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의 사망선고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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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사망선고 앞에서
  • 유해숙
  • 승인 2013.05.2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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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유해숙 교수 / 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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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는 시민들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처하게 되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공적인 대응이다. 빈곤은 물론이고, 노령, 장애, 무지(교육), 질병(의료) 등 우리는 일생동안 많은 위험을 만나고 이것을 개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회는 집합적으로 이 위험에 대응한다. 이때 일선에서 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사회복지사들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직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호되고 있는 직업영역이다. 사회적 위험에 맞서는 용사들! 이 얼마나 멋진 호칭인가. 특히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이하 사회복지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직업의 안정성에다 일의 내용에 대한 자부심이 더해져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한 조사에서 사회복지공무원 4명 중 1명이 최근 1년 사이 자살충동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충동 이유로 절반 이상이 직무 스트레스를 꼽았다. 우리는 현재 이 비극을 목도하고 있다.
 
"적어도 인간이기에 하나의 인격체이기에 최소한의 존중과 대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날 짓누르는 조직과 질서 앞에서 지난 두 명의 죽음을 약하고 못나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으로 내 진심을 보여 주고 싶다. 공공조직의 말단에서 온갖 지시와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일개 부속품으로서 하루하루를 견딘다는 건 괴물과의 사투보다 더 치열하다."
 
지난 3월에 자살한 사회복지공무원의 유서이다. 지난 15일 논산시청 김모씨가 업무과다로 자살한 것을 포함해 용인(1월), 성남(2월), 울산(3월) 등 올해에만 4명의 사회복지공무원 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회복지공무원이 잇달아 자살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위험에 맞서 싸워야 할 용사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기초적인 통계로부터 유추해 볼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07년부터 5년간 복지정책 재정은 45%, 복지수혜자는 157.6%가 늘었지만 복지담당 공무원은 4.4% 증가하는데 그쳤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부처의 296개 복지사업 중 70%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읍면동의 사회복지공무원 배치규모가 2012년 6월 기준으로 2인을 배치한 곳이 43%, 1인 이하가 23%로 나타났다. 대부분이 1~2명의 사회복지공무원이 모든 복지업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사회복지대상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급격히 노령화가 진행된 것도 그 원인이고, 비정규직과 실업의 증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아동·청소년들은 물론 빈곤독거노인의 증가, 양극화의 심화 등은 사회복지영역의 일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박근혜 정부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제도가 시행된 뒤 각 부처의 복지사무가 지자체로 이관되어 복지업무량이 폭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스템도 받쳐주지 않는다. 공무원노총은 “복지전산시스템인 사회복지통합관리망(사통망)의 속도가 느리고 과부하가 걸려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건수는 평균 20건에 불과하다”며 “수백건에 달하는 신청 건수를 처리하려면 늦은 밤과 주말까지 일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쯤되면 당연히 인력충원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복지재정 확충 없는 사회복지제도는 인력충원 대신 기존인력의 헌신에 의존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때 가장 만만한 상대가 사회복지공무원이다. 인프라의 확충없는 복지정책의 시행으로 인해, 위로부터는 과도한 업무가 아래로부터는 클라이언트들의 아우성이 공무원들의 몸을 깔대기로 해서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공무원은 이것을 의지와 헌신으로 묵묵히 받아내었지만, 자신들의 몸과 마음에 끊임없이 쌓이는 스트레스와 자괴감까지 받아낼 수는 없었다.
 
사회복지사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인 것이다. 이 사회적 타살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것은 사회가 공모한 타살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한국의 사회복지의 사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가 더 이상 선망의 직종이 아니라 3D 업종이 될 때, 그 사회는 사회적 위험에 맞서는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용사들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들의 죽음을 방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사회복지사들의 자살은 궁극적으로 나 그리고 우리 사회를 깊은 신음과 사망으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복지공무원의 죽음에서 우리의 암울한 자화상과 불길한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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