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인류가 어떻게 가야하는지 투명하게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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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인류가 어떻게 가야하는지 투명하게 보여줘"
  • 이장열 기자
  • 승인 2013.02.19 2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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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대 사람들, 톡톡인터뷰 (10) - 정승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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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후 3시 인천문인협회가 자리잡은 수봉산 기슭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인천문협의 전신인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인천지부'(약칭 인천문청)가 결성된 해가 1950년. 60여년 세월 동안 부침을 거듭하며 '문학'이라는 이름을 인천지역에 각인시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 인천문인협회으로 다가온다.
 
"인천문협 20년사", "30년사", "50년사", "60년사"(2007년)가 산 증인이다. 광복 이후 인천의 문학 발자취가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는 곳. 드물게 인천의 문학 퇴적층이 마련되고 간수하는 문인조직로서 인천문협은 인천에서 남다른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제32대 인천문인협회을 이끌고 있는 정승열 시인을 만나기 위해 수봉산에 터잡은 인천문인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1965년 인천고 3학년 때 인천지역 고교 문학반들을 한데 끌어 모아 '해일문학동인회'를 만든 세월이면, 현재 정승열 시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당시 인천고에는 조우성, 손문수 등이 있었고, 제물포고 문학반을 함께 이끈 이들 가운데 김윤식 시인(전 인천문협회장), 김흥규 교수(고려대), 조남현 교수(서울대) 등과 해일문학동인회를 결성했다. 당시 문학반에서 문학을 매김로 합평회와 토론회를 가진 것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하는 정승렬 회장. 그는 1979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인천문협 창문으로 저 멀리 옛 인천대학교 건물이 내려다 보이는 문협 사무실에서 만나 정 회장과의 인터뷰는 오후 3시에 시작해 오후 4시 10분까지 진행됐다.
 
1960년대 인천은 한국문학활동의 중심 공간
 
-. 문학을 하게 된 동기는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인천지역에서 문학은 대단히 열풍이었다. 백일장에 가면 학생들이 숱하게 많이 등장해 자웅을 겨룰 정도로 다시 인천지역에서 문학 열기가 대단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65년에는 제물포고, 인천고, 인일여고, 인천여고, 송도고, 박문여고, 인천여상, 동산고에서 활동하던 문학반을 모아서 '해일문학동인회'를 결성할 만큼 문학의 힘은 대단했다. 당시 동인회에 활동했던 동인들 15명이 대거 등단할 정도였다.
 
1964년에는 율목동에 자리한 옛 인천시립도서관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클럽에서 생전 처음을 듣는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충격을 받은 것도 문학으로 나아가는 데 단초가 됐다. 당시 독서클럽 지도교사 가운데 지용택 선생이 기억이 난다. 당시 지용택 선생은 저희들에게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등 근대문학인들의 생애와 작품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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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학산문학>은 인천문협의 자랑이다.
 
-. 인천문협이 펼쳐 낸 성과와 중점 사업은
제일 중심에 놓인 것은 계간지 <학산문학>을 발행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령 78호가 나왔다. <학산문학>은 첫 창간호를 준비할 때 편집방향은 전국적인 문예잡지로 나아간다는 목표를 두고 시작했다. 발행인이 저도 편집방향에 대해서 편집진들에게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학산문학>이 인천지역에서 발행하는 문학잡지이지만, 전국적으로 알려내는데 가장 큰 원칙으로 자리잡았던 바탕이다.
 
인천문협에서 <작고 인천문인선집>을 시, 소설, 아동문학, 수필 등 4 갈래별로 분류해서 엮어낸 일도 성과라고 생각한다. 인천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한 문인들을 발굴해서 작품들을 엮은 일은 인천문협의 지나온 과거 역사를 기리는 일이기에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문협', 소통 매개자가 중요한 몫
 
-. 인천문인협회 회장으로서 목표와 방향은
제자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제일 먼저 선포한 것이 문협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었다. 그 노력으로 일환으로 인천지역의 동인회가 20여개가 있는데,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교류하도록 길을 터 주는 것이었다. 작년에 처음 문인협회에서 만났다. 모두들 모여서 좋았다고 한다.
 
동인활동으로 참여한 문학 참여자들이 어림잡아 1,200여명이 되는데, 이들을 인천문협이 그냥 둘 수 없다는 생각에서 만남을 주선했다. 그렇다고 문협이 중심에 미리 두고 출발한 것은 아니다.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고 문협이 매개자 역할만을 할 것임을 보여줬고, 동인회 회장들도 이 마음을 알고 적극 참여하는데 공감했다. 앞으로 이런 자리를 계속 만들어서, 동인회 사이에 작품 교류도 하고 품평회도 갖는다면 이것이 곧 인천문학의 발전을 도모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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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협'의 문턱을 확 낮췄다
 
-. '문협' 변화 노력은
제가 문협 회원 가입 조건을 낮췄다. 제가 취임하기 전까지 입회비가 30만원-20만원까지 내야 했다. 가입 조건도 등단해야 하는 조건을 달고 있는데, 거기에 입회비까지 너무 높가 받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생각에서 입회비는 10만원으로 낮추었다. 그리고 등단 조건도 등단지가 5년 이상이면 자격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문턱을 낮추는 데 방향을 잡은 것이다.
 
또한 문학 신인들의 등단 길을 좀 더 마련해 주는 신인상과 추천제를 올해 마련해서 시행할 것이다. <학산문학> 편집진들과 논의를 해서 올해 안에 신인상과 추천제도를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계간지 <학산문학>에 신인상과 추천제 등을 통해서 인천과 서울,경기 지역의 문학인들을 발굴해서 인천지역 문학의 토대를 단단하게 하는데에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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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시집> 지하철역에 깔리게 무섭게 나가
 -. 최근 문협 활동 가운데 기억이 남는 것은
인천문협이 추진한 사업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일은 <손바닥 시집>을 만들어서 지하철역사에 배포한 일이다. 인천교통공사와 협의해서 인천지하철역에 각 5천부씩, 1만부를 제작해서 뿌렸는데, 하루가 지나면 지하철 승객들이 하나둘씩 가져가는 인기를 끌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인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아뭏튼 대히트를 쳤다.
 
인천문협 회원들에게 작품 선정 기준을 미리 공지해서 접수를 받았다. 작품 가운데, 1) 재미 있는 것, 2)한 폐이지를 담을 수 있는 시, 3) 감명을 줄 만한 시를 접수를 받았는데, 이것을 가려서 <손바닥 시집>으로 만들었다. 선정된 인천지역 시인들도 무척 기쁘했다. 자신들의 시가 수록된 <손바닥 시집>이 워낙 잘 나가는 바람에 진작 자신들은 책자 하나를 갖지 못하는 일도 벌어질 정도였다.
 
<손바닥 시집>은 인천지역의 시인들의 시를 알려내는 데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올해도 <손바닥 시집> 을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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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천문협이 다가서야 한다
-. 문학은 무엇인가
우리 시대에 문학작품이 읽히지 않고 일반독자들에게 외면 당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없어지지 않고 살아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은 정신세계의 꽃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인류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기에 사람들에게 그대로 남아 살아 있을 것이다.
 
요즘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스스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늘었다. 이제 인천문협은 이들에게 다가서는 노력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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