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어느 정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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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어느 정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한가?
  • 김정아
  • 승인 2014.01.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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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김정아 / 햇살노인전문기관 온가정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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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은 대체로 아무런 증상이 없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으니 치료하지 않고 안심하고 있다가 뇌출혈이나 심근경색증 등 심각한 혈관 합병증이 발생한 이후에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고혈압은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3년 전 까지만 해도 고혈압을 치료하는 지침은 ‘lower is better, 즉 혈압은 낮게 조절할수록 좋다.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으니까’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혈압을 지나치게 낮추는 것은 좋은 치료법이 아니라는 발표가 최근 나왔다.
 
당뇨병과 마찬가지로 고혈압도 미국과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관리지침을 주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지난 12월 미국 고혈압학회는 10년 만에 update된 성인 고혈압의 관리지침을 발표하였다. 보통 5년 이내에 새로운 지침이 나오는데 이번에 발표가 늦어진 것은 고혈압 관리에 대한 여러 논문을 분석하면서 논란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렵게 합의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고혈압의 기준과 치료목표가 완화되었다는 점이다. 당뇨병이나 신장질환이 없는 60세 이상의 성인 고혈압 환자는 이전에는 혈압 조절 목표가 140/90mmHg이었는데 이제는 150/90mmHg으로 완화되고, 당뇨병이나 신장질환이 있는 고혈압 환자는 연령에 관계없이 140/90mmHg이 조절 목표가 되었다.
 
물론 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의 지침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비슷하게 조금 더 엄격한 혈압조절을 권하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2013년 대한고혈압학회 진료지침에서 혈압을 미국의 지침처럼 150/90이 아니라 140/90미만으로 조절할 것을 권장하였고, 당뇨병이 있는 경우는 140/85미만으로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노인의 경우에는, 수축기 혈압이 160이상인 경우에만 약물치료를 하도록 권고하면서 치료 중에도 수축기 혈압을 140-150, 확장기 혈압은 60이상을 반드시 유지하여 지나치게 혈압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강조하였다. 결과적으로 이전보다는 목표혈압이 약간 올라간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완화된 고혈압 지침을 발표하게 된 근거는 혈압이 낮으면 낮을수록 합병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던 많은 연구들이 의외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처음에서 말한 것처럼 고혈압은 질병 그 자체보다 뇌졸중이나 심장혈관질환 등 생명을 위협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무서운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 2010년 발표된 ACCORD라는 연구는 그 당시로서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간단히 살펴보면, 4년 이상 진행된 표본조사에서 혈관합병증의 위험이 높은 성인 당뇨병 환자 중 수축기혈압을 120미만으로 엄격하게 조절한 그룹이, 140/90으로 보통으로 조절한 그룹에 비해서 심각한 심혈관 질환의 발생을 줄이지도 못했으며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사망한 환자가 더 많았던 것이다. 유사한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수축기 혈압을 150정도로 낮춘 환자는 합병증 예방에 좋은 결과를 보였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정도, 즉 수축기 혈압을 120미만으로 낮춘 경우에는 심혈관 질환을 줄이는 이득은 없고 도리어 문제점이 보고되었다. 사망률이 더 높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으나 ‘엄격하게 조절한 그룹’의 평균 수축기 혈압 119mmHg는 혈압이 너무 낮아서 도리어 뇌경색이나 심혈관 사고를 높이는 요인이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여전히 인종이나 국가, 또는 의사에 따라서 의견의 차이가 어느 정도는 있을 수 있으나 2012년 발표된 당뇨병관리지침과 마찬가지로 고혈압도 이전보다는 혈압을 덜 엄격하게 조절하는 것이 좋다는 점과, 개별 환자의 특성에 따라 조절해야 한다는 점은 모두 동의하고 있다. 특히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늘어난 고령 환자에서는 혈압을 140/90이하로 낮추는 것은 합병증 예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약물에 의한 부작용만 늘어날 뿐이다. 80세 노인이 혈압약을 드시면서 혈압이 110/60으로 나온다고 아주 잘 조절되고 있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노인의 당뇨병 치료에 있어서 혈당을 엄격하게 조절하는 것이 도리어 저혈당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만 증가시킬 뿐 실제적인 이익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과 맥락이 같다.
 
병원을 열심히 다니는 고혈압 환자들은 자신의 혈압에 아주 관심이 많다. 혈압이 140/90으로 측정되면 너무 높은 것 아니냐, 약을 올려야 되는 것 아니냐 걱정을 많이 한다. 반면 어떤 환자는 ‘내 병은 내가 안다’고 하면서 혈압강하제를 자기 마음대로 복용하다 안하다 하는 경우도 있어서 사실 현재의 조절목표보다 혈압을 약간 높게 조절하라는 것은 의사인 내 자신도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만성 질환은 어차피 환자의 개별적 특성에 맞추어 접근해야 하니 의사와 환자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치료 방침이 정해져야 한다. 환자의 의료적 상황 및 혈압과 연관이 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서 목표혈압을 다소 완화된 지침에 의거하여 설정하고, 운동이나 식습관, 체중관리 등 생활습관을 변경하도록 격려하면서 꾸준히 혈압을 관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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