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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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문화
  • 도지성
  • 승인 2013.05.3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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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도지성 /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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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예술인마을 한갤러리
 
최근에 가고 싶은 여행지의 하나로 태국의 빠이를 추가했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된 곳인데, 아직까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때 묻지 않은 곳이다.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에서 버스를 타고 792고개를 넘어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인데, 그저 한가롭고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다. 도시 생활에 한계를 느낀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들어와서 소박하게 집을 짓고, 직접 만든 예술작품이나 물건 등을 파는 곳이라고 한다. 배낭여행자들에겐 ‘영혼의 쉼터’로 알려져 있다.
빠이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곳이 알려지면서 여행자들이 몰려오고 조용한 마을에 개발의 소음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고속도로가 뚫릴 위기에서 주민들이 일어났다. 도시개발 입법을 건의 했고, 국왕의 동의도 이끌어내서 결국 조용히 지켜낼 수 있었다.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이다.
 
인천서 미술교사를 하던 대학 동기 S씨가 몇 년 전, 훌쩍 전남 구례 지리산 밑으로 이사를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S씨는 학교를 그만두고 구례 예술인마을에 아름다운 갤러리 카페를 열었다. 마침 전시 요청이 있어, 올 봄에 그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하여 전시 개막 때와 작품 철수를 위해서 그 카페에 두 번 방문했다. 깨끗한 공기와 향기로운 풀냄새, 그리고 조용한 공간에 맑게 울리는 새소리가 마음에 평안을 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밭이랑을 다듬고 고구마 심는 것을 거들었다. 일하고 나서 갓 따온 상추에 싸서 먹는 아침은 꿀맛이다. 야외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이 상념에 젖는다. 도시의 번잡함과 속도감 속에서는 이러한 평화를 얻을 수 없으리라. 마침 그곳은 지리산 둘레길이 통과하는 곳이어서 간혹 걸어가는 여행자들이 눈에 띄었다. 여행자들을 따라서 걸어가 본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에 찔레꽃이 한창이고 과수원 나무 밑에 이름 모를 보랏빛 꽃이 가득하다. 긴장이 풀어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그동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는 ‘빨리 빨리’였다. 고속철, 인터넷, 스마트폰 등 빠름이라는 과제가 성능의 표준이 되었다. 이만한 경제적 부를 이루게 된 것도 고속 성장 덕이었다. 이런 문화 속에서는 속도에 뒤처지면 낙오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우리를 스스로 피곤한 삶으로 몰아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도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것도 있다. 벼가 익으려면 충분한 일조량의 시간을 확보해야 되고, 된장 고추장도 발효의 시간이 필요하다. 문화도 그럴 것이다. 수백 년 ?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전통, 장인에서 장인으로 이어지며 전수된 명품들, 낡은 건물이지만 역사의 기억과 추억이 있는 것, 오래된 사진처럼 과거의 시간이 담겨 있는 것 등 소중한 가치는 느림 속에도 있다. 최근에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도시를 벗어나는 것도 필요하지만 메타인지적인 마음의 전환도 필요하지 않을까?
 
* 메타인지란?
‘mata'는 한글로 풀이해서 ‘초’, ‘…넘어’ 라는 의미. 메타인지는 인지를 뛰어넘는다는 뜻. 즉 자신의 사고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 예를 들면 오늘 우리가 하는 것들이 정말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에 생각을 해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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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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