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지수' 높은 '민간 소극장'으로 남고 싶다!"
상태바
"'난방지수' 높은 '민간 소극장'으로 남고 싶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5.20 12: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지대사람들 톡톡인터뷰(14) 신포동 '떼아뜨르 다락' 백재이 대표
 
IMG_3363.JPG
 
“‘난방지수’를 높이고 싶다. 민간 소극장으로 남고 싶다. 바닥에 떨어진 전투력을 다시 살려서 사람들이 즐겁게 찾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겠다. 연극도 보고, 전시도 보고 늘 사람들이 찾아와 왁자지껄 소통하는 ‘다락방’이 됐으면 좋겠다.” 중구 신포동에 있는 소극장 ‘떼아뜨르 다락’에서 백재이 대표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봤다.
 
-‘돌체’ 초창기 멤버라고 들었다.
“‘프로극단에 들어가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듣고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돌체>에 입단했다. <돌체>가 데뷔 무대다. 배우 겸 조연출을 했다. 90년도에 시립극단에 입단하면서 <돌체>를 나왔다. 하지만 시립극단에 그리 오래 있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공백기간이었다. 그래도 인천을 벗어나진 못했다. 성격상 겁이 많기도 했고 낯설어서 다른 데 가지도 못했다. 연극할 때는 배우보다는 조연출과 무대감독을 많이 했다.”
 
-극단 ‘떼아뜨르 다락’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2010년에 ‘뭔가 만들어 보자’고 네 명이 모였다. 작가, 연출, 배우 모두 하면서 ‘좋은 작품 만들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러기 위해선 ‘극단 하나 만들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이름을 뭘로 정할까, 하다가 한 친구가 자기가 하던 극단 이름이 ‘다락’인데 어떠냐고 했다. 다락(多樂), 다양한 작품을 하면서 즐거울 것 같았다. 또 ‘다락’방에 들어가면 창고처럼 꼬깃꼬깃 저장된 기억창고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이름을 우연히 정하고, 극단을 어떻게 끌어갈 것인가 방향을 정한 다음 1백만원씩 갹출했다. 2010년 수익 1백만원을 남기게 됐다. 무척 기뻤다. 2010년 10월에 아트플랫폼에서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를 공연했다.”
  
“그러던 중 ‘극단 속에 공연장을 만들어주겠다’는 분이 나타났다. 반은 갤러리로, 반은 극단으로 쓰자는 제안은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우리 모두는 한껏 들떠 있었다. 그랬는데… 마무리단계에서 일이 생겨 지원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아니, 어떻게 하겠냐고 의견을 물었다. 너무 놀랐지만, 감당하지 못하겠지만 ‘일단 가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 시점에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로 인천문화재단 공모전에 응모했다. 공모라는 일을 처음 했다. 마무리공사를 할 때라 돈도 필요했다.”
 
 “2011년 봄, 애초에 잘 해보자고 시작한 네 명의 의견이 잘 맞지 않았다. 결국 내부문제로 지원금을 반납하는 상황까지 되고 말았다. 개인마다 이유가 있었지만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공연장은 유지해야 했다. 연극계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열명이 십만원씩 모으면 운영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결국 혼자서 방향을 못 잡고 우왕좌왕했다. 내가 본디 모험을 안 하는 성격인데 참 난감했다. 그동안 온실 속 화초로 살았던 것 같았다.”
 
 
 
사본 -다락소극장.jpg
 
사본 -다락갤러리.jpg
 
  
-극장과 극단을 동시에 운영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
“한 달에 한두 작품만 하자. 어쨌든 ‘이대로 놓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네 명의 의지를 다시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화합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꿈이 돼버렸다. 사람 사이는 가까웠던 만큼 더 심하게 깨지는 것 같다. 극장이면 개관을 하고, 극단 창단 공연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관 기념 공연으로 <챕터 투>를 올렸다. 갤러리 전시도 함께했다. 공간에 대한 소통이 필요했다.”
 
“9월에는 <신포동 연가>를 무리하게 올렸다. ‘극장은 쉬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여기저기서 빚을 지면서 했지만 결국에는 작품을 할 수 있어도 못하는 상황이 왔다. 극장에 발이 묶여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됐다. 어떤 선배가 말하기를 ‘극단 3년 할 걸, 극장까지 하면 못한다’고 하더라.”
“지난해에 <다락방이 있는 집>으로 인천문화재단 지원금 1,500만원을 받았다. <다락이 있는 집>은 안톤 체홉이 쓴 단편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이렇게 지원을 받아도 돈이 걱정이다. 턱없이 모자랐다. 여기가 ‘개항장문화지구’라서 2,000만원 융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간판도 달고 시설도 했다. 이렇게 중구의 도움을 받았는데도 숨통이 트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공연은 해야 했다. 2013년 2월에 <열여덟 번째 낙타>를 올렸다. 러시아 현대작가 작품인데,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흔쾌히 후원해 주었다. 4월에는 <귀여운 장난>을 닷새 동안 올렸다. 다음 달 28일부터 7월 14일까지는 <어린 시절>을 문화재단 지원금으로 올린다.”
  
“수익을 내야 하는데 잘 안 된다. 내가 기획 쪽으로는 안 되는가 보다. 사업비를 받으면 총 사업비로 쓸 수 있어야 하는데, 더 들어간다. 남들은 잘 하는 것 같던데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 내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돌체> 대표인 박상숙 선생님이 생각났다. 극단을 운영하면서 참 힘드셨겠구나 싶었다. 빚 지는 것도 능력이라지만 참 힘이 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사본 -백재이2.jpg
 
 “극장 운영이 너무 힘이 들어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가, 적어도 재단 사업 지원사업도 반납하면 안 된다. 심의를 거친 공공사업인데 내 사정 때문에 안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5월 20일부터 배우들이 와서 연습에 들어간다. 바닥까지 떨어진 전투력을 가다듬어서 다시 할 것이다. 그동안은 나 혼자만 끙끙 앓다가 얼마 전부터는 주변 선배들한테 힘든 내 상황을 알리고 있다. 극장을 유지하면서 연극하는 게 가장 쉬울 것 같았는데 꿈이 될지 몰라 걱정이다. 7월에 공연이 끝날 때까지 개인 후원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민간 소극장’으로 남고 싶다. 극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7,80년대 번화가였던 신포동에 사람이 줄어든 걸로 안다. 최근에는 어떠한가.
“요즘엔 많아졌다. 중구에서 문화활성화 정책을 편 덕이다. 어느 날은 날 잡아서 관객이 많이 들어올 때도 있다. 사실, 이 장소는 일부러 오지 않아도 우연히 지나가다 들어올 수 있고, 공연을 보고 가다가도 어디든 들어가 뒤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좋다. 흘러 들어갈 수 있는 장소다. 사실, 그동안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 재정난이 심하니까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후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예술이라는 건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늘 허덕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많이 버는 직장이 대우받고 있다. 그렇지 않은 연극을 시작하면서 힘들진 않았나.
“인천에 극단이 꽤 많을 때는 힘들어도 자기 극장이 있었다. 포스터를 각각 붙일 수 있었다. 차비가 없어도, 김치 없는 라면을 먹어도, 출연료가 없어도, 달걀 하나로 때워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복지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날마다 극장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시’를 두드려서 ‘시립극단’이 생겨나게 되었고, 적으나마 몇 십만원씩 받을 수 있었다.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까지 연기 공부를 하고 연기 연습을 했다. 그러다 보니 ‘편안하게’ 연극하게 되더라. 연기를 위해서 연습을 소홀하게 되더라. 치열한 만큼 힘든 건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열정과 의욕도 떨어졌다. 민간 소극장을 운영하다 보면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한다. 배우들 출연료가 많지 않으니까, 배우 스케줄에 따라 일정이 달라지기도 한다. 배우들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배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훈련되지 않은 배우를 쓰면 공연 질이 떨어지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IMG_3361.JPG
 
 
“‘돌체’에 입단해서는 하루가 돌체에서의 생활이었다. 단원이고 배우였으니까 출퇴근을 해야 했다. 늘 극장에서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었다. 연습한 극장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익숙하고, 소리 느낌도 있고’, 극단에다 극장이 있으면 참 좋은 환경이다. 극단만 있으면 ‘헤쳐 모여’ 상황이라 늘 불안하다.”
 
 -‘떼아뜨르 다락’이 어떤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야 할까. ‘소통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에 대한 구상은 어떠한가.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현장에서 배우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찾아오는 고1 여학생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연기지도를 할 수 없다. 다만 무대에서 필요한 모든 연극작업을 알려줄 수 있다’고 말한 뒤 일주일에 두 번 한시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계획을 따로 짜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가 해본 것들, 실전에서 경험한 것을 알려주는데 승산이 있더라. 그 학생은 정말 연극을 하고 싶어한다. 그 학생이 맥을 이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예술’만 해야지 하면서 오만하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바닥에 떨어진 전투력을 끌어올려서 다시 하겠다. ‘극단비전’은 모르겠지만 ‘자생’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다음 작품까지 하고, 열정을 이어가는 것, 자기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자생력이라는 생각이다. 신랑한테 가장 미안한데, 내가 만든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연극은 계속 할 것이다. 지난해 7월 ‘신포주민을 향한 다락 프로포즈’ 때는 참 감동적이었다. 장사가 늦게 끝나 평소에 연극을 보러오지 못하는 분들에게 공연을 보여주고, 뒤풀이를 했다. 그런 일이 많아져 생활현장에서 예술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난방지수’를 높이고 싶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엔 다 이유가 있더라. 공연도 알차게 꾸미고 갤러리에도 전시가 늘 이어져 언제든지 사람이 찾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지나가다가 언제든 들어오면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다락방’이 됐으면 좋겠다.”
 
'떼아뜨르 다락'에서는 다음 달 28일(금)부터 7월 14일(일)까지 <어린시절>을 공연한다.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공연하는 이 작품은 가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가족극으로, 인천연극협회장 이재상 씨의 연출 작품이다. '지금 어린시절을 보내고 있는 당신의 아이들과 어른인 당신이 나누는 소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문의 032)777-1959

 
IMG_3369.JP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