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탄을 나르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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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탄을 나르는 할아버지
  • 이혜정
  • 승인 2010.01.05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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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오후 시간에 가게 내부를 수리하고 있는 이산진 할아버지. 주문을 받은 연탄을 작은 수레에 담고 있다.인천시 부평구 산곡1동에서 연탄을 파는 '서울연탄'.

 산곡동 연탄 할아버지


 연일 강추위가 이어지다가 좀 따뜻해진 날, 부평구 산곡동에 사는 '서울연탄'의 이산진(78)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가 쓴 모자 사이에 삐져나온 허연 머리는 연탄이 타 들어간 듯, 50여 년 동안 연탄수레를 끌어온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할아버지 날씨도 추운데 연탄 나르기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연탄가게를 수리하다 말고 "누구여? 혹시 기자여? 나 귀찮으니까 그냥 가!"라며 말을 차갑게 자른다.
 
 이어지는 질문세례에 할아버지는 마지못해 "일도 별로 없어서 시간 날 때마다 가게수리하고 있는데 할 말이 뭐 있겠어. 날도 추운데 귀찮게 하지 말고 어여 가."라고 말한다. "신문기자들이며 KBS의 인간극장 만드는 사람 등이 자꾸 찾아와서 귀찮게 하네"라고 혼잣말을 하며 못다한 수리를 다시 시작하는 할아버지.
 
 그는 추운 날씨에 한참 동안 가게 앞을 서성이는 기자를 안타깝게 보더니 "거참! 귀찮다니까!"하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꺼냈다.

 "점점 연탄보일러 때는 사람이 없어지니까 자식들은 고생하지 말고 그만두라고 하지. 나도 나이가 많아서 힘들지만 그래도 어째! 나 아니면 이 동네 연탄 나르는 사람이 없어.몇 군데 안 되지만 기름 값이 없어서 연탄 때고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으니까. 계속 날라야지."
 
 할아버지는 이어 "요즘은 골목길에 주차된 자동차들 때문에 길이 너무 좁아 작은 수레가 아니면 배달을 할 수가 없어. 그래서 저 작은 수레(100장용 수레)에 싣고 배달하고 있어. 그래도 작년에는 하루에 200~300장은 나갔는데 올해는 하루에 200장 나가기도 힘드네."라며 한숨을 쉰다.
 

 연탄 때는 사람이 있는 한 수레는 계속 끌 것


 이산진 할아버지는 군대를 마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50여 년 전부터 연탄과 함께 했다. 30년 전만 해도 인천 일대 곳곳에 연탄가게가 많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부평역에 강원연탄공장, 주안역에 제일연탄공장, 연안부두 인근 연탄공장 등 그 당시 인천에는 10여 개의 공장이 있어서 연탄을 가져오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제일연탄공장에서 연탄을 가져와 '제일연탄'이라고 간판을 올렸다. 지금은 서울 이문동에서 연탄을 가져오고 있어 ‘서울연탄’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꿨다. 얼핏 보니 페인트 칠 간판에서 세월의 흔적이 눈에 띤다.

  그런데 30여년 전 주로 사용된 연탄보일러가 기름보일러로 바뀌면서 연탄공장도 사라져 갔다. 

  할아버지는 "이문동에서 연탄 배달을 시킬 때마다 2000~3000장은 돼야 한다"며 "한 1000장 정도면 되는데 그렇게 배달은 안 해줘서 어쩔 수 없이 2000장씩 받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갑자기 할아버지는 대화를 나누다 말고 작은 수레(100장)에 연탄을 실었다. "오늘은 이게 마지막 배달이 될 거 같네. 작년 보다 연탄 값이 조금 올라서 한 장에 500원씩 팔지만 하루에 200장 남짓 팔아서 먹고살기 힘들지. 그래도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사람들 위해서 내가 좀 힘들고 말지."
 
 매년 '서울연탄'이 자리하고 있는 산곡동 일대에는 연탄보일러를 때는 가구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산곡동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돼 언젠가는 ‘서울연탄’의 역사도 사라질 터이다. 하지만 이산진 할아버지는 그 때까지는 산곡동 일대를 찾아오는 차가운 겨울을 어김없이 따뜻하게 달궈주는 훈훈한 '연탄 할아버지'로 남아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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