에서 예산 편성이 보류되었고, 은밀히 검토된 계획에 시민과 환경단체가 발끈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터져나오는 반대 목소리에 잠시 놀랐는지, 전면 재검토하겠다던 인천시가 이런! 일부 지역을 기존 도로의 확장으로 바꾸며 슬그머니 재추진하는 게 아닌가. 시민과 시당국 사이에 무엇보다 중요한 신뢰를 공무원이 내팽개치는 일은 지방선거를 눈앞에 둔 민주사회에서 용인되기 어려울 텐데, 현실은 어처구니없는 방향으로 진행되려는가.

투기를 조장하며 개발하는 청라와 검단의 신도시, 이름도 낯선 루원시티, 대회 마친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건설하려는 아시아 경기대회 주경기장에서 발생하는 교통 수요를 흡수하려면 민자 고속도로가 반드시 녹지축을 난도질해야 한다고 인천시는 주장하는데, 알량한 녹지축마저 허물어내고 얻는 시간은 고작 20분이다. 그 주택단지와 경기장에 어느 고관대작을 유인하려는지 알 수 없지만, 20분 빨리 가자고 300만을 바라보는 시민의 허파를 그리 옥죄어도 무방한 건가. 그것도 공무원이.

시는 녹지축 파괴에 대한 환경단체의 지적을 회피하고자 기존도로 확장과 일부 교각의 지하화를 검토했지만, 사업비 증가로 기존 계획을 고수할 생각이라는 소식이다. 인천시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인천발전연구원에 버릇처럼 연구용역 결과를 챙기려는 공무원은 기존 노선의 타당성을 검증하겠다는데, 대안도 조금은 생색내서 낼 계획이라고 덧붙인 모양이다. 결국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다는 걸 천명한 셈이다. 시민이 반대하더라도 다시 우롱하면 그뿐이라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요란한 조명을 받는 중앙공원의 연결육교에서 그치면서 녹지 연결을 생색낸다면 몹시 면구스러운 일이다. 외곽에 울울창창한 녹지를 도심으로 가로와 세로 방향의 녹지축으로 연결하려 애쓰고, 도심에서 외곽을 향하는 녹지축을 동심원으로 확충하는 독일 도시의 행정은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그 오래된 행정을 인천의 공무원은 모르는 걸까. 걸핏하면 해외 선진사례를 찾아 방문하는 공무원들이 모른다면 직무유기가 된다. 그런데 부천과 서울로 이어지는 인천의 외곽은 삭막하다. 그런데 가녀린 ‘S자 녹지축’을 민간자본에 위임해 헐어내겠다는 발상, 용납될 거로 생각했다면 용감할 정도로 무모한 공무원인 게 틀림없겠다.

녹지축은 속도의 희생양이 아니다. ‘석유정점’을 눈앞에 둔 지구온난화 시대에 도시의 확장은 자제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 된 지 오래다. 기존 도심에 녹지를 확충할 뿐 아니라 그 안에서 대부분의 일상이 가능한 이른바 ‘콤팩트시티’를 계획해야 타당할 텐데, 바다의 녹지인 갯벌을 매립한 자리에 지구온난화에 역행하는 초고층 주택을 즐비하게 세우고 그와 연결하기 위해 기존 녹지축을 헐어내려는 행정은 내일을 욕되게 만들 게 분명하다. 선출직 공무원의 선창에 일제히 목 놓아 외치는 ‘명품도시’와 ‘국격’ 타령하고 박자가 어긋난다. 방문자를 감탄하게 하는 세계의 유서 깊은 도시에서 녹지를 허무는 행정을 고집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속도가 빠를수록 이웃을 배려하기 어렵다. 고속도로 운전자는 옆에 앉은 식구나 친구, 심지어 애인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나눌 수 없다. 도시의 완성은 회색의 확장과 경쟁을 부르는 속도가 아니다. 이웃을 배려하는 녹지다. 그런 녹지는 연결되어야 건강하다. 더구나 녹지가 태부족한 만큼, 덥고 질주하는 자동차가 많은 만큼 오염된 인천에 겨우 존재하는 녹지축이라면 외곽의 풍부한 녹지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왜곡된 검토로 계획된 신도시와 도로는 내일의 기준으로 철회하는 게 당연하다. 투기 목적의 도시계획이 아니라면 의당 그래야 한다.

정주하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인천시의 행정은 내일의 시민을 그 중심에 놓아야 한다. 예전에 계획되었다면 취소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지구온난화와 투기에 기여하는 행정은 돌이킬 수 없는 오점으로 남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시민의 건강을 살피지 않는 행정은 내일을 위해 없는 게 낫다.


인천 중앙공원 1지구에 세워진 '희망의 숲' 안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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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준재 2010-04-19 10:28:41
녹색공간의 필요성을 주장한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녹지공간으로 새로운 도로를 만드는 것은 반드시 취소되어야 합니다. 인천은 녹지가 너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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