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대칭 수저, 기우뚱한 우리네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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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대칭 수저, 기우뚱한 우리네 삶
  • 공주형
  • 승인 2013.04.22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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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공주형/미술평론가·인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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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점심시간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밥과 찬을 사이에 두고 남녀노고가 정겹게 둘러앉았습니다. 여럿이 등장하지만 인물들의 면면은 구체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점잖게 앉아 밥을 먹고 있는 남정네가 있는가 하면, 큰 밥그릇을 무릎에 올려 둔 아이도 있습니다. 조신하게 젓가락으로 반찬을 들어 올리는 더벅머리 총각이 있는가 하면, 부채로 더위를 식히며 물끄러미 다른 이의 밥 먹는 모습을 넘겨다보는 이도 있습니다.
점심시간이라고 해서 꼭 밥만 먹는 것은 아닙니다. 술도 한 잔 곁들여 집니다. 이 순간 만큼은 허기와 함께 술병에 담긴 탁주를 사발로 나눠 마시며 더위와 피로에서 잠시 자유롭습니다. 그 모습을 검정 삽살개가 멀찍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상의를 벗은 몇몇 남정네들과 밥 광주리 뒤의 앞섶을 열고 아이에게 젖을 물린 아낙네입니다. 흉허물 없이 지내는 이웃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점심〉은 이렇듯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의 한 순간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민속학 전공인 지인을 통해 접한 우리 전통 수저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을까요. 너무 유명해서 자주 접했던 그림이건만, 유독 그림 중앙의 남정네의 나뭇잎 모양 숟가락에 시선이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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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장인들은 수저 하나에도 그것을 쓸 사람을 배려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오른손잡이용은 수저의 오른쪽 잎 부분이, 왼손잡이용은 그것의 왼쪽 잎 부분이 더 크게 만들어졌답니다. 오른손잡이의 수저는 오른쪽이, 왼손잡이의 수저는 왼쪽이 밥 그릇과 부딪히는 횟수가 잦아 한 쪽이 더 빨리 닳아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런가 하면 풍년에는 수저의 잎 부분을 작게 만들었고, 흉년에는 그것을 깊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먹을거리가 풍성할 때는 밥을, 그렇지 않을 때는 죽을 먹기에 적합한 수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때문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런 세심한 마음씀씀이가 밥 부족한 세상의 〈점심〉을 정 넘치는 풍경으로 만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법원이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을 직접 찾아가 항의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층간소음이 이웃 간의 살인으로 이어지는 마당에 이에 대한 예방과 해법을 정책적, 법률적 차원에서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웃 간의 문제를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만 토로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한 아침, 좌우 완전한 대칭의 수저로 밥을 먹고 출근하는 길 마음 한 편이 무거웠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비대칭 수저로 부족한 음식이나마 넉넉하게 나누었던〈점심〉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만 있는 것 같아서이었습니다.
 
*〈점심〉은 우리나라 보물 제527호로 지정되어 있는《단원풍속화첩》에 실린 25점의 그림 중 하나이다. 그림 중 하나이나 현재 이것을 누가 그렸는가에 대해 미술계에서 논란이 진행 중이다.《단원풍속화첩》은 조선시대 풍속화의 대가 김홍도가 직접 그린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화첩의 그림 중 일부 혹은 전부가 후대 화가들이 존경하는 선배 김홍도의 화풍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베껴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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