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가 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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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가 시켰어요!
  • 이정숙
  • 승인 2013.07.2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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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 - 인천교육 미래찾기(19)
인천시민들은 인천교육의 변화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변화로 가는 길을 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변화의 지향성에 대한 공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변화하려면 공유할만한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미래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인천in’은 교육을 화두로 끌어안고 변화의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그 시작으로「인천교육연구소」와 함께 인천교육에 대한 고민이 담긴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수요일에 교육현장에 발 딛고 선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더욱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가감 없이 시민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천교육의 공론장이 생긴다면 미래의 인천교육은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in’과 「인천교육연구소」가 함께하는 '인천교육의 미래찾기'에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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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가 시켰어요!
 
이정숙(하정초. 인천교육연구소)
김샘 반에 한 아이가 울고 있다.
“왜 울어?”
“쟤가 때렸어요”
“저런! 상근이 이리와!”
“제가 안 때렸어요.”
“그래? 성윤이가 울고 있는데? 네가 때려서?”
“진민이가 시켰어요. ”
 
김샘 수업시간에 늘 책을 안 가져오는 아이가 있다. 책을 가끔 안 가져 올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끔 가져오곤 하는 이 아이는 좀 심했다. 김샘은 기본 학습습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규원아, 선생님이 오늘은 꼭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실험관찰 책에 쓸 내용이 많다고. 너 지난 시간에도 안 가져 왔었지?”
“엄마가 안 챙겨 줬어요.”
(수업시간 끝 무렵)
“ 왜 안 쓰고 있어?”
“ 얘가 안 보여줘요.”
“ 내가 언제? 보여줬어요. 규원이가 보여줘도 안 쓰고 놀았어요”
“ 수빈이가 말시켜서 그랬어요”
아이들은 잘못하면 “~가 시켰어요” “00가 하지 말래요.”하고 자신의 잘못보다는 슬쩍 다른 사람의 핑계를 댄다. 그런 말이 아예 습관이 되어버린 아이도 있다.
김샘은 아이들이 자신이 책임질 일들을 회피하는 버릇을 고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반칙들이 공식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는 김샘의 생각을 무기력하게 만들곤 했다. 김샘은 학교에서 치러지는 각 종 행사 때문에 수업을 빠지고는 과제나 학습수행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당당한 자세로 일관하는 아이들에게 늘 할 말이 없었다. “ 현이야, 너 이거 왜 수업시간에 안 썼니?”하고 묻는 김샘에게 “저 그 때 영어마을 갔었어요”. 라고 말하며 일주일이나 학교 수업을 빠진 자신들의 특권임을 자랑스럽게 말하며 자신의 하얀 공책을 당당히 내민다. 줄넘기 대회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이십분이 지나서야 수업에 들어오며 당당하다. 시합 날은 당연히 빠지고 시합 다음날도 지난 시간의 못한 과제에 대하여 당당하다. “저 줄넘기 시합 갔었어요”. 각종 과학대회, 글짓기 대회, 그림 그리기 대회, 창의성 대회, 영재 교육반 참여 등등의 각종 행사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학교생활에서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부여된다. “ 너 이것 왜 못했지?” “저 그때 00가서 우리 엄마가 안 해도 된대요.”, “저는 그때 00갔었어요.” 각 종 행사들은 아이들에게 책임을 회피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김샘은 요사이 아이들을 쳐다 볼 시간이 없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을 구상할 정신적 여유도 없어졌다. 이상하다! 교사가 가르치는데 할애하는 시간보다 아이들과 상관도 없는 업무나 형식적인 연수에 할애되는 시간이 학교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에게 직무연수 150시간을 받으라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연구학교라고 매주 3시간 연구학교 관련 연수에, 또 자체적인 교과자율연수를 해서 발표하느라 틈틈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상황에 이른다. 그밖에 각 계에서 하라는 필수 연수로 ‘감염으로 인한 등교 중지연수, 성폭력, 성매매 및 금연 교직원연수, 교내 응급상황 대처 및 심폐소생술 교직원연수, 학교생활기록부 길라잡이 연수, 재난대비 안전한국훈련 실시 연수,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교직원 연수, 교육복지 지원사업 연수, 찾아가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연수, 아동권리교육 아동학대 및 신고의무자교육 교직원 연수, 녹색성장 교사연수, 저작권교육,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 등등과 교사 개발을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교장샘이나 교감샘 지인에 의한 정체 모를 연수까지 끊임없는 연수에 동원되었다. 연수에 지쳐가다보니 연수라는 것이 무의미해지기만 하고 점차 형식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많은 연수 때문에 업무는 둘째 치고 아이들 가르칠 시간도 없고 교재 연구할 시간도 없다고 호소하며 이 연수들을 꼭 해야 하는 것인지를 묻는 김샘에게 업무부장샘이 답한다. “저는 몰라요. 교장샘이 하래요.”
며칠 후 연수시간도 없는데 또 회의라고 모인다. 교장샘이 일장 훈화를 하신다. “우리는 국가 공무원이다. 국가에서 해야 하는 일을 따라야 하고 교육청 지시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나도 선생님들을 도와드리고 싶다. 얼마나 바쁜지 안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 공무원이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교육청에서 시달되는 내용을 빠짐없이 해야 하며 연수 또한 교사이기 때문에 자기 개발을 위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 부장샘은 잘못이 없다. 교장샘도 잘못이 없다. 김샘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교육청이 잘못이구나. 교육청의 문제를 없애면 선생님들이 업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며칠 후 김샘은 교육청에서 오신 장학사와 만났다. ‘교육청에서 추진하는 일을 다 해내느라 아이들을 가르칠 시간도 없다. 뭔 공문을 그렇게 수시로 보내느냐. 어떤 때는 오전 수업중인데 빨리 보고하라고 한다. 각 계마다 필히 받아야 되는 연수는 무어 그리 많고, 무슨 행사가 그리 많은가. 이 작은 학교에 연구학교, 중심학교라고 일을 주고는 매일 컨설팅이다 업무보고다 하느라 교사들이 아이들과 수업을 못하고 있다’ 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교육청에서 오신 장학사가 대답한다. “말도 마라. 우린 날마다 열시 넘어 퇴근이고 방학도 없고 휴일도 없다. 뭐 위에서 보고하라는 게 이렇게 많은지....”
 
김샘은 또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다들 바쁘구나. 문제는 문제점을 생각할 시간도 없다는 거구나. 그래서 우리 반 성근이나 규원이 처럼 다 누가 시켜서 하느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구나.’ 문득 십 여 년 전 본 영화 대사가 생각났다. 주인공이 자신을 이렇게 망가뜨린 인간을 죽이려고 총을 구입해서는 친구를 찾아가 하소연했다. “딱 한 놈만 죽이고 나도 죽으려고 했어, 그런데 어떤 놈을 죽여야 할지 모르겠단 말야.”
4대강이 황폐화되고 세금이 이렇게 어이없이 내동댕이쳐지는 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학교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다. 그 위화감 생기게 하는 교직사회의 모순 역시 또 아이들의 모순으로까지 투영되어있다. 우리네 역사도 그랬던 것 같다. 늘 권력자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그 뒷 수습은 민초들이 목숨과 피를 흘려 감당해냈었다. 임진왜란이 그랬고 일제 강점기 때가 그랬고, 6,25가 그랬다. 최소한 김샘이 아는 한 그랬다. 그런 점을 아는 권력자들은 그 점을 교묘히 이용해 여론을 부추긴다. 한반도 상황을 이성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이데올로기로 가져가고, 지방 간에 분열을 조장한다. 거대한 빅부라더의 힘에 백성들은 이러저리 휘둘린다. 누구를 없앨 수도 없게 거대하다. 그래서 아무도 책임질 수 없게 만든다.
 
김샘은 도덕시간을 맞이한다. ‘우리의 책임입니다’라는 단원을 배운다. ‘책임의 종류에는 크게 한 행동에 대한 책임, 할 행동에 대한 책임,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왔다. 김샘은 가장 나중 부분을 힘주어 이야기 한다. “우리에게는 내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누가 시켜서 한다고 말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지요. 그리고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 이 이야기에 나오는 라과디아 판사는 빵을 훔친 할아버지에 대하여 자신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내용인지 읽어봅시다.”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아이들은 김샘의 말을 알아들을까? 모두들 “쟤가 시켰어요.” 하는 사회에서 책임을 지려고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부터 이 부조리함을 이길 힘이 생길 수 있다고 김샘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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