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성 질환의 비약물적 치료·돌봄의 이해
상태바
노인성 질환의 비약물적 치료·돌봄의 이해
  • 김인수
  • 승인 2013.03.22 10: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강칼럼] 김인수/햇살요양병원 병원장 정신건강의학과
노인돌봄.JPG
 
노인인구의 급증에 따라 노후에 있어서의 건강관리와 노인성질환에 대한 불안과 대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의 의료보험공단에서 발표하는 의료비 지출현황에 있어서도 노인성질환의 비중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하지만, 현행 의료비 지출이라는 수치가 노인들의 삶의 질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사실상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와 양질의 서비스가 보험수가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보험수가 이외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거주 노인들에게 주거, 의료 및 소득에 필요한 복지행정을 통합적으로 적절히 제공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면한 노인성질환 환자들을 위한 현재의 요양서비스는 개선되어야 하고 어르신과 가족들의 기대와 욕구는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요양병원 주요특성의 하나는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위한 의료기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의료기관과 달리 어르신들의 기본 일상활동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기 바라는 기대가 클 수 밖에 없다. 이를테면 식사나 대소변이 문제가 되어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데 진단에 따른 처방과 더불어 이러한 일상적 어려움을 해소해야만 하는 것이다. 일단 증상의 완화와 일상활동의 적응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 환자가 안정되고 일정한 의료적 개입이 장기화되면 요양시설로 전원을 고려하게 된다.
 

요양시설 역시 마찬가지로 어르신들의 회복되지 않는 기능장애를 돌봐야 하지만 병원과는 달리 증상에 대한 의료적 개입이 크지 않은 반면에 생활적인 욕구의 처리가 보다 중요한 업무가 된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서의 수발뿐 만 아니라 정서적, 감정적 욕구에 대한 적절한 개입이 요구된다. 이것을 위해서는 어르신들의 질병의 특성과 경과, 성격의 변화 그리고 장애 정도에 대한 사례관리가 필요하며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간호사, 의사가 함께하는 통합적인 팀 활동이 중요하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해오던 사람이 노인성질환으로 인해 와상으로 가는 과정이 단박에 이뤄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오히려 점차적인 기능의 상실을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듯이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반응이 드물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노인성질환(치매, 중풍, 파킨슨병 등)의 만성적 진행에 따라 호전되지 않는 증상과 후유증 그리고 기능장애에 대한 수발과 처치 및 재활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기 적절하게 제공되어야 하는 한편 문제행동으로 나타나는 개인적 욕구에 대한 파악과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노인성질환자를 모실 때 곤란을 겪는 흔한 사례 중 하나가 성적 욕구와 관련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시아버지를 수발하는 한 며느리의 고민 중에 환자의 부적절한 성적 행동이 있을 수 있다. 병을 처음 발견하는 과정이 그러하듯이 일부러 사람을 괴롭히는 듯이 발가벗는다든지 자신의 성기를 만진다거나 다른 사람의 신체를 만지려 하는 행동이 처음부터 용납되기는 쉽지 않다.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질병 및 장애와는 달리 동반한 정신신경학적 장애에 대한 인정이 쉽지 않은 것은 눈에 띄는 이상이 없어 보이기에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구나 일관성 있는 행동의 관찰이 아닌 ‘그랬다 안 그랬다’ 하는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예전의 그 사람을 알던 사람으로는 당황스럽고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인격의 변화는 되풀이 되는 낯설은 관계에 가족들을 지치게도 하고 절망하게도 한다.
 

장시간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시설에서의 어르신들의 성적인 문제행동도 돌보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주요문제 중의 하나다. 성적 추근댐으로 생각되는 일련의 퇴행성 행동들은 인격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충격이 될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증상과 관련된 성적인 문제 행동으로 이는 의도적인 혹은 의식적으로 계산된 목적수행적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약화된 억제력이 무의식적으로 (일차적 사고의) 욕구의 배설을 무작위적으로 허용하게 할 수 있지만 욕구를 의도적으로 수행할 만한 능력을 갖지 못한 탈억제의 증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다. 한편으로 어르신 환자의 곁에서 생활을 함께하는 요양보호사는 자신의 욕구가 아닌 타인의 퇴행적 욕구를 자신이 통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숙련되고 전문적인 태도를 발달시킬 필요가 있다.
 

대표적 노인성질환인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는 과정을 훑어보면, 결과적으로는 알아보거나 판단하지 못하게 되는 실인증, 언어적 표현을 이해 못하고 의사표현도 할 수 없게 되는 실어증, 자신의 의지로 목적을 수행할 능력이 없어지는 실행증 등이 심화되는 과정 상에서 과거 그 사람이 갖고 있던 인격적 요소의 붕괴가 일어나게 되며 사실상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으나, 가족이나 비교적 건강한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으로 각인된 모습과 겹쳐지면서 점차 돌보는 가족들의 애도와 상실의 진행이 알게 모르게 진행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도반응에 있어서 처음 충격을 받듯이 사랑하는 사람의 치매 진행이 배우자나 가족에 의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극심한 혼란을 때로는 가져오기도 할 것이다.
 

장기요양시설에서의 돌봄 노동은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어주는 수발만이 아닌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시켜야 하는 사명까지 포함한다. 어르신들의 퇴행적 행동을 보호하고 때로는 환자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혹은 받아들일 수 없는 가족들까지 위로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시설에서의 생활환경적 요소까지 섬세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돌봄 노동이 대부분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가운데 남자어르신들을 모시기가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 시설에서 기피도 하게 되는 이유가 생물학적인 차이 만이 아닌 우리 사회의 남성위주의 가치관이나 비민주적인 정치경제문화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역설적으로 남성(적)사회에서 누려온 기득권의 습성이 인생의 마지막 단계의 상황에서 여성들에 의한 역차별을 당할 원인을 스스로 제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르신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존중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요양보호사나 병원의 간병사들이다. 이들의 전문적 소양은 환자의 수발을 통해서 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격적 관계의 존중을 통해 표현되어야 하며 이러한 전문성이야 말로 돌봄을 숭고한 직업적 긍지로 삼을 근거로 충분하다. 현장에서의 동료들간의 대화와 다른 직역들과의 소통과 나눔을 통한 학습과 자기계발은 쉽지 않은 노동의 고단함을 삶의 열정과 보람으로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