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논현동에 ‘다문화 거리’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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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논현동에 ‘다문화 거리’가 있다고?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2.1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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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곡중학교 부근, 이색 음식점과 아시아 상점 등 몰려

남동구 논현동. 남동공단 근처 논곡중학교 부근에 외국인노동자 밀집지역이 있다. 원룸이 많이 조성돼있는 이곳에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혼자, 혹은 삼삼오오 모여 살며 공단 노동자로 일한다.

최근 한국 사회는 결혼이민자의 급증과 함께 외국인 근로자, 외국유학생 등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특히 고령화, 저출산으로 말미암은 노동 인구 감소, 3D업종 기피현상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반월, 시화 공단 등이 있는 안산 단원구 원곡동은 전국 최대의 동남아시아 외국인 구역이다. 원곡동 다문화 거리는 2009년 다문화 특구로 지정돼 ‘국경 없는 마을’로 불리며, 다양한 문화를 즐기거나 이색 음식을 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인천에도 다문화 거리가 있을까. 남동구 논곡로 85번길에 ‘한국인’의 취향이 아니라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음식점과 아시아 식료품 가게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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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동구 논곡로 85번길. 길을 사이에 두고 베트남, 러시아 음식점이 마주보고 있고
멀리 고려인 식당도 보인다 ⓒ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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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인 국수와 우즈벡 빵 등을 파는 고려인 식당(위) 
베트남 식당 메뉴와 아시아 마트(아래) ⓒ 이재은



음식점 수나 거리 분위기로 볼 때 논현골을 ‘다문화 거리’라고 지칭하는 것은 다소 성급해 보인다. 시나 구에서 ‘다문화 거리’ 조성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에서 온 아리플 후세인 씨는 이곳을 ‘인천의 다문화 거리’로 부를 만하다고 말한다. 남동공단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음식점과 가게를 찾아 많이 오기 때문이다. “인천에서는 여기가 (외국인 음식점, 슈퍼 등이) 가장 많죠.”

19년 전에 한국에 온 후세인 씨는 안산 반월공단에서 일하다가 10년 전 인천으로 직장을 옮겼다. “안산은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인천이 살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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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플 후세인 씨와 그가 운영하는 가게. 
남동공단에 있는 주식회사 '식산'에 근무하면서 평일 저녁과 주말에 ‘할랄 푸드’ 
가게를 꾸리고 있다.(halal food:이슬람교도인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의 
총칭. 할랄(halal)은 ‘허용된 것’이라는 뜻의 아랍어다) ⓒ 이재은



‘B.P.K’는 지난해 5월 오픈했다. 향신료, 커리 재료, 라면, 냉동육 등을 판다. 냉동고 안을 들여다보니 진공 포장된 돼지 귀, 개구리다리 같은 음식도 있다. “양고기, 소고기가 많이 나가요. 물건을 사러 오기도 하지만 놀러오는 친구들도 많아요. 정보도 나누고 얘기도 하는 거죠. 부인이 어디 간다고 하면 집에 친구들 2, 30명씩 불러서 음식 해 먹어요.”

아리플 후세인 씨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알았다. 따로 배운 적은 없고 일하면서 알게 됐단다. 한국인 부인과 결혼해 큰 아이가 올 해 아홉 살이다.

전화벨이 울렸다. 통화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차’라고 하는 걸 보고 힌디어도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아차’는 힌디어로 ‘좋아’, ‘그래’라는 뜻). “힌디어는 기본이에요. 파키스탄 사람이 많아서 공부했어요. 영어는 조금, 필요한 만큼 할 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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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운터에 있는 주인에게 한국인이냐고 묻자 “토종 한국인이에요. 
메이드인코리아.”라는 재치있는 대답이 돌아온다.  오수현 주인장은
이 자리에서 10년째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 이재은



잉어부터 식료품, 세제까지 다양한 상품을 파는 ‘KABAYAN’ 주인장 오수현 씨. 어느 나라 손님이 가장 많은지, 장사는 잘 되는지 물었다.

“대중없어요. 인천은 아무래도 베트남 친구들 그리고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많아요. 최근에는 우즈벡이 좀 많아졌어요. 장사는 들쑥날쑥한 편이에요. 어떤 해에는 손님이 없고, 어떤 해에는 많고. 불법체류 단속이 심해지면 확실히 줄어들죠. 요즘에는 단속도 잘 안 나오네요. 얼마 전에 한 번 물갈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슈퍼는 쉬는 날 없이 오전 7시 반부터 밤 11시 반까지 연다. 문을 닫으면 “외국인 친구들이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사말 정도는 각국 언어로 할 줄 안다고 말하는 주인장은 “예전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여기 사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는데 요새는 잘 모르겠어요. 티를 내거나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라고 귀띔했다.

주인장과 몇 마디 나누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손님이 들고났다. 집에서 음식을 해먹어야 하는 주말에는 확실히 손님이 많다.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많이 먹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채소류는 1천원 단위로 소량 포장해 판다. 매장에는 여주, 고수, 레몬그라스 같은 채소와 하반채, 오리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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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BAYAN(Green Tel&Food)'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 이재은



장사에 방해되는 것 같아 더 물어보지 못하고 가게를 나오려는데 주인장은 “이 동네가 유명해지긴 했나 봐요. 요즘 들어 이것저것 물어보러 오는 사람이 많네요.”라고 전했다. 다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반증일까.


한편 인천외국인력지원센터 정지형 상담주임은 “(이 지역을) 다문화 거리라고 보기는 좀 어렵다”고 주장했다. ‘안산 등과 비교했을 때’ 규모나 상점 수가 적기 때문이다. 실제 안산 다문화 거리에는 한국어 간판보다 외국어 간판이 더 많다.

“이쪽에 이주노동자가 많은 건 사실이에요. 예전에는 회사에서 원칙적으로 기숙사를 제공했지만 정책이 바뀌어 요새는 노동자가 직접 숙식을 해결해야 해요. 공단에는 주거지역이 없잖아요. 영세기업은 공장 한쪽을 임대해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기숙사 짓기도 쉽지 않고요. 공단과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 주는 거죠. 서너 명이 한 방에서 지내는 경우도 많아요.”

다툼이나 사건사고는 없는지 물었다. “지난여름엔가 집단 패싸움이 한 번 있었다고 하는데 큰 싸움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특별히 문제가 생긴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곳을 ‘다문화 거리’로 지칭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문화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다문화’의 뜻이 퇴색되지 않도록 타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지역으로 자리 잡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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