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를 사랑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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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를 사랑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12.11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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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화유산상' 대상 받은 (사)해반문화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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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반문화사랑회가 문화재청으로부터 ‘대한민국 문화유산상’ 대상을 받았다. 1994년 2월 창립된 (사)해반문화사랑회는 인천 근대문화유산의 재발견에 주목하여 인천 개화기 문화에 연구와 탐색을 해왔으며, 지역문화를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활동을 벌여왔다. 인천의 정체성 연구, 해반문화포럼, 우리지역 바로알기 답사, 근대문화 유산 보존 등에 힘써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9일 오후, 최정숙 이사장을 만나 해반사랑회가 걸어온 길과 수상 소감을 들어봤다. 시상식은 10일 오후 3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거행됐다.


지역문화를 사랑하자는 순수한 의미로 시작했다
“제 남편이면서 (사)해반사랑회 명예이사장인 이흥우 치과원장이 문화운동을 처음 시작했어요. 연혁을 보면 1991년부터 시작한 셈입니다. 오래 전에 문화재청에서 기금을 받아 문화유산 교육을 했습니다. 저희가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20여년이 됐고, 지역문화에 관심을 두고 문화를 사랑하자는 순수한 의미에서 시작했다. 결국은 그러한 애정이 지역을 답사하고 관심을 갖고 만들었습니다. 정작 문화활동이 확산하게 된 계기는 해반문화포럼입니다. 지역에서 뜻있는 오피니언 그룹, 시민들, 주부들, 관계 시 공무원들, 언론인들이 해반문화 포럼에 와서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근간으로 해서 이 상식과 애정에 지역에 뭔가 해야 하지 않냐 하고 생각했습니다. 인천은 왜 사람들이 살면서 자부심을 느끼지 않고, 수많은 기업들은 다들 인천을 떠나고, 인천에도 대학교도 있는데 애들은 왜 다들 서울에서 교육을 시키는가, 무슨 까닭일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만들었습니다.”

결국 동구 송림동으로 다시 돌아왔다
“1991년 해반갤러리를 이 장소에서 열었습니다. 고급문화인 갤러리는 운영에 돈만 많이 들어가고, 실질적으로 결과는 없는 편입니다. 외진 곳에 있나 싶어서 부평으로 이사를 간 적도 있어요. 거기서 갤러리뿐만이 아니라 가족음악회, 시낭송회, 작가초청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사람들을 장으로 계속 끌어들였어요. 하지만 결국 갤러리 부평점을 문 닫고 다시 동구 송림동으로 돌아왔어요.”

인천 바로알기 답사프로그램 진행
“이 장소는 저희들의 작은 건물이니까 운영비를 절약할 수 있었어요. 그때 뜻있는 분들이 지역문화에 관심을 돌리면서 문화예술의 장을 함께하는 분들을 모아 보작 했습니다. 그렇게  문화포럼을 시작하면서 지역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94년도에 대한민국이 지자제가 만들어지고, 그러면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이 세워졌어요. 구체적인 장이 만들어졌죠. 그 당시에 인천시에는 문화예술과도 없었습니다. 문화를 여론화시키고, 포럼 내용이 지역신문에 보도되면서 오피니언 그룹이 모여들고, 이러면서 우리가 직접 인천을 ‘바로알기’ 답사프로그램을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구도심, 강화, 부평문화권, 문학문화권을 회원들이 자녀들과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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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이 근대문화재 둘레길 자료를 논의하고 있는 모습.
 
자녀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인천이 되어야 한다
“결국 인천의 문화 역사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역사의 물꼬는 개항이라는 시점입니다. 항구라는 도시가 어찌됐든 해외교류의 장이 되면서 그것이 이 자리에 일본에 의해서 미국, 러시아, 청국, 독일, 영국 등… 선진문물이 들어오면서 인천이라는 최초의 뭐가 많이 이뤄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천의 문화 자산이고 유산이 아닐까요. 지금은 개항장이지만, 개항이라는 어떤 불꽃, 그런 것에 상징적인 의미를 저희 조그마한 단체에서 자꾸 불러일으켰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부서진 건물도 많고 사라진 건물도 많지만, 남아 있는 문화 역사 흔적이라도 보존하고 허물어지게끔 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런 대안으로 인천아트플랫폼을 들 수 있습니다. 창고건물이죠. 저희가 일본에 답사를 가면서 일본에서도 창고가 문화유산 건물로 되는 걸 봤습니다. 나가사키라든가, 요코하마라든가… 항구도시를 가서 지형적으로 참 비슷한 점을 보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 회원들이 눈으로 보면서, 정말 우리가 그동안 돌보지 않은 인천에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민들이 작업을 하다보니, 그 사라져가는 건물을 보존하고 가꿔야 하는 문제는 자녀들한테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자녀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도시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오래된 공간을 박물관화하고 자료관화하는 게 중요했죠. 시민들이 갖고 있던 자료들을 발굴해 내는 일도 아주 중요했습니다. 시민들은 돈이 없으니까 시 차원에서 정책을 수립해서, 그런 것들을 자꾸 만들어가게 됐습니다. 또한 지자제들이 너나없이 축제를 만들어 관광자원을 만들 때 지역의 문화유산을 발굴해 내고 그것을 관광자원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된 관광정책은 참 중요합니다.”

‘움직임’으로 인천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런 것이 하루아침에 된 건 아닙니다. 점진적으로 공부를 해가고, 지역으로 눈을 돌리다보니 이러한 일까지 나서게 된 거죠. 또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월미도 경우에는 관광지이지만, 살아있는 공연은 뭐가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2년 전부터 하절기 동절기 빼고 매주 토요일마다 그 현장에서 문화 공연을 회원들이 자원봉사 했어요. 그런 것들이 결국 ‘움직임’이라는 걸로 인천을 알리게 되었고, 이러한 차원의 모든 것들을 머리 맞대고 해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94년도에 정식으로 준비를 거쳐서 문화사랑회를 만들고, 그것을 좀 더 확장해서 97년도에 사단법인화했습니다. 그러면서 회원들이 꽤나 많이 모이고 활동하다 보니, 모두 무척 적극적이었습니다.”

개항이라는 느낌에 있어서는 다른 곳보다 앞섰다
“문화재청에서 지원금을 받아 문화지킴이 선생님들을 형성해서 일선학교에 방문하게 됐습니다. 교재를 만들고 5년 동안 방문수업을 했어요. 저는 여기서 태어나고 살았고, 남편은 두 살 때부터 살았으니까 인천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말하자면 고장의 현실을 알았습니다.  저희 부부가 동기부여를 했지만, 결국은 여러 선생님들이 일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애정을 갖고 있는 분들이 활동했습니다. 책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지역의 전문가에게 실비를 드리고, 지금 시대에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었어요. 이 책자는, 인천문화유산을 해설하려면  꼭 읽어야죠.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 현주소를 분석해서 알게 되는 거죠. 교재들도 만들었습니다. 2000년도에는 대대적인 전시를 통해서 종합예술문화회관 전관에서 포스터 엽서를 만들어 보급했습니다. 1년을 전문가들과 준비했습니다. 인천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들을 다 전시했습니다. 개항이라는 느낌에 있어서는 다른 곳보다 우리가 좀 앞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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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문화재 가꾸는 날'에 참여 중인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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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반 청소년 지킴이단 교육이 끝난 후 학생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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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둘레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초들이 인천에 뿌리를 내리고 비전을 꿈꿔
“인천을 홍보하기 위해 전국에 있는 작가들을 초청해서 인천에 관한 판화도 제작했습니다. 선구자적인 일을 한 셈이죠. 20년 동안 해온 거죠. 이번에 상을 받지만 그 의미는 지역에서 민초들이 인천에 뿌리를 내리고 미래의 비전을 갖고 꿈꿨던 애정들이 모여서 활동한 걸 중앙정부에서 기리는 거죠. 그동안 해반문화사랑회를 거쳐간 분들의 밀알, 애정에 대한 치하가 되는 겁니다. 역사성이 있고 흔적, 연혁이 있는 거죠. 홈페이지는 임의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지나간 흔적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어찌보면 이 일도 무형의 자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같은 단체도 무형의 유산입니다. 애썼던 부분이 시민에게 알려지고, 시민이 인천에 대해 애정을 많이 갖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만들 때 기초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해반사랑회에서 활동한 분들 가운데는 지역에서 큰일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문화의식을 갖고 각계각층에서 일하면 좋은 거잖아요. 그 분들에게 이 상이 전달돼야 한다고 봅니다. 2010년에는 문화지킴이로 문화재청장상을 받았어요.”

인천에서 개화의 의미를 되살리다
“문화재청에 한문화지킴이 활동이 있었어요. 시민들이 둘레길 자체가 아니라 이 속에 있는  콘셉트를 찾아내는 일은 중요합니다, 일본이 찬탈하기 위해 개항장에 은행을 만들었잖아요. 우리는 둘레길을 걷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정신성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1883년에 인천이 개항되고, 그때 가장 먼저 한 게 일본사람들이 제1은행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돈을 찬탈하려고 한 거죠. 한편으로 그 점은 인천에서 경제의 의미가 싹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송도에서 경제특구라고 해서 경제활동이 일어나잖아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시켜 보는 거죠. 이번에 다시 만든 손수건에 인천의 상징성을 담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학교도 그렇고… 인천이 개화라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인천에서 개화의 의미를 갖자는 생각으로 문화재청에 자료를 냈어요. 지역에 있는 문화재를 발굴하고, 지키는 겁니다. 학생을 찾아가서 특별수업이나 내 고장을 바로 알자고 수업했습니다. 청소년문화재지킴이단을 발족하고, 내 고장의 문화재를 가보고 쓰레기도 줍고, 함께하자고 해서 토요일에 봉사점수도 받고 활동하고 있어요. 체험담을 올리면서 인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지역사랑, 문화사랑, 인간사랑’이 인정받은 계기
“올해는 포럼을 많이 하지 못했어요. 이번에 수상을 기리고 회원들과 기쁨을 나누려고 23일 포럼을 합니다. 과거와 미래, 구도심과 미래를 잇는 인천문화의 비전, 어찌보면 단절돼 있는 문화의 맥을 이어보자는 의미입니다. 저희가 95년부터 포럼을 시작했고, 그 포럼 내용이 지금도 실천되고 있는 게 많습니다. 예를 들면 폐허나 마찬가지 상태였던 차이나타운, 그 안에 자장면박물관 같은 경우도 포럼에서 얘기가 많이 됐었어요. 그후 구체화한 거죠. 아트플랫폼도 그렇습니다. 저희가 문제제기를 하고 시에서 기금 형성이 되고 이러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번에 상을 받는 건 그동안 저희들이 펼쳐온 ‘지역사랑, 문화사랑, 인간사랑’이 그동안 애써온 걸 인정받은 계기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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