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공부하는 선생님, 배움이 기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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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공부하는 선생님, 배움이 기쁘지 않다
  • 임병구
  • 승인 2013.07.1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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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인천교육 미래찾기(18)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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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공부하는 선생님, 배움이 기쁘지 않다
 
 
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장, 인천해양과학고)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
 
 
지난 가을 부산비엔날레 주제가 ‘배움의 정원(Garden of Learning)’이었다. 이 독특한 전시회를 기획한 총감독 로저 뷔르겔은 미술은 물론, 미학, 철학, 경제학 등을 두루 공부했다고 한다. 요새 유행어로 하면 통섭과 융합이 가능한 인물인데 그런 어려운 개념보다 공부를 즐긴 인물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우리의 ‘마당’을 보고 배움의 정원을 떠올렸다는 말에서 전공을 넘나드는 공부의 깊이가 짚인다. 툭 트인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살림이 일어나는 게 마당이다. 놀이도 할 수 있고 휴식도, 잔치도, 문화행사도 마당은 끌어안는다. 막히지 않고, 비어 있는 그 곳에서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배움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전시기획의 요체다. 그가 생각하는 배움은 사람의 빈 곳을 채워주는 것이면서 ‘우발적으로 생성되는 어떤 것’이다.
 
 
인천에도 사또 마나부 교수가 주창한 ‘배움의 공동체’ 연구모임이 있다. 거기서 교사들은 가르쳐서 배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동하면서 배움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과정에 주목한다. 많이 배운 교사가 꼭 잘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시공간적 여유를 만들어 줘야 배움이 일어난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밀어내고 학생들이 서로 질문하고 답하면서 배움이 생기도록 하는 게 교사의 역할이다. 교사도 학생들이 배움에 도달하도록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해결에 이르도록 돕는다. 지식을 쏟아 붓는 가르침은 교사들에게 자족감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학생들에게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다. 배움의 공동체는 배움의 주체가 학생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한다. 배우는 이가 배우려들지 않을 때 가르침은 의미가 없다.
 
 
교사의 배움은 어떠한가
 
교사는 가르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배운다. 배우지 않고서는 가르칠 수 없다. 자격증은 배움의 과정을 입증해 주기에 가르치는 면허가 된다. 과거에는 면허만으로 가르침의 질을 보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르침의 내용과 방식이 급변하면서 교사들도 끊임없이 배워야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배우는 이가 교사라면 그가 어떻게 배우는가가 학생들의 배움을 규정할 것이다. 정부가 교사들에게 연수를 받도록 강제하는 건 그런 효과를 기대해서다. 교사는 임용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자격 연수를 받는다. 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직무연수를 받는다. 2008년부터는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받은 연수를 기록하는 ‘연수이수학점제’가 생겼다.
연수이수학점제는 교사들이 배운 각종 연수를 시수 단위로 기록한다. 15시간을 공부하면 1학점을 받는다. 초기에는 1년에 30시간(2학점)을 받도록 권장했다. 그게 해마다 시수가 늘더니 한 해에 150시간(10학점)을 받도록 강제하는 풍토가 생겼다. 자율적으로 하던 공부가 의무가 되면서 역으로 배움의 가치는 줄어들고 있다. 공부의 가치를 양으로 환산하려다 보니 질적 측면에 대한 고려는 약화되었다. 시수를 채우는데 급급한 교사들은 온라인 원격연수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두뇌와 가슴이 움직이는 공부는 줄고 손가락만 고달픈 잡무가 되어버린 연수가 교사들에겐 불만거리다.
 
 
연수학점 목표 시수가 늘면서 교사들은 ‘클릭질’로 배움을 대체한다. 원격연수의 품질이 아무리 좋다 해도 혼자 컴퓨터와 만나는 공부는 배움 자체를 시들하게 만든다. 배움의 기쁨은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인터넷강의는 학생들의 시험 점수를 높이는데도 취약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거기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 삶을 움직일 때 배움은 깊어진다. 교사들에게는 배움이 일어나는 연수가 필요하다. 연수시수를 정해놓고 목표 달성을 채근하는 방식은 교사들의 욕구를 자극하지 못한다.
 
 
자율이 빠진 교사 연수
  
 
어떤 교사는 혼자서 책을 읽을 때 전율하면서 배움이 깊어진다. 읽기는 어떤 생각과 생각이 충돌하면서 소통하는 과정이다. 영화 한 편을 감상하면서 타인의 삶과 만날 수 있다. 예술은 경험할 수 없는 타인의 삶 속으로 개입해 들어가게 이끈다. 눈물콧물 쏟고 어두운 극장에서 환한 실공간으로 발을 옮길 때 기우뚱 삶이 흔들리는 경험이 교사를 성숙하게 한다. 먼 여행길이 교사를 들어올리기도 한다. 낯선 풍경 하나가 거울처럼 자신의 삶을 비춰 줄 때, 교사는 방금 전 시간과 다른 차원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한다.
 
 
자율연수는 말 그대로 교사가 자신의 삶을 고양시킬 수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한다. 교과 관련 전문성은 그런 동기가 튼튼하게 바닥을 구성한 위에 쌓아 올릴 수 있다. 보통교육 단계에서 전공지식의 깊이는 학생과 소통이 전제되어야 힘이 된다. 학생은 교사의 삶에서 먼저 배우고 그 배움이 채워져야 지식을 흡수하려 든다. 교과 교육이 점수로 환산되면서 배움이 무엇인지 헷갈리고 있지만 학생도 알고 교사도 안다. 학교가 학생들이 배움을 일으키도록 돕지 않는 한 배움과 가르침은 겉돌 뿐이다.
 
 
교사에게는 늘 배움을 촉진하려는 자극이 필요하다. 그건 교사가 배움에서 기쁨을 찾는 경험을 회복해야 가능하다. 우리의 교육 제도는 교사연수를 승진과 연계해 그 길을 만들어 내려 했다. 의도한 대로 정방향으로 가기는커녕 부작용만 심화되었다. 연수를 평가와 연계하기도 하고 성과금 등급 기준으로 맞춰 놓기도 했다. 연수시간으로만 따지면 교사들은 엄청나게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학교가 달라져서 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있는 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제도가 강제하니 따라 할 뿐, 자발성은 약화되고 바깥에서 주어진 동기는 안에서 기쁨으로 발화되지 않는다.
 
 
시수 강제 연수 의미 없다
 
 
과거 조직 가동 시스템은 통제원리 중심이었다. 교직 사회를 움직이는 주동력은 과거로부터 내려온 상부의 지시와 감독에 의존하고 있다. 평가와 감사, 주기적인 지도로 정교하게 엮인 시스템은 공장형 교육에 효율적이었다. 새로운 교육 원리와 철학은 교사의 자발성을 촉발하는데 주목한다. 일률적 기준에 조직원 모두를 매달리게 하지 않고 개개인에게 맞춰 능력을 끌어낸다. 프랑스나 독일 교육이 교사 연수를 보수나 승진과 연계하지 않는 이유다.
 
 
우리는 여전히 단기간에 집단적으로 효과를 거두겠다는 강박이 지배하는 사회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교사 교육도 강제 할당 방식만한 게 없다. 하지만 그 원리는 사회적으로 폐기단계에 들어섰다. 배움을 논하는데, 교사연수 시수를 무한정 늘린다고 될까? 평가기준에 맞춰 학교 성과 실적은 올릴 수 있겠다. 그런데 정작 교사들은 150시간 클릭질에 지쳐 배움을 잊고 있다. 연수시수를 평가와 연계하는 채근 방식 말고 교사들에게 배움의 맛을 돌려주는 기획이 필요하다. ‘배움의 정원’이 남긴 접근 방식과 ‘배움의 공동체’가 가고 있는 진지한 노력들에서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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