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으면 치매 걸려. 밥도 같이 먹고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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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으면 치매 걸려. 밥도 같이 먹고 얼마나 좋아”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2.11 0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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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서 좋은 노인 공동체, 계양구 효성동 ‘행복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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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는 적고 폐지 줍는 노인은 많았다. 새벽부터 일해도 들어오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노인들이 서로 많이 줍겠다고 경쟁하다가 싸움이 나기도 했다. 동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던 김임순 씨는 노인들이 모여 소일거리 할 수 있는 조그마한 가게를 하나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탁소 앞에 비어있던 5평짜리 가게를 월세 10만 원에 계약했다. 원래 25만 원짜리인데, ‘노인들이 1만원, 2만원씩 내서 지키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비워두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며 주인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깎았다. 할머니들은 김임순 씨의 제안에 반색했다. 일할 수 있어서 좋고, 일할 데가 있어서 더 좋았다.

3년 전부터 노인들과 함께 가게를 꾸려오다가 작년 말에 ‘계양봉사단’과 인연이 닿았다. 바닥재도 깔고, 간판도 달았다. ‘계양여성노인자활센터 행복마을’에서 어르신들을 공동 관리하고 있는 김임순(55), 최종애(59) 씨를 만났다.


- ‘노인자활센터’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이 동네는 노인들이 갈 만한 경로당이 없어요. 있기는 한데, 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해요. 노인들이 길 건너기 힘드니까 안 가요. 아니면 남의 동네 경로당에 가야 하는데 저쪽 위에 있으니까 멀고. 그렇다고 아파트 노인정에 갈 수도 없잖아요. 가면 왕따 되니까. 노인네들이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우린 여기서 30년, 40년씩 살았어요. 이 동네가 제2의 고향이에요. 우리도 나이 들고 늙을 텐데, 갈 곳이 있어야 하잖아요. 우리도 같이 일할 수 있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장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직장이잖아요. 내가 일해서 돈 벌고 1만원, 2만원씩 내니까 할머니들이 큰소리 칠 수 있는 거예요. 이런 게 생겨서 정말 좋다고 해요. 손주 용돈을 주더라도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1만원이 진짜 좋은 거잖아요. 어디서 공으로 받은 5만원보다 낫죠. 일감은 우리가 물어다주지만 어르신들이 일한 만큼 버는 거예요. 다들 부지런하세요. 청소도 어르신들이 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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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마을’ 맞은편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임순 씨. 
노인 공동체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이다 ⓒ 이재은


- 보통 몇 시까지 일하시나요. 수입은 얼마나.

대중없어요. 일이 있으면 10시까지도 있고. 우리는 가족이 있으니까 5, 6시면 저녁 하러 들어가요. 노인들은 다들 혼자 사시니까 8시, 9시까지 연속극을 보기도 하고. 여기가 좋다고 집에 늦게 가요.

다 혼자 살아요. 남편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자식들한테 용돈 받는 사람도 없고. 그래도 여기 나오면 마음이 편한 거예요. 한 달에 10만원을 번다고 해도 내가 편히 이웃을 만나고, 일거리 없을 때는 여기서 담소도 나누고 좋잖아요. 일 없으면 할 게 뭐 있어요. 며느리 흉이나 보고, 자식 흉 보고 그러는 거지.

여기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려 있어요. 할머니들한테 각자 열쇠가 있어요. 하나씩 다 만들어줬어요. 일찍 나오고 싶으면 나와서 문 열고, 지나가다가 열려있으면 들어가고, 배고프면 밥 해먹고. 마음 편하잖아요.

많이는 못 벌어요. 꾸준히 일이 있기만 하면야 30, 40은 벌죠. 모자 많이 한 달은 그 정도 벌었어요. 모자는 100원이거든요. 지금 하는 사탕은 1개 포장하는 데 25원이에요. 10원, 20원짜리도 있는데 그런 거 하면 한 달에 20만원이나 벌까.

우리가 하면 빠르죠. 저거 이틀이면 해 버리죠. 근데 일부러 안 하는 거예요. 요즘에는 일이 별로 없어서 어르신들 돈 버시라고요. 우리는 관리를 해주죠. 일한 거 돈 계산도 해주고, 때 되면 전기세 같은 것도 내고요.


- 계양봉사단에서 도와줬다고 하던데.

크게 욕심낸 건 없어요. 바닥에 장판 깔아준다고 했을 때도 어차피 신발 신고 다니니까 괜찮다, 그 돈으로 더 어려운 분들 도우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여기가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거예요. 정부 도움 없이 노인들이 자립해서 스스로 일을 찾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잖아요.

누가 와서 보더라도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생활하는구나, 벤치마킹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요. 구나 시에서 왔을 때 당당하게 말하려면 깔끔해야 한다고요. 동사무소에서 단기 계약으로 일해도 6개월이면 끝이잖아요. 다음 사람에게 차례를 넘겨주면 또 폐지를 주울 수밖에 없어요. 해결되는 게 없죠. 노인들이 경로당에서 10원짜리 고스톱만 칠 게 아니라 스스로 일하면서 자립하는 거예요.

사실 우리끼리 소박하게 하고 있었던 건데 계양봉사단 대표님을 알게 된 후로 우리 머릿속에 들어온 게 많아졌어요. 생각이 많아졌어요. 우리도 계양봉사단에 들어가서 봉사해야 돼요. 뭔가 답례를 해야 되잖아요. 너무 미안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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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께 할 만하시냐고 묻자, “손목 시고 어깨 아프고, 이게 쉬운 것 같아도 케이스 뽑아야지, 
테이프 붙어야지, 다 한 거 갖다 쌓아야지, 힘들어.”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 거 안 하고 돈 벌어?” 뒤에서 들리는 소리. “나 얘기하는데 왜 참견 해. 가만있어.” 
싸우는 건가, 하고 긴장하려는데 금세 “깔깔깔” 웃음이 터진다  ⓒ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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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저기서 주워온 테이블과 의자로 꾸민 공간. ‘계양봉사단’의 도움으로 
싱크대, 냉장고, 바닥재 등을 얻고 간판도 달았다. 창틀 문, 환기구, 
냉난방 겸용기 등은 차차 준비할 예정이다  ⓒ 이재은



- ‘행복마을’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거예요.

3년 전부터 여기 모여서 일을 했으니까 구청에 명칭을 좀 지어달라고 그랬어요. 안 해주더라고요. 얼마나 많이 찾아갔는지 몰라요. 쌀 한 포대 주는 것도 인상을 팍팍 써요. 열 받아서 안 가요. 아무것도 아닌데 뭐를 갖다먹느냐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밤에 자기 전에 가만히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가 막 웃고, 즐겁고, 속상해도 여기만 나오면 마음이 편하잖아요. 아, 참 행복한 마을이다, 그럼 행복마을 하면 안 될까. 다음 날 와서 말했더니 괜찮대요. 계양봉사단 대표님이 오셨기에 어떠냐고 물었더니 여기랑 딱 맞다고, 딱 좋대요. 그래서 ‘행복마을’이 된 거예요.

계양봉사단에서 간판 달아주고 지난 1월 7일에 개업식을 했어요. 떡도 하고 동네 분들 초대해서 파티를 했죠. 여기 집주인이 고마운 게, 어른들이 꽹과리 치고 그래도 아무소리 안 해요. 젊은 사람들인데 이해해주니까 정말 고맙죠.


- 관리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관리자라고 하지만 사실은 심부름꾼이에요. 어르신이 일 있어서 못 나오면 우리한테 전화하고, 우리도 이틀만 안 보이면 전화해요. 텔레비전 보면 혼자 앓다가 돌아가시는 분들 많잖아요. 우리는 그럴 일이 없어요. 할머니들이 치매 안 걸려요. 고집들이 다 세지만, 다 친구예요. 하루 종일 싸우면서 같이 일하는 거예요.

우리가 딴 데로 일하러 간다고 하니까 난리가 났어요. 우리는 여기 있어봤자 얼마 못 버니까. 근데 우리가 나가 버리면 여기 문 닫아야 돼요. 끝까지 관리해야 할 것 같아요.

이곳은 동네 놀이방, 어르신들 놀이방이에요.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으니까요. 여기 못 오시는 분들한테 미안하죠. 그래서 좀 큰 데를 얻었으면 하는 거예요. 소외되는 분들이 생기니까요.

하다보니까 가게가 너무 좁아요. 놀러 와도 앉을 데가 없으니까 그냥 돌아가요. 이 동네에 혼자 사는 노인들만 20명 정도 되는데 갈 데가 없어요. 혼자 집에 계시는 거예요. 저 아래 주택 사시는 분들은 오지도 못해요. 사실 이 집 안채가 비어있거든요. 3가구가 살 수 있는데 주인집 한 가구 빼고는 비어있어요. 그걸 얻으면 좋을 것 같아요. 방 하나에서 할머니들 쉬게 하고, 또 하나는 할아버지들 쉬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중고 냉장고를 하나 들였는데 사고 보니 크기가 너무 작다고 한다. 김치도 보관하고 물도 넣어 놨다 꺼내 마셔야 하는데 가게가 좁다는 이유로 작은 걸 산 게 후회된다고.

‘행복마을’에 살지만 가끔 서운할 때도 있다. 동네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는데 와서 얼굴 내미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일부러 나가서 봉사하는 사람도 많잖아. 우리 동네고, 이웃인데...”

김임순, 최종애 두 분과 인터뷰 하는 동안 기자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게(행복마을이) 있어서 (어르신들이) 너무 좋은 거야.”였다. 그 말에는 ‘사실’ 이상의 숨결과 웃음 그리고 생명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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