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컴퓨터 앞에서 학생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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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컴퓨터 앞에서 학생 곁으로
  • 임병구
  • 승인 2013.05.2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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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⑩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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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컴퓨터 앞에서 학생 곁으로
 
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장, 인천해양과학고)
 
교사들 사이에 섬이 있다면
 
교사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런데 그 섬에 가고 싶은 열정도 식었다. 요즘 교사들이 사는 모습이다. 학교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실무적 대화를 제하면 교사들 사이에서 말이 사라졌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각자도생! 학교시스템 자체가 원래 그런 특성이 있는데다 일이 많아졌다. 수업하고 나면 일 처리, 일처리 하다보면 수업종, 옆을 쳐다 볼 여유가 없다. 수업도 단순히 시수만으로 비교하기 어렵게 노동 강도가 세졌다. 한 시간 수업이 과거 두세 시간 수업만큼 힘겹다.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 10분, 의자에 몸을 앉히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 학생들이 찾아와도 건성으로 대답할 지경인데 거기 끼어들어 말을 걸기 어렵다.
 
교무실도 부서별로 나뉘어져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고서는 얼굴을 마주할 수 없다. 짬을 내서 찾아가면 모두들 컴퓨터에 코를 박고 있다. 칸칸이 분리된 책상에 이어폰까지 끼고 앉아 있을 때, 돌려세워 말을 걸려면 심호흡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중요하게 처리할 사무나 문제 학생에 대한 일이 아니면 직접 말을 건넬 수 없는 구조다. 의사소통은 메신저를 통하고 그나마 몇 마디라도 서로 주고받아야 할 대화는 인터폰을 쓰면 된다. 굳이 얼굴을 맞대면서 말을 건네는 일이 불편한 문화가 되었다. 사무적 소통 외에 진득한 대화가 사라지고 있다.
 
상전이 된 컴퓨터 단말기
교무실 책상마다 칸막이를 둘러 친 건 사무자동화로 업무를 경감한다는 명분이었다. 기업들이 노동생산성을 계산하면서 개인별로 사무공간을 구획해주던 때였다. 책상마다 컴퓨터가 놓였고 옆 동료의 간섭을 받지 않을 개인별 공간이 생겼다. 일사분란하게 지휘를 받던 과거 교무실 분위기에 비하면 진화된 구조다. 하지만 컴퓨터는 곧 새로운 상전이 되었다. 자리를 비워도 메신저가 일을 날라다 놓았다. 컴퓨터를 통한 문서 작업이 늘면서 교직의 성격이 사무행정직과 구분이 안 된다 .
 
업무 분장표에 따라 위에서 떨어지는 업무는 온전히 개개 교사의 몫이다. 부서 조직이 있어도 협업은 어렵다. 일을 중심으로 상시적으로 모여 있는 부서 구조가 아닌데다가 부서의 위계도 애매하다. 학교 부서 조직은 형식적으로 수평적이다. 부장교사라는 직책은 단순 보직이라서 부서에 있는 교사를 지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 행정업무는 수직적인 명령과 복종으로 효율을 추구하려는 원리를 따른다. 학교 부서 조직은 모양새만 행정조직이지 내용은 수업과 수업 사이 교사대기실 정도다. 게다가 교사의 사무 처리 역량은 제자리걸음이기 일쑤다. 해마다 업무가 바뀌는데다 적응할 정도가 되면 다른 업무가 주어진다. 이 학교 업무에 익숙하다 싶으면 저 학교로 발령이 난다.
 
교사들의 업무가 줄지 않는 이유
 
교사들의 업무를 경감해 주겠다는 약속은 대통령 공약에까지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교사들은 여전히 ‘잡무’라는 표현에 익숙하다. 교사가 해야 할 본업이 아닌데다가 없어져도 무방한 일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업무경감은 일의 총량을 줄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학교 교육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을 추리고 나머지를 과감하게 버려야 업무 경감에 성공할 수 있다. 그게 전제되지 않으면 업무를 잡무라고 하는 교사들이 일하기 싫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교사들은 잡무라고 하고 교육청은 꼭 필요한 업무라고 하다 보니 업무 경감 사업은 늘 난항을 겪는다.
 
교무행정사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은 절충안이라 할 수 있다. 업무 총량은 줄이지 않고 교사들이 하던 일을 떠맡을 인력을 충원하는 방안이다. 교육청 입장에서 보자면 그동안 해왔던 일을 줄이는 게 쉽지 않다. 일을 줄이려다 보면 그동안 시교육청 행정에 불필요한 요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해야 한다. 행정의 권위에 흠결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행정을 중심에 두고 판단해 오다보니 현장의 고충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진취적인 방안을 마련하려면 업무 경감 정도가 아니라 업무의 구조를 새로 짜야 한다.
 
먼저 교육과 행정을 구분해야
 
학교를 바꾸려면 교육과 행정의 관계부터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서울의 상원초등학교는 교장이 행정 문서를 직접 처리한다.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과 보살피는 일에 전념하라고 한다. 스스로 교장이라는 계급도 버리고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리기를 청한다. 교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을 처리하다 보면 소통구조가 긴밀해지게 마련이다. 교사들이 컴퓨터 앞에서 서류 처리하는 시간을 줄여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기회를 늘렸다. ‘잠시 수업 다녀올게!’라는 교직 사회의 농담을 전복할 수 있는 행정 지원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컴퓨터 단말기가 결재 과정을 단순화한 공로는 있다. 결재판을 들고 교감을 거쳐 교장실을 찾던 수고는 줄었다. 하지만 문서생산량이 늘고 유통량도 대폭 늘었다. 수업을 중심으로 고민해야 할 교사들이 수업 마치면 컴퓨터에 뜬 게시공문부터 탐색한다. 통계를 찾아 엑셀 문서를 만들고, 관련 서류철을 뒤져 보고서를 작성한다. 각종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컴퓨터 망에 올리고 결재 과정을 확인해 문서를 발송한다. 이 모든 과정이 온라인으로 처리된다. 일은 한 자리에 앉아 처리할 수 있지만 잠시도 자리를 뜰 수 없을 만큼 가짓수가 많다. 일은 자동으로 처리되어 편리한 듯 보여도 그 일이 교육적 가치가 있는 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교사들은 컴퓨터단말기 끝에 매달려 있는 수동적 존재다.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조직하는 상급자 입장에서는 전체 맥락이 한 눈에 보이므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게 몇 단계 위계를 거쳐 교사의 책상 위에 떨어지면 교사의 본질적 업무와 상관없는 파편화된 ‘잡무’가 된다. 수시로 현황을 보고해야 하는 단순한 통계 수치는 자동화한 업무관리시스템이 왜 필요한지를 되묻게 한다. 본질적인 교육 활동과 행정지원 업무의 경계가 흐릿할수록 교사들이 노동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깊다. 이 일이 교육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물을 수 없을 때, 컴퓨터단말기 앞에서 교사들은 회의한다. 손가락은 자판 위에서 일하고 있는데 마음이 개운치 않다.
 
교사를 학생 곁에서 춤추게 하자
교사들이 눈을 반짝이는 일이 있다.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수업에서 보람을 맛볼 때다. 그렇지만 수업과 학생 보살피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져 교사 개개인이 역량을 발휘해도 역부족이다. 위기 징후를 타개하기 위해 학교에 여러 위원회가 생겼다. 교과별 협의체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회의록과 협의록으로 남는 형식은 또 다른 잡무거리다. 교육적 협의를 행정업무로 서류화하라는 상부의 눈길을 의식하는 순간 자발성은 휘발된다. 다양한 역동적 상황을 건조한 문서 다발에 다 담기는 불가능하다. 문서로 증거를 남겨야 하는 행정 활동과 즉흥적이기도 하고 산발적일 수도 있는 교육 활동을 다른 맥락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업무처리 하느라 학생들 상담할 짬이 없다’는 말에서 교육 위기의 핵심 요소를 추출해 내야 한다. 본말 전도는 요사이 인천의 학교 상황을 드러내는 데 딱 맞는 표현이다. 선후가 뒤바뀌었는데 개선이 요원하면 구성원들은 방관자로 남는다. OECD에서도 권고한 바가 있다. ‘교원의 직무가 법령상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아 문제이므로 교사를 위한 직무 수행 범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 10여 년 된 지적인데 여전히 교사의 업무는 교육 활동이 중심이 아니고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교사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 학교가 한 학생을 위해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체계를 갖춰야 교사가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교사를 컴퓨터단말기에 묶어 두고 서버의 지시에 따라 일하게 만들면 학교유기체는 생명력을 잃는다. 오히려 한 학생이 서버가 되고 그를 중심으로 여러 교사가 재배치 될 때라야 학교의 존재 의미가 되살아난다. 담임교사와 교과 담당교사, 상담교사와 보건교사가 서로 보완적으로 기능할 때, 학교는 유기체로서 학생을 ‘위해’ 존재할 수 있다. 컴퓨터 업무망을 보조축으로 돌려놔야 한다. 교육행정이 지원하고 복원해야 할 학교의 중심축은 교사간대화망이다. 교사들끼리 나누는 말이 살아나야 교사가 ‘인간의 얼굴’을 회복할 수 있다. 교사는 학생 곁에 있을 때 춤을 추는 존재다. 교사를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학생 곁으로 가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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