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연설'과 '한복'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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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연설'과 '한복' 외교
  • 황명숙
  • 승인 2013.05.1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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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황명숙 /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
박근혜 한복.JPG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문국인 나라가 미국이다. 이는 한미 동맹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방문 목적이며 한국 안보, 외교, 경제, 문화까지 포함된 본인의 의식을 단호하게 보여 주었다. 나날이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과 예측 불가능한 북한 정치 상황과 일본의 극우적인 정치 문제 등 동아시아권의 정치와 힘의 균형을 어떻게 지혜롭게 이루면서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적인 실속을 채우고 우리의 국격을 높이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청정에너지 공동연구, 한 미 대학생 연수 취업 프로그램 확대, 기후변화 공동 성명 등에 합의 하였으며 아울러 글로벌 협력을 확대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미국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동아시아권의 외교문제도 점진적으로 잘 풀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에 인상적인 것은 8일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과 '한복'이다. 방미를 수행하는 청와대 관계자들에 의하면 박 대통령은 방미 기간에도 시간 나는 대로 상하원 연설문을 교정하며 영어 연설을 열심히 연습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진지한 노력에서 특유의 차분함과 신뢰감이 묻어 나오는 것으로 본다.  뉴욕지역 동포 간담회가 열린 아스토리아 호텔에서는 연분홍색 치마저고리에 다홍색 고름으로 포인트를 준 우아한 한복으로 교민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남성 대통령의 의상은 검은색 양복으로 식상한 반면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아주 자연스럽게 전하는 패션외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미 기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공식 행사에 한복을 입고 참석 했는데  5일 뉴욕 동포간담회와 7일 밤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에서 열린 ‘한 미동맹 60주년 기념만찬’, 8일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였다.  이번 방미 기간에 드레스코드가 한복이 주요한 것이었며 이는 문화홍보의 역할도 함께 한 것이다.

 세계사에서 문화에 치중한 여성 정치인을 들자면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와 프랑스의 루이15세 시절의 퐁파드르 후작부인을 들 수 있다. 헨리 8세와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재위 1558년에서부터 1603년까지 45년 동안 영국 절대주의 전성기를 이룩한 여왕이었다. 그녀는  화폐 제도를 통일하고 중상주의 정책 근간으로 영국 제국주의를 이룩하였다. 빈민구제법에 의하여 토지를 잃은 농민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치를 한 엘리자베스 여왕도 16세기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었다고 한다. 3000벌의 드레스, 80개의 가발, 27개의 부채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번영하는 조국의 위상에 어울리는 화려한 의상과 보석들을 사용하며 당시 전 세계의 패션을 주도하였다고 한다. 이를 위해 여왕은 예술적 감각을 살려 제작, 관리하는 데 많은 인력을 동원하였으며, 전 세계에서 금과 사치품을 들여와 가장 화려한 디자인의 시대를 이끌었었다.  또 궁정에는 베네치아,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온 외국인 음악가가 여럿이 궁중 음악가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여왕도 춤 애호가로  신하들과 피렌체 풍의 춤을 추었다고 한다.  무용도 궁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 요건이었다고 하니 이러한 문화가 유럽의 귀족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 엘리자베스 여왕도 사치스러움을 부각시킬 수도 있고  다른 관점으로  여성의 섬세함과 화려함을 정치와 외교 문화에 발휘해서 문화를 발전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또 한사람은 프랑스의 루이15세의 시절에 퐁파드르 후작부인을 들 수 있다. 당시 부르봉 왕조의 국왕들의 재산은 대단했다. 우선 국왕의 연수입은 약 4억 5000루블에서 5억 루블이나 되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의 화폐로 환산해 보면 3000억 원이란 방대한 액수가 된다. 그 때 당시 고급관리의 연봉이 2000루블에 불과했다고 하니 국왕의 재산과 그 수입의 정도를 짐작할 수가 있다.  왕실이 사치와 낭비의 온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퐁파드르 부인은 18세기 프랑스의 학예를 진흥시키고 보호한 공적은 높이 평가해야한다는 점에서 역사가들의 견해가 어느 정도 일치되었다. 퐁파드르 부인은 자국 뿐 아니라 동맹국 왕후귀족들로부터 홀대를 받았지만 또 한편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자유주의자들을 궁전의 살롱에 초대한 것도 철학자들의 좋은 이해자이자 보호자가 된 것도 미술가와 문학가들과 교류해서 재정적, 정치적 원조를 아끼지 않은 것도 지지를 받은 이유이다.  그 시대의 철학자인 볼테르나 화가 부셰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퐁파드르 부인의 덕택이라는 설이 있고 계몽주의철학자들의 노력의 산물인 ‘백과전서’가 분서 조치 전에 화를 면한 것도 퐁파드르 부인의 용기 있는 비호 덕에 책이 남아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예술의 세련되고 화사한 전통미는 루이14세의 베르사유 궁전 창건에서 비롯되어, 퐁파드르 부인의 학예장려, 미술보호의 노력에 의해 터전을 잡고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볼테르는 프랑스를 유럽의 학예와 미술의 중심지로 만들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재래’를 방불케 한 것에는 퐁파드르 부인의 절대적인 노력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여성 정치인들이 문화를 주도 하는 것은 세계사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에서도 고운 한복을 입은 것은 국격을 높이고 한국의 전통미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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