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빛깔> 시집 펴낸 최일화 시인
정년퇴임을 한 다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모든 사람은 인생의 후반을 ‘잘’ 지내고 싶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하기만 하다. 하지만 여기 ‘바쁘고 행복한’ 시인이 있다. 1985년 첫 시집을 낸 이후, 이번에 <시간의 빛깔>(문학의 전당)이라는 제목으로 아홉 번째 시집을 낸 최일화 시인(65). 그는 2년 전 인천남동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정년퇴임하고 시와 산문을 쓰면서, 본지 시민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 러시아를 다녀온 이야기를 비롯해, 연희창작촌과 ‘글을 낳는 집’에서 집필한 이야기도 글로 올렸다.
“이번 시집은 아홉 번째다. 2011년 정년퇴임할 때 그동안 낸 시집에서 발췌해 기념시집을 냈다. 이번에 낸 <시간의 빛깔>에는 일상 이야기를 많이 넣었다. 내 시는 대체로 쉽다. 그게 문학성을 떨어뜨린다는 말도 있지만, 너무 어려운 곳이 있으면 고치는 편이다. ‘글을 낳는 집’에서 한 달, ‘연희창작촌’에서 석 달을 지내면서 열심히 쓰고 고쳤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아 시집을 냈다.”
시간의 빛깔
나무마다 제 빛깔로 물들고 있다
밤나무는 밤나무의 빛깔로
떡갈나무는 떡갈나무의 빛깔로
젊어선 나의 빛깔도 온통 푸른빛이었을까
목련꽃 같던 첫사랑도
삼십여 년 동안 몸 담아온 일터도
온통 꽃과 매미와 누룽지만 같던 고향 마을도
모두 제 빛깔로 물들고 있다
늙는다는 건 제 빛깔로 익어가는 것
장미꽃 같던 정열도 갈 빛으로 물들고
농부는 흙의 빛깔로
시인은 시인의 빛깔로 익어가는 아침
사랑과 미움, 만남과 헤어짐
달콤한 유혹과 쓰디쓴 배반까지도
초등학교 친구들의 보리 싹 같던 사투리도
입동 무렵의 빛깔로 물들어가고 있다
인천대공원이나 소래갯벌을 산책하고
미추홀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시낭송회도 가고
“‘연희창작촌’에서 석 달을 지내면서 밤낮이 바뀌었다. 집에 와서도 아직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규칙적인 생활을 못하는 편이다. 산책하고 도서관에 가려고 하지만 예전 생활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그저 자유롭게 다닌다고나 할까. 도서관에 갈 때는 사놓고 안 읽은 책을 가져간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이 책 저 책을 사놓았는데, 읽지 않으니까 숙제가 쌓여있는 느낌이다.”
“내 시 중에 ‘은퇴하면 시인으로 살 것이다’가 있다. 퇴임하면서 먹은 마음이었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시는 ‘해방구’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요즘은 자유스럽게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인천대공원이나 소래갯벌을 산책하기도 하고 미추홀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다. 아무래도 시간이 있으니까 직장 다닐 때보다는 문학행사를 다니게 된다. 구월동에 있는 ‘리스팝 포엠’이나 배다리 헌책방 시낭송회도 가려고 한다.”
“<인천in> 시민기자를 한 지는 2년쯤 됐다. 2004년부터 오마이뉴스 기자로 지내면서 400꼭지가량을 썼다. 내가 쓴 시와 산문을 곁들여 썼는데 다 올려주더라. 그러다 <인천in>이 있는 걸 알게 됐고 무조건 올렸다. 많이 올리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이제는 아주 잘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지금보다는 자주 올릴 생각이다.”
시는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쉽다고 하면 즐거워
앞으로도 누구나 쉽게 읽는 시 쓰고 싶어
“내 고향은 경기도 안성이다. 안성은 시인이 많이 난 곳이다. 조병화 박두진 정진규 같은 시인이 나왔고, 허영자 장석주 고은 시인은 거기에 산다. 집은 안성과 평택 중간이었는데 평택이 더 가까웠다. 그러다보니 중고등학교를 평택에서 다녔다. 지금 고향에는 산소만 있다. 인천에 산 지는 34년 정도 됐다.”
“1979년부터 인천에 살기 시작했다. 선인학원이 있던 시절 선인고등학교로 발령을 받고 오게 됐다. 1994년에 인천대학교는 시립대학교가 됐고, 모든 중고등학교는 공립이 됐다. 몇 학교를 거쳐 남동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정년퇴임했다. 지금도 고등학생을 보면 다 제자 같은 생각이 든다. 요즘 학생들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사실 애들이 나쁜 게 아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겠나. 애들은 조금만 마음 써서 맘만 맞춰주면 아주 싹싹하다. 어른들이 할 일은 학생들을 배려하고, 학생들이 마음놓고 갈 수 있는 놀이공간을 만들어주면 된다.”
“이번에 <인천in>에 올린 러시아 다녀온 이야기는 보고 형식으로 쓴 글이다. 내 시는 너무 쉬워서 문외한도 읽을 수 있다. 사실 너무 쉬워서 시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연희창작촌’에 있으면서 시집을 200권가량 읽었다. 아무리 상을 타고 평론가들이 좋게 평해도 재미없는 것도 많았다. 김기택 시인 말대로 ‘시는 재미있어야 한다. 시를 쓰는 일이 고달프고 괴로우면 왜 쓰냐?’는 말에 공감한다. 시집을 내면 고향에 있는 초등학교 동창들한테도 보내준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친구들이 많은데, 그 친구들이 쉽다고 좋아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기쁘다. 앞으로도 쉽고 재미있는 시를 쓰고 싶다.”
그런가, 정말 그런가
정말 그런가, 열매 하나로 영글게 하기 위해
개나리꽃을 피워 울타리 환히 밝히고
거머리 떼에 종아리 온통 물리며
장대 같은 빗속에서 수렁배미 모내기 마치게 하고
아버지를 객지에 던져놓고 후레자식의 수모를 견디게 한 건가
밤을 지새운 붉은 연애편지에
단 한 번의 답장 걸려들지 않은 것도 그래 그런가
그때 놓친 새 새끼들은 아직도 기별이 없고
사립문 옆 꽃밭에 피던 꽃들은 지금도 환히 대낮처럼 피어 있는데
옛일들 생각하며 눈시울 붉어져 이 가을도 우두커니 들녘 바라보는데
정말 그런가, 평생 시를 놓지 못하게 하려고
호루라기를 휙 불어 내게 옐로카드를 내보인 건가
나를 위해 백방으로 궁리하는 당신이
시궁창에 빠트려도 보고 병실에서 생사를 오가게도 하고
상심의 바다에 허우적거리게도 한 건가
잎사귀란 잎사귀 풀잎이란 풀잎 모두 떨어지고
살을 에는 혹한의 계절이 지난 후
가장 선명한 새싹 하나로 움틔우기 위해
그믐달 빛 희미하게 창문에 걸리게 한 건가
밀려드는 밀물에 황급해진 오리 떼 바라보며
갯고랑 옆 텅 빈 들판에 바람을 깔고 앉아 마른 풀잎에 시를 쓰면서
그래 정말, 당신은 포도나무 나는 가지인가
그 나무에 내가 붙어 있게 하려고 서둘러 작은형을 데려간 건가
갈바람 부는 갯고랑 둑 거닐며
당신의 선혈 같은 저녁놀 한참 동안 바라보게 한 건가
그런가, 정말 그런가
“집사람을 포함해 딸들은 문학에 그리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다. 처음에 시집을 냈을 때는 집사람이 뭐라고 비판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저 여러 권 내니까 시큰둥한 편이다. 딸들도 그런 편이다. 사위가 둘이 있는데 모두 공학도 출신이다. 사위 하나가 ‘금방 다 읽어봤다’고 해서 반갑기도 하지만 조심스러운 데도 있다. 사위가 봐도 좋다고 할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글을 누구 눈치 보고 쓰는 건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 모임이나 동창회에서 등산만 간다면
뭔가에 ‘갈증’이 풀리지 않았을 것
나이에 걸맞는 시를 써볼 생각
“정년퇴임하고 시를 계속 쓸 수 있어서 좋다. 교사로 퇴직한 시인들이 몇 분 있다. 장종권, 김기영, 정승열 시인들이 그렇다. 어떤 분은 부동산을 하기도 하고, 철학관을 낸 분도 있다. 각자 열심히 사는 편이다. 나는 1985년 첫 시집을 낸 이후 문인협회 활동을 하고 있다. 사무국장을 잠깐하기도 했고, 지금은 감사를 하고 있다. 나이 드신 분들 시를 보면 독자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삶의 사표(師表)’가 될 만한 분이 많다. 시가 있어서 좋다. 만약 친구들 모임이나 동창회에서 등산만 간다면 뭔가에 ‘갈증’이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시를 써야 하는데 어떤 시를 쓸까 고민을 많이 한다. 내가 노년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젊은 시절처럼 쓴다. 앞으로 쓰는 시는 여생도 생각하고, 나이에 걸맞는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다. 사물을 봐도 인생을 관조하는 태도로 보고, 삶의 깊이를 탐색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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