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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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
  • 이수석
  • 승인 2014.01.21 07: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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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기획-인천교육미래찾기(38)
왜 나만 갖고 그래요? 쟤는요?
이수석(석남중학교, 인천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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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춥고 배고팠지만, 그래도 행복했었던 공동체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 폭력이 난무한 학교 현장, 승자와 패자만을 가르기 때문에 협동학습이 사라져간 공동체의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 간에 배우고 익히며 행복해야 할 학교현장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는 점점 더 세분화되고 예외적인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였다. 과거에는 팔조법금이란 것만 있었도 사회를 유지 통합할 수 있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생명에 관한 법,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한다는 신체에 관한 법, 그리고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데려다 노비로 삼으며, 속죄하고자 하는 자는 1인당 50만 전(錢)을 내야 한다는 재산에 관한 단순한 법만으로도 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다.
팔조법금 중에서 전해오는 3가지 법만으로도 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다. 참으로 꿈같은 시절의 이야기다. 하지만 세상은 과거보다는 조금 더 잘 살게 되었다, 어른들은 배고팠지만 그 때가 살기 좋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그 때(배고팠지만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한다.

현재는 내 어릴 적 때보다는 훨씬 더 잘 먹고 잘 산다. 아이들은 연필과 지우개로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교사들은 더 이상 자장면만으로 아이들이 화해시키지 못한다. 화해하라며 사주는 자장면을 아이들은 먹으려고도 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은 효과를 빨리 볼 수 있는 응보적 정의로 아이들을 통제하고 길들이려 한다. 응보적 정의는 지금까지의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던 것이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의 권선징악은 응보적 정의의 대표적인 사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상대방이 나에게 준 피해만큼이나, 더 이상의 큰 피해를 돌려주겠다는 것이 응보적 정의다.
하지만 이 응보적 정의는 더불어 사는 사회,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다시 살펴보아야 할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진리에 맞는 바른 도리를 정의(正義)라 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모두 갖고 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정의다. 과거에는 이 정의가 응보적으로 적용되어왔다. 그리고 이 응보적 정의는 아주 합리적이고 효과적이었다.
책상의 가운데 선을 넘어 침범해 오면, 나는 그 만큼의 응당한 대가나 보상(보복)을 하였다. 이것은 당연히 여겨졌었고 그렇게 교육받았다. 응보적 정의의 핵심이다. 그래서 책상의 빗금을 가운데 두고, 나와 짝꿍은 실랑이를 하였다. 그리고는 서로 간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걸 보다 못한 선생님이 중재를 해 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어릴 적부터 응보적 정의를 생활 속에서 배우고 익혔다. 그리고 중학교 가서는 국사와 세계사를 통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조선의 팔조법금과 함무라비 법전을 배우며 인간사를 지탱해 온 원리가 응보적 정의라는 것을 배우고 익혔다.
부모님은 내가 착하고 잘하면 상을 주셨다. 선생님은 내가 학교의 규칙을 잘 지키고 약자를 도와주었다면 칭찬과 상을 주셨다. 잘한 일에는 상을 주었고 잘못한 일에는 책임을 묻고 벌을 주었다. 이런 ‘응보적 정의, 보상적 정의’는 인류 사회를 유지해 온 근간이었다.

응보적 정의의 한계점
그러나 세월이 흘렀다. 초등학교 다닐 때의 춥고 배고팠던 그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무역량 12위의 엄청난 경제성장을 하였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생활환경은 급격하게 변하였고, 의식수준도 변화했다. 이제는 배가 고파서 도둑질하는 생계형 범죄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남들과 비교한 상대적 빈곤감으로 인해서 각종 범죄와 폭력이 난무한다.

사회와 문화가 변함에 따라 학교 현장도 바뀌었다. 선생님들에게는 넘쳐나는 업무와 수업준비 때문에 학생들과 뛰놀며 소통할 시간적 여유가 사라져버렸다. 학생들에게는 선행학습과 학원수강, 학교수업, 자율학습, 방과 후 학습 등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놀 시간이 없어졌다. 관리자들에게는 상급단체에서 내려온 업무를 달성하기 위한 회의와 방안 마련으로 전전긍긍하느라, 교사와 학생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여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면서 위안이 되는 정의의 구현방식은 응보적 정의였다.

“너는 교복이 학교 규정에 맞지 않아. 벌점 1점. 너는 인사를 참으로 잘하는 구나. 상점1점. 너는 흡연을 하였으니 벌점 5점. 학생이 엘리베이터를 타? 벌점2점. 힘들어 하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 주었다고, 착하구나. 상점2점 ……. 친구의 흡연 사실을 알려주었구나. 상점1점.”
“너는 학교 폭력을 하였어. 너한테 맞았고, 돈을 빼앗기고, 빵 심부름을 했고, …말이 빌린 것이지, 너는 윤필남이의 핸드폰과 패딩점퍼도 사실은 뺏었잖아. ……필남이가 네가 자신에게 했던 일을 다 말했어. 필남이의 부모님은 너무나 화가 나서, 너를 학교폭력과 금품갈취로 경찰에 신고 한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니? …….”

“그 자식이 그래요? …잘 모르겠어요. …에이, 학교 자르세요. 학교 안 다니면 되잖아요. ……하지만 아빠와 엄마에겐 연락하지 마세요. 아니, 연락도 안 될 거예요. …그냥 맘대로 하세요. 법대로 하면 되겠네요…….”
“……석주야. 넌 착한 아이였잖아. 왜 이래? ……선생님이 너에게 뭐 잘못한 거 있니? 이야기를 해 봐!…….”
“…… 사실, 저도 억울해요. 왜 저만 갖고 그래요? 다른 애들도 많잖아요. …재수가 없으려니까…….”

회복적 정의로의 패러다임의 전환
학교 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교사들은 학교 가기가 두렵고 학생들은 학교 가기를 싫어한다. 이제는 과거의 응보적 정의만으로 세상을 유지하고 관리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제는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 현재의 세계는, 고대의 팔조법금이나 함무라비 법전의 응보적 정의만으로 해석하고 판결하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착한일과 나쁜 일에 대한 구분마저도 명확하지가 않다. 이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구분으로만 나눌 수 없다. 승자와 패자만으로도 구분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법정의 현실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원고와 피고, 고소?고발인과 피의자 사이에 상호간의 공방의 과정을 거쳐, 승자와 패자를 구분한다. 하지만 승자는 이겼어도 패자의 보복과 복수가 두려워 맘 편히 살 수 없다. 패자는 승복할 수 없는 판결의 부분에 대해서 울분을 품고 있다. 그리하여 기회가 있으면 자신의 억울함을 표현하기 위한 복수를 펼치려고 한다. 응보적 정의만으로는 승자와 패자를 모두 품어 안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어찌 보면 응보적 정의만으로는 이 사회를 이끌 수 없다. 이 사회가 행복해 질 수 없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회복적 정의로 WIN WIN을 이루자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폭력문제는 더 이상 응보적 정의를 갖고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폭력에는 반드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학교 폭력은 그 대상자가 학생이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 더 많다. 왜냐하면 학교폭력의 대다수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고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학생은 언제나 배우고 익히는 성장하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가치를 배우고 익히며 체득해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학교 폭력의 경우에는 마음으로부터의 용서와 화해를 통하여 진정한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회복적 정의이다. 회복적 정의는 당장의 효과를 보려는 응보적 정의와는 달리,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 모두에게 만족을 준다. 외형적으로 보면 양보하는 형식일 수도 있고, 포기로 보일 수도 있다. 회복적 정의의 놀라운 결과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실질적인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만족과 승리를 가져다주는 정의의 실현! 놀랍지 않은가?

학교 폭력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간의 진심어린 대화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는 회복적 정의가 구현되면 학교 폭력은 많은 경우 사라질 것이다. 가해자인 학생은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아 같은 폭력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며, 피해자는 가해자의 보복과 복수에 떨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학교 현장에서부터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새로운 학교 상을 만들 것이다. 학교에서 회복적 정의를 배우고 익힌 학생들이 생활하는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왜 나만 갖고 그래요? 쟤는요?”라며 변명하고 핑계되며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시키려는 꼼수가 통하지 않는 사회는 만들어 질 것이다.
그렇다면 회복적 정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이며,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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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기 2014-01-22 21: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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