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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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어른들
  • 김영수
  • 승인 2013.04.1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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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김영수 / 인천YMCA 갈산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성냥팔~2.JPG
 
 
어릴 적 읽었던 동화들은 대부분 어려움을 극복한 주인공들이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니 너희도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하라는 것이 동화를 권하는 어른들의 생각이었다. ‘과연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을까?’라는 심술궂은 질문을 품은 것은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기 시작한 다음이었고, 그 당시는 주인공들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런데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애절하고 안타까워 죽은 안데르센을 깨워 행복한 내용으로 고쳐 쓰라 하고 싶었다.
 
1년의 마지막 날 밤, 새해를 앞두고 분주한 발길로 집을 향하는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한 굶주린 성냥팔이 소녀가 추운 거리를 걷고 있다. 성냥을 팔지 못하면 집에 돌아갈 수도 없는 소녀는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성냥 한 개비를 긋는다. 성냥 한 개비를 글 때마다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온갖 환상이 소녀 앞에 나타난다. 큰 난로와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 그리고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린 불빛은 높은 하늘로 올라가 밝은 별이 된다. 그리고 할머니가 나타나자 소녀는 자신도 그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소녀는 할머니를 계속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 남은 성냥을 몽땅 써버린다. 그러자 사방은 밝아지고 소녀는 할머니에게 안긴 채 하늘 높이 올라간다. 추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자 소녀는 미소를 띤 채 죽어 있었다. 그러나 소녀가 어떤 아름다운 것을 보았는지, 얼마나 축복을 받으며 할머니와 함께 즐거운 새해를 맞이하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섣달 그믐의 추위 속에서 고작 성냥 한 개비가 피우는 불꽃의 따듯함이 무슨 도움이 되었겠는가? 그 불꽃조차 순식간에 꺼져버렸을 텐데. 행복한 죽음이라니. 죽는 것이 축복이라니. 애절하다 못해 잔인하다. 무릇 동화란 더러움과 고단함이 켜켜이 쌓인 현실을 아라비아의 양탄자로 덮어 안쓰러운 희망을 주는 것이거늘.
 
다른 동화와 사뭇 다른 ‘성냥팔이 소녀’는 이상하게도 마음에 남았다. 어렵게 살던 우리의 처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아니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담고 있어서 더욱 그러할 터이다. ‘소녀’가 아닌 ‘어른들’이 고작 성냥 한 개비의 따뜻함과 환상에 기대어 살고 있지 아니한가? 기대어 쉴 곳 없고, 내 처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조차 없으며, 팔지 못하면 돌아가 쉴 가족조차 이루지 못할 현실 앞에 로또복권으로 희망을 삼고, 술로 위안을 삼는 ‘성냥팔이 어른들’이 도처에 가득하다. 죽음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요 축복이라 표현하는 것을 잔인하다 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성냥팔이 소녀가 죽은 것이 소녀가 무능하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이는 없다. 오히려 작은 소녀를 그런 처지에 놓이게 한 사회를 비판하는 데 동참할 이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성냥팔이 어른들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무능하고 게을러서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냥 조차 대형할인매장에서 더 싼 값으로 팔고 있는 현실임에도. 돈이 돈을 버는 세상, 온 종일 거리를 다니며 성냥을 파는 노동보다 아이디어와 지식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시대임에도.
자라는 모습을 보았고, 비밀을 함께 품고, 삶의 고단함을 추억으로 잠시 덮어둘 수 있었던 이가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타까움으로 어떤 다짐의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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