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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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인
  • 양진채
  • 승인 2013.09.1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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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양진채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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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을 안다.
시창작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자식뻘 되는 시인의 강의를 듣고, 수줍게 시를 내놓던 수강생. 혹시나 젊은 수강생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본인의 시가 너무 구태의연한 옛날 얘기나 하고 있지 않나 경계하며 문학을 꿈꾸던 언제까지고 문학청년인 분. 그 분이 칠순 넘어 등단을 했고 팔순에 맞춰 시집을 펴내셨다. 보통 시집의 두세 배 두께가 되는 200편 가까운 시편들이 실린 시집 『노을, 그리고 황해』가 그것이었다. 창작교실에서 함께 시 공부를 하며, 그 세월을 겪어야만 알 수 있는, 젊고 재기 넘치는 젊은이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웅숭한 깊이가 담긴 시편들을 감탄하며 음미하던 기억들이 새로웠다.
몇 년 전부터 청각에 문제가 있던 시인은 점점 듣는 것이 어려워졌다. 보청기를 착용하시는 것 같았지만 대화가 편안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남에게 폐가 될까 먼저 저어했다. 어느 해인가 그 분에게서 ‘천사의 나팔’로 불리는 꽃나무를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문학회 일을 맡아보느라 애쓴다며 준 꽃나무였다. 정말 천사의 나팔처럼 보이는 큰 꽃이 피었다. 관리를 잘 못해 몇 해만에 죽이고 말았지만 꽃이 필 때마다 꽃나팔에 대고 시를 낭송하는 그 분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 분의 시를 통해서 ‘기직’ ‘어울이소’ ‘옹두라지’ ‘지게 알구지’ ‘치마부대’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인천의 섬들을 알았고, 한 세대 이전의 뼈아픈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시대를 살아온, 그 누구도 아닌 그 분만이 쓸 수 있는 시편들이었다, 삶의 질곡이, 쓰라림이, 정情이 그분만의 시어들로 빛을 발할 때, 저절로 옷깃이 여며졌다. 그래서 그 어떤 시보다 고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사회교육원이나 평생교육원 등에서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는 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꿈이나 열망은 포기하고 이 사회를 일으켜 세운 주역들이다. 이 분들의 삶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삶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자신의 꿈을 찾는 분들께 죄스러운 존경을 보낸다. 사회복지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더 많은 노인들이 아직도 삶의 밑바닥에서 고통스런 삶을 연명하고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자리에서만은 그런 무거운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정년퇴임하고 오랫동안 어떤 장식으로써가 아니라 순결한 마음으로 문학을 대해왔던, 지금은 시인이 되었지만 시를 대하는 그 마음은 한결같은 한 아름다운 시인의 시집을 앞에 놓고 시를 음미하며 뒤늦은 헌사를 드리고 싶을 뿐이다. 그 시인의 이름은 성낙두成樂斗이다.

어머니
-3. 누깔사탕
성낙두
봉두야! 공부만 잘해다오
쌀 서말 이고 삼십 리 길
열 번인들 못 가겠니?
오후 3시 반 상행선
강길 따라 내려가서
고개 넘고 내 건너면,
밟히던 그림자 비껴가더니
칠읍산七邑山에 걸린 기적소리 설렌다
온다는 소린지?
갔다는 소린지?
땀으로 헤엄쳐 간 원덕역,
청량리가 보인다
숭인동 산마루 판자촌 언덕길
이고 들고 숨차 땀에 젖은 쉰내,
하교 길 구멍가게서
사탕 하나 사 물은 길목
어머닐 만났다
교복에 가방 든 중학교 2학년,
얼결에 뱉어버린 입에 문 사탕
6.25 포화에 묻혀버린 길목에서
나는 지금도 어머닐 마주보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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