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왕국, 바위와 공존하다
상태바
폐허가 된 왕국, 바위와 공존하다
  • 김유철
  • 승인 2014.02.09 2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홀로 무작정 배낭여행] (3)함피~고아~아우랑가바드
IMG_5716.jpg
함피는 이질적이다. 융성했던 왕국이 폐허가 돼 형편없이 방치된 모습에서 인간과 자연을 읽는다
 
 
벌써 2주가 지나갔다. 여행의 시간들은 너무 빠르다. 아라비아해가 보이는 코치와 바르깔라에서 뱅골만이 보이는 폰디체리와 마말라뿌람에 간게 2주전이었다면, 지금 꽤 많이 북쪽으로 올라왔으며, 또 다시 아라비아해를 보고 있다.
 
마말라뿌람에서 그 다음으로 가고 싶었던 도시는 '함피'였다. 함피는 남인도를 대표하는 마을 중 하나다. 여기서 '도시'라고 칭하지 않고 '마을'이라 한 이유는 규모 자체가 워낙 작고 살고있는 사람 수도 워낙 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함피가 남인도를 대표하는 곳 중에 하나인 이유는, 바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이질적인 풍경 때문이다.
 
함피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인도 제 4의 도시중 하나인 '첸나이'를 거쳐야 했다. 마말라뿌람은 조그마한 동네라 교통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말라뿌람에서 첸나이까지는 버스로 2시간이면 가는 거리였기 때문에 오전에 첸나이로 향했다. 첸나이는 듣던대로 대도시였다. 그러나 첸나이를 그저 함피로 가기 위해 거치는 곳이었기에 곧바로 함피로 가는 버스편을 알아보았다.
한참을 이곳저곳에 물어 다닌 결과 함피까지 가는 버스는 물론이거니와 함피 근교의 그나마 큰 도시인 '호스펫'이라는 곳으로 가는 버스마저 없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호스펫에서도 90km정도 떨어진 'Bellary'라는 곳으로 간 후 그 곳에서 호스펫을 거쳐 함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출발하는 '슬리퍼 버스'를 한자리 예매 했다.
(슬리퍼 버스 (sleeper bus) - 인도는 워낙에 땅덩이가 커서 도시간 이동할때 짧게는 8~9시간부터 길게는 15시간 넘게까지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이 침대가 있는 버스를 이용해서 도시를 이동하며 버스에서 자게 되는데 침대칸이 있는 이러한 버스를 '슬리퍼 버스'라고 한다)
 
표를 예매하니 출발까지 6시간 정도 남았다. 무얼할까 하다가 날도 덥고 해서 쾌적한 쇼핑몰에 가서 있기로 했다. 당장 주변 사람들에게 위치를 물어보고 큰 배낭을 터미널 짐 보관소에 맡긴 후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인도에는 아직 탈때 돈을 내거나 하는 시스템이 없어서 우선 버스에 올라탄 후, 한 사람이 돌아다니며 목적지를 물어본 후 돈을 걷는다. 정류장에 멈춰서면 사람들은 앞문, 뒷문 구분없이 타는데 그 와중에도 어떻게 모두 기억하고 돈을 걷는지 탈 때마다 신기할 따름이다.
한참 시간을 보내다 여유있게 다시 터미널로 향하려고 버스를 타러 갔다. 당연히 내린곳의 반대편에서 타려고 갔는데 다시보니 그런 구조가 아니었다. 결국에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정류장을 찾아가서 타라는 버스를 탔는데 그 쇼핑몰에서 한번에 버스 스탠드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갈아타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물어보는 사람들 제각각이 다른 곳을 가르쳐주고 다른 노선을 가르쳐주는 바람에 점점 더 혼란에 빠졌다.
우스갯소리로 인도인들에게 길을 물어볼 때는 최소 3명에게는 물어보라고 한다. 워낙 제각각으로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우리와 정서가 다른 인도인들은 다른 사람이 도움을 청했을 때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죄송스러운 일이라서 우선 아무데나 말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길을 물어볼 때는 사람들이 모여있는곳에 가서 물어보면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한 후, 가르쳐 줘서 더 정확하지만 개인에게 물어볼 때는 한명이 아닌 여러명에게 물어봐야 한다.
결국 주변의 번화한 곳으로 간 후 그곳에서 버스스탠드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아무래도 번화한 곳이면 그나마 버스가 많이 다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곳에서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고 간신히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슬리퍼 버스는 약간 좁긴 했지만 생각보다 좋았다. 에어컨이 없는 버스가 더우면 어쩌나하고 걱정했는데 덥기는 커녕 새벽에는 쌀쌀하기까지 했다.
타자마자 피곤했던지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보니 'bellary'에 도착해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호스펫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간후, 다시 함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P1010138.jpg
집채만한 바위와 폐허가 된 왕국, 함피
 
 
함피
 
함피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 때문이다. 함피에는 한 때 백만명의 용병을 고용할 정도로 부유했던 왕국이 있었는데, 이 부를 탐낸 주변의 이슬람 국가 3곳이 연합해 협공했다고 한다. 결국 왕국은 멸망하고, 부는 약탈당해 폐허가 됐다. 궁전과 사원들은 파괴당해 방치돼있다.
함피 특유의 이질적인 풍경은 하루종일 풍경을 쳐다봐도 질리지 않는다. 함피가 좋았다는 사람들 중에는 3,4일 일정으로 왔다가 2주씩 머물다 가기도 한다고 한다.
함피의 풍경을 보고 탄성이 나오는 이유는 너무 다른 두 요소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는 주변의 산들을 온통 뒤덮고 있는 집채 만한 바위들이다. 또 한 가지는 공들여 지어놓은 것들이 철저하게 파괴된 폐허의 모습들이다. 이 둘이 번갈아 보고 있노라면 인위적인 풍경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융성했던 왕국이 한 순간에 폐허가 돼 형편없이 방치된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자그마한 존재인가 새삼 깨닫게 한다.
 
지금까지 여행했던 사람들 중 함피에 다녀갔었던 사람들이 항상 했던 말 중에 하나가 무조건 강 건너에 자리를 잡으라는 것이었다. 강 건너가 더 숙소도 많고 풍경도 좋으며 방값도 싸다고 했다. 그 말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함피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강부터 건넜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모터보트를 타고 건너야 했다. 강을 건너 숙소를 잡았는데 희한하게도 함피에는 싼 방이던 비싼 방이던 숙소 문 앞에 그물침대나 흔들침대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위에서 한가로이 책을 보거나 쉬고 있었다.
함피에서는 도보가 힘들다고 해서 자전거를 빌렸는데 결과적으로 자전거를 타다가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번갈아가며 계속 나타나는데다가 날은 뙤약볕이고 시골인 탓에 비포장길도 많았다. 그래서 오전중에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잔뜩 둘러보고 힘이 다 빠져서 오후부터는 숙소 앞 침대에서 누워서 쉬며 멍하게 있기도 하고 경치 좋은 곳으로 올라가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함피에서 밤에 쉬고 있을 때였다. 바르깔라에서 만나 알게 된 ‘형’들 중에 한명이 혹시 함피냐는 연락을 해왔다.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혹시나해서 물어봤다고 다음날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바르깔라에서 만났던 ‘동포’를 또 다시 함피에서 보게 되었고 같이 고아까지 가기로 했다.
함피는 짧게 머무르지 않고 길게 머물수록 더 진가를 알게되는 것 같다. 숙소들 또한 더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도 나오는가 하면 더 멀리 있는 논두렁 한가운에 있는 방갈로식 숙소도 있었다. 또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곳에도 숙소들이 있었고 서양인들이 죽치고 있었다. 또 시골이다 보니 길에 소들은 물론이고 닭들과 병아리까지 길거리에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이 새삼 신기했다.
 
함피 다음에 가려는 곳은 그 이름도 유명한 '고아'였다. 한때 히피들의 천국이라고 불리웠던 곳이다. 아직도 매일매일 해변에서 벌어지는 파티와 함께 인도내에서 주세가 없다는 파격적인 이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다. 크리스마스부터 신년까지의 고아는 그야말로 부르는게 값인듯 방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다행이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어느정도 감당할만 한 수준이라고 했다. 고아까지는 또 다시 슬리퍼 버스를 타고 갔다. 고아에서도 이름난 해변이 많았는데 우리는 그 중에 '안주나 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남3245~1.JPG
 고아 해변
 
 
고아
 
고아의 해변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한산했다. 우리는 이같은 한산함에 새삼 실망을 했다. 고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항상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이미지였는데 그 분위기가 아니였던 것이다.
고아의 해변은 많고 너무 넓은데 비해서 해변간의 버스망은 좋지 못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쿠터나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다닌다. 우리도 하루 날을 잡아 스쿠터를 타고 다른 곳으로 다녀 보았다. 그러다가 '깔랑굿'이라는 해변에 갔는데 그곳은 거의 해운대를 방불케 할 만큼 북적거렸고 활기찼다. 우리가 머무는 안주나 해변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한쪽에서는 제트스키를 타고 있었고 바나나보트를 타는사람도 있는가하면 해변가에서 쉬는 사람의 수도 워낙에 많았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점은 우리가 고아에 있을 때, 마침 토요일이라 고아에서 유명한 토요 마켓이 열린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고아에서 사귄 인도인 한명과 함께 토요마켓에 가보기로 했다. 마켓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일대의 교통은 마비상태였다. 자동차와 오토릭샤들 그리고 오토바이들까지 발 디딜틈도 없었다. 간신이 뚫고 들어가서 보니 안은 상당히 컸다.
의류나 장신구를 파는곳을 물론이거니와 먹거리 장터 같은 곳도 있었다. 또, 주류를 파는 주류 바도 있었고 조그마하게 클럽식으로 꾸며놔서 사람들이 즐길수 있게 한 곳도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중앙에 무대를 만들어 놓아서 밴드들이 공연까지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장터라기 보다는 꽤나 큰 축제 같았다.
 
다른 해변도 다닐 만큼 다녔고 마켓도 다녀온 우리는 나머지 고아에서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기로 했다. 저녁에는 해변에서 과일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기도 했고 낮에는 해변가에 누워 음료를 마시며 쉬다가 해수욕을 하러 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또 다들 각자 헤어지게 되었다. 필자는 아우랑가바드로, 한명은 뭄바이를 통해 한국으로, 나머지 한명은 뿌네라는 도시로...
 
 
아우랑가바드
 
대개 여행객들이 아우랑가바드에 오는 이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군을 보기 위해서이다. 한국에는 아잔타가 상대적으로 더 유명한데 엘로라도 그에 못지 않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굴군이다. 필자 또한 엘로라와 아잔타를 보기 위해 아우랑가바드에 왔다고 볼 수 있다.
 
아우랑가바드 자체가 볼거리가 몇개 없는 그냥 대도시이기 때문에 아우랑가바드에 있으면서 하루는 아우랑가바드에 있는 것들을 보고 하루는 엘로라 당일치기, 또 하루는 아잔타 당일치기를 하기로 했다.
 
엘로라와 아잔타는 유적군들 이외에는 편의시설등이 없어서 아우랑가바드를 기점으로 삼아야만 했다.
아우랑가바드에서는 '빤짜끼'와 '비비 까 마끄바라'를 봤는데 빤짜끼는 예전에 인근의 강에서 물을 끌어올려 물레방아를 돌려 그에 연결된 멧돌을 돌려 밀을 빻았다고 하는 곳인데 지금은 빈 멧돌만 계속 돌아갈 뿐이여서 별게 없었다.
그에 반해 '비비 까 마끄바라'는 가난한 자의 타지마할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생김새도 거의 비슷하고 실제로도 타지마할을 보고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 이미지는 이미테이션 유적지 같은 느낌이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나름대로 웅장하고 멋있었다. 진짜 타지마할과 비교하면 모자랐지만 짝퉁 치고는 상당히 괜찮았다.
 
엘로라와 아잔타는 어떤면에서는 상당히 닮았고 또 다른 면에서는 상당히 다른 석굴군이었다. 둘 다 석굴군이라는건 같지만 아잔타는 불교 석굴만 위치해 있는것에 반해 엘로라는 자인교, 불교, 힌두교가 같이 혼재해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아잔타가 조금 더 유명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엘로라가 더 기억에 남았다. 세 종교가 다른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면 자기들의 종교 석굴을 만들때 다른 종교의 석굴을 파괴해버리는게 보통이지만 다른 석굴들도 보존을 해 놓고 그 옆에 지어놨다는 것이 신기했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엘로라 16번 석굴인 '카일라시 사원'이었는데 앙코르와트와 함께 힌두교 제 2의 사원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압도적인 크기와 웅장함도 놀라웠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돌을 쌓아 만든 사원이 아닌 엄첨나게 커다란 돌을 깎고 깎아서 만든 사원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사원의 돌은 모두 한덩이라는 점이었다. 이 사원을 만들어 내는데 깎아낸 돌의 양만 20만톤에 달한다는 말을 듣고 정말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루는 아잔타, 그 다음날은 엘로라를 본 후 바로 어제 밤 아메다바드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당연히 슬리퍼버스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직통으로 가는 버스인줄 알았는데 거의 시내버스 수준으로 온갖 동네를 다 거치고 다녔다. 결국 밤 9시에 출발했는데 도착은 다음날 점심이 넘어서였다. 심지어 인도인들 중에도 나처럼 끝까지 가는 사람은 없었다. 새벽에도 계속되는 정차와 승하차, 사람들이 내리고 타면서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이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짐을 바로 역에 맡겨 둔 후 낮에 돌아다니다가 밤에 다시 '부즈'로 가는 기차에 탈 예정이다.
 
'부즈'는 아직 한국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은 곳인데, 볼리비아에만 있는 줄 알았던 소금사막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아직 여행객 자체가 없는 곳이라 그곳에 다녀간 몇몇 사람들의 자료만 보고 찾아가 보는거라 여행객들을 만날 기대는 하지도 않고 있다. 아무래도 자료가 적은 곳이니 별 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