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병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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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병원 방문
  • 김정아
  • 승인 2013.02.0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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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김정아 / 햇살노인전문기관 온가정의원 원장·내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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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가명)씨는 걸어 본 적이 없는 열아홉 살의 중증 장애인이다. 중학교 때까지는 엄마가 업기도 하고 학교 버스도 타고 그렇게 특수학교를 다녔다. 뇌성마비로 인한 신체장애가 심하여 휠체어에 똑바로 앉아 있기도 어려운 상황인데다 갈수록 근육이 약화되어 몸이 더 작아졌다. 언어장애도 심하고 지능도 떨어지니 단어 한마디를 분명히 말하기도 어려울 뿐 만 아니라 손짓 발짓하면서라도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다. 너무나 정성스럽게 기수씨를 돌보는 엄마도 지금은 아들이 어디가 아픈 지를 잘 알지 못하겠다고 했다. 어려서는 말은 못해도 표정으로, 가슴으로 알 수 있었던 아들의 불편감을 이제는 잘 느껴지지 않아서 더 슬퍼하신다. 물론 의사인 나는 실없이 맥박이라도 잡아보면서 어디가 아픈 지 알아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우리 병원은 다른 병원에 비하여 장애가 있는 환자들이 꽤 많이 방문하는 편이다.
그 이유를 들어 보자면 먼저 같은 동네에서 진료를 시작한 지도 25년이 넘었으니 선뜩 장애가 있는 식구를 내보이기 불편해 했던 나이 든 부모들도 조금은 허물없다는 생각이 들어 진료를 받으러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젊은 부모들은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보통 아이들과 하나도 다름없이 진료를 받고 이런 저런 상담도 하고 잘 키우기 위해 한 사람의 동지를 얻어 가신다. 정말 자랑스러운 부모들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병원이 1층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2층에 병원이 있었을 때는 아빠가 아이를 업고 엄마가 휠체어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와야 했으니 웬만하면 안 오셨을 것이고, 진료비가 많이 들 것을 알면서도 계단이 없는 종합병원으로 가야만 했을 것이다. 진료환경의 물리적인 제약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실제적으로 이용하기에 불편한 점에 못지않은 제약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 의사, 간호사 그리고 대기실에 기다리고 있는 다른 환자들과 대면하기 어려운 점이다. 자폐증 어린이에게 예방 접종을 하는 날은 학대 현장이라고 신고할까봐 걱정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엄마와 간호사 두 명에 원무과 남자 직원까지 동원되어 아이를 잡고 나는 아이를 안고 진료실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주사를 놨다. 두려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이는 온 병원이 떠나가라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사실 우리 병원 외래를 이용하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다. 우리 병원이 노인 병원과 같이 있다 보니 장기요양을 위한 의사소견서를 발부 받으려고 방문하신 치매 어르신도 계시고, 휠체어나 심지어는 이동식 침대에 누워서 진료를 기다리는 노인 분들도 계시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고 조금 멈칫거리면서 피하려고 하기도 했지만 자주 오는 외래 환자 분들은 양보도 해 주고 이동할 때 도와주기도 하신다. 자폐아동이나 휠체어를 탄 어린 아이가 있으면 놀아 주시는 분도 계시다. 장애 식구를 가진 가족들은 복잡한 절차를 걸쳐 병원에 오게 되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자연스러운 병원 분위기에 조금 안도할 것이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환자나 보호자에게 여쭈어보지는 않았지만 원장이 장애인이라는 것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하나의 요인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귀가 안 들리는 내가 4개 국어를 말할 수 있는 이유'라는 책을 써서 화제가 되고 있는 김수림이라는 청각장애인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입모양을 보면서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자신은 소리 내어 말을 하면서 긴 인터뷰를 즐겁게 하는 그녀가 존경스럽기도 하였지만 그녀의 다음 말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장애인은 아무리 애써도 반드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좌절도 하지만 결국엔 장애를 인정해야 자신도 사회도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도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도와준 이들에게 보답을 합니다." 장애를 인정한다는 것-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그 장애를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의과대학을 다닐 때 장애인들의 모임인 '정립회'라는 곳에서 회원이랄까 자원봉사자랄까 하는 애매한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여름 캠프에서 댄스파티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 모임을 그만뒀다. 춤추고 노는 것도 싫어하는 내가, 휠체어를 탄 채로 뇌성마비로 뒤틀린 근육으로 열심히 춤을 추는 그들을 보면서 장애의 극복은 감정의 표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뭐든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에 있다고 재차 확인하면서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내 자신이 치졸하고 창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복잡한 심경이 개운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반대로 나도 대단한 모토 없이 자연스럽게 다른 장애인을 도와줄 수 있는 성숙함을 김수림씨는 벌써 터득하고 있는 것 같다.
 
스웨덴에는 장애인 등록제도가 없다고 한다. 그 자체가 차별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진단 받기도 복잡하고 이미 장애등급을 받은 많은 장애인들이 등급 갱신에서 탈락되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갈 길은 멀지만 우선 의료적 요구가 많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 편안하게 진료 받을 수 있기 위한 노력을 우리 병원부터 먼저 하고자 한다. 이전처럼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이 줄었지만 이제는 식구처럼 아무렇지 않게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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