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살아나는 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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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살아나는 재건축
  • 박병상
  • 승인 2013.02.0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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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창] 박병상/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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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천시장은 한 단체에서 주최하는 연설에서 200여 군데 재개발 지역 중 수 십 군데를 직권으로 해제했노라 자랑했다. 주민의 반대가 극심한 지역인 모양인데, 경기침체로 기대했던 사업성이 어두워진 이후에 바뀐 민원을 받았을 것이다.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많았던 시절, 재개발하기만 하면 집값이 껑충 뛰었던 시절, 재개발은 황금산업이었다. 사업자가 자신의 부담으로 재개발을 진행해도 막대한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집주인은 부담 없이 제 집의 부가가치가 상승하는 까닭에 유행처럼 단독주택들을 헐어 아파트로 바꾸고 20년 정도 지난 저층 또는 고층 아파트를 헐어 고층 또는 초고층 아파트를 지어댔다. 하지만 수요가 싸늘한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집주인이 적지 않은 부담을 해도 부가가치가 통 오르지 않는다. 그러자 재개발 또는 재건축 사업이 시들해졌다.
인천시의 도시계획위원회란 곳에 위원으로 잠깐 활동한 적 있다. 참석 첫 회의 안건이 재개발이었고 위원들은 시에서 추천한 200여 군데를 원안 그대로 통과하자는 분위기였다. 주민이 원하기 때문이라 이유를 붙였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주민도 사실 적지 않았다. 그래서 현장 방문 후 논의하는 것으로 수정 제안했고, 그 결과 200여 군데 중 3분의1은 원안 가결, 3분의1은 사업 내용 수정, 나머지는 반려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한데 무슨 영문인지 재개발 대상 지역이 다시 200여 군데로 늘어났다. 합리적 논의 없이 계양산 골프장 허가를 다수결로 밀어붙이기에 도시계획위원회를 그만둔 이후의 일이다.
당연히 부가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짐작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렸던 사람들이 낭패를 겪는 요즘, 많은 재개발 또는 재건축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시작을 하지 않은 지역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많은 돈이 투자된 상태에서 멈춘 지역은 주민과 사업자는 물론이고 이해관계가 다른 주민 사이에 불신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세입자의 이해는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에서 거의 배려되지 않는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도 형편이 모자란 집주인은 떠나야 하는 게 재개발 재건축이다. 세입자들은 대부분 살던 곳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아파트 단지로 변하는 재개발과 재건축. 어떤 건축가는 자연재해나 핵발전소 폭발이 아니라 아파트가 마을을 해체한다고 비평했다는데, 현관 문 잠그면 남에게 참견이나 해코지를 당할 걱정이 없고, 관리비만 제때 내면 냉온수와 하수, 전기와 가스, 통신이 자유로운 아파트는 이웃에게 필요 이상으로 문을 닫게 만든다. 내 집의 온돌파이프가 새야 아랫집과 소통이 되는 아파트들은 다닥다닥 붙었지만 단지 안에서 몇 년을 함께 살아도 대화는커녕 눈인사도 나누지 않는다. 복도식은 그나마 낫지만 주민들은 서로 이웃인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인천시 동구의 한 오랜 동네는 내심 재개발을 희망하지만 부가가치가 상승할 것 같지 않자 멈칫하는 지역이다. 재개발 논의로 어수선할 때 찾아간 그 동네는 주차 공간이 협소한 골목과 낡은 단독주택으로 방문자에게 어지러웠지만 주민들은 익숙했고 겉보기 다정다감했다. 눈길이 마주치면 목례와 인사를 나누었고 가던 길을 돌아와 음료수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아파트 단지에서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중 누가 세입자인지 알 수 없지만, 이웃으로 소통하는 따뜻한 모습이었다. 낡고 비좁아 정비가 필요해보이지만 아파트로 이웃 사이를 단절하기 아쉬운 지역인데, 아파트 단지가 아닌 재개발은 없을까.
1972년 74남북공동선언 이후 방문하는 북측대표에게 잘 보이게 하기 위해 통일로 주변에 획일적으로 지었다는 서울 은평구 한양주택은 지금 없다. 워낙 날림으로 지어 주거환경이 불량했지만 마음을 맞춘 주민들이 주택을 고치고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며 30년 가까이 돈독하게 살았던 곳이었지만 뉴타운으로 사라졌다. 2000년대 초 재개발 열풍 속에서 그들은 뉴타운 편입을 마다했고, 서울시가 받아들이지 않자 공동체가 살아 있는 재개발을 원했지만 역시 거부되었다. 지금 한양주택이 있던 자리에서 공동체 분위기는 사라졌다. 아파트 열기가 식어버린 요즘, 마을의 공동체를 살리고 주거공간을 개선하는 재개발은 어려운 것일까.
크고 작은 주택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동네의 오랜 이웃은 서로 잘 안다. 작은 집에는 대체로 젊거나 살림도구가 단출한 주민이, 큰 집에는 식구가 많은 주민이 산다. 대부분의 집에는 거실과 화장실이 있고 요즘은 집 크기와 관계없이 세탁기와 커다란 냉장고와 승용차도 갖추고 산다. 그래서 집과 마당이 비좁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 놀 공간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아파트처럼 천편일률 구조가 아니라 공동체를 염두에 두는 생활공간을 배려하는 재개발은 새로운 시대적 소명일 수 있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 이외에 공동 공간을 만들어 이웃과 함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마다 두 개 이상 있는 화장실을 하나로 줄이는 대신 세탁기를 공유할 공동 시설을 만들면 어떨까. 공동 식당과 책과 악기를 나누는 거실 겸 사랑방을 만들면 어떨까. 텃밭과 정원을 공유하고 자동차를 공동으로 사용하면 비용과 주차 공간을 줄일 수 있다. 이웃 사이에 정이 깊어진다. 아이들은 자기 방에 갇혀 컴퓨터 게임에 빠지기보다 친구가 기다리는 밖으로 나갈 것 같다. 민주주의를 밝게 하는 사회성이 좋아질 것이다. 돈독해진 이웃의 배려와 도움으로 공동육아와 방과후 보충학습이 가능하니 신뢰가 엮는 직업도 마을 안에서 창출할 수 있다. 세입자가 쫓겨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밝은 공동체가 건강하게 이어질 것이다.
서울 마포의 성미산 마을에는 아이들이 밖에서 주로 논다. 어른이 지나가며 부르면 모두 밝게 웃으며 다가간다. 서로 막역하게 어울리므로 누가 누구의 부모고 아이인지 방문객은 눈치 채기 어렵다. 그런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재개발의 모형을 주민과 관료, 그리고 전문가와 건설업자이 서로 도와 만들어 낼 수 없을까. 건축만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 법과 윤리, 인문과 사회학 전문가들이 모여 그런 마을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고민했던 해외 사례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빗물을 재활용하고 태양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전기를 얻는 공동주택, 우리가 참조할 예는 많다.
지하공간이나 관리사무실의 빈 공간을 활용한다면 아파트도 어느 정도 공동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작은 도서관을 만든 아파트 단지가 있고 공동육아가 가능한 방과후 교실을 꾸미는 곳도 있다. 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공동 공간이 좁은 아파트 단지는 아무래도 유연성이 떨어진다. 재개발이 필요한 오래된 주택단지라면 그 모델을 찾기 비교적 쉬울 것이다. 가격이 상승한 집을 팔고 떠날 의도가 아니라 오랜 이웃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 지속되기를 희망한다면,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논의하여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입자도 소외되지 않는 마을을 합의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만든 동네는 건강할 수밖에 없다.
‘구도심 재창조’를 정책으로 내놓은 인천시장은 최근 “전면 철거 방식에서 탈피해 마을의 공동체 문화를 살리면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출구 전략을 시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인천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수도국산 일원의 이른바 ‘괭이부리마을’은 원주민 이탈과 장소의 고유성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현지 개량의 재개발 방식을 시도하겠다고 한다. 관료주의와 성과주의로 투명한 논의가 부족하거나 세입자 소외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부분적으로 공동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하니 관심이 모인다. 시간에 얽매지 말고 충분히 논의해 모범적인 동네로 따뜻하게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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