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먹은 우리 황소뿔이 얇고 투명해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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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먹은 우리 황소뿔이 얇고 투명해서 좋아."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4.03.1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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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중요무형문화재 '소뿔공예' 화각장 이재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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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각은 왕족공예다. 왕족이 사용하다 돌아가신 다음에 같이 묻어준 문화다. 그러다보니 삭아서 없어진 경우가 많아 화각 유물이 많지 않다. 일반인한테도 두루 퍼진 문화라면 지역적으로 많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남동구 간석동에 작업실을 열고 있는 화각장 이재만씨(62)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다. 그가 일주일에 두세 번 출근하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그의 화각공예 이야기를 들어봤다.
 
 
- ‘화각공예’란 무엇인가. 또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나.
 
“‘화각공예’를 '소뿔공예'라고도 한다. 소뿔에 그림을 그려서, 뒤집어 붙인 거다. 소뿔은 얇고 투명한 걸 써야 잘 비춰져서 그림 그리기에 좋다. 암소뿔이나 젖소뿔은 못 쓴다. 암소뿔은 잘 구부러져 쓸 수 없고, 젖소뿔은 검어서 쓸 수 없다. 사료를 먹지 않고 풀만 먹은 우리 한우 황소뿔을 쓰는데, 그것도 3년생 뿔이 좋다. 3년 지난 소뿔은 늙어서 갈라진다.”
 
“황소뿔을 세 시간 정도 은근한 불에 삶아낸다. 이때 뿔 속에 찬 뼈와 살이 수축돼 빠지게 된다. 삶아낸 소뿔은 잘라낸 다음 한 달 정도 그늘에서 말린다. 여기에 먹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하고, 말렸다가 접착제를 발라 다시 말린다. 나무 뼈대에 붙일 때는 인두와 다리미로 접착제가 녹을 즈음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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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된 황소뿔로 만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채색해 작품이 완성된다.
 
 
“화각공예를 한 지 42년 됐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만화를 그렸는데, 그 이후에 이쪽으로 전향했다. 화각도 그림이 중요하게 이용되니까 일에 일관성이 있다. 내 스승은 고 음일천 선생이시다. 그 분은 조선시대 왕족공예 재연가로는 마지막 공예인이었다. 선생님이 1973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12년 배웠다.”
 
-소뿔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디에서 구하나.
 
“전국에서 모이는 마장동에서 주로 구입한다. 모든 것이 유통되는 중심지가 서울이기도 하고, 밀집도가 높은 곳이라 이곳에서 구한다. 인천에도 도축장이 있지만, 우리 황소뿔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화각공예 하는 사람은 거의 종합적으로 일을 꿰고 있어야 한다. 소뿔 선별도 잘해야 하고, 삶아서 가공하는 일도 해야 하고, 그림 그리는 화공도 해야 하고, 목공 일도 해야 하고… 채색작업도 하고, 옻칠작업도 해야 한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경우가 화각장이다.”
 
-집안 대대로 예술작업을 이어왔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는 단청을 하던 분이고, 아버지는 대목을 하면서 절을 지으셨고, 어머니는 자수를 하셨다. 집안이 문화재 일을 한 전통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인의 혈통이 이어진 것이다. 지금은 내 아들 둘도 내 일을 잇고 있다. 요즘은 가업으로 이어지는 게 많다. 맥을 잇는다는 게 남이 해서 이어지는 일도 많고, 자식이 대를 잇는 경우도 많다. 가족이 하는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봐온 것도 있고, 나름 도와준 게 있어서 그럴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늘 보고 들어 전수가 빨리 진행된다. 어려서 보고 배운 게 반일이다.”
 
“난 서울 뚝섬 쪽 성수동이 고향이고, 9대 토박이다. 우연찮게 인천으로 내려가서 산 지 벌써 26년 됐다. 집하고 작업실이 같이 있어서 편하다. 그래야 일하기 쉬운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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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화각에 그려진 이야기가 다르다.
 
 
-전통공예를 하니까 유물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 보존돼온 유물은 어느 정도이며, 많이 참고하는지 궁금하다.  42년 동안 한길을 걸어오면서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전통문양은 복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창안한다. 주로 사용되는 물건에 따라 이야깃거리가 달라진다. 사주함, 머릿장 등 소장자에 따라 문양이 조금씩 달라진다. 나이 드신 분한테는 장수하라는 십장생 그림이 들어가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화조도가 들어간다.”
 
“구매하는 층은 나이든 사람만은 아니다. 젊은 층에서도 많이 관심을 보여준다. 전에는 화각을 몰라서 나이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몰라서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체험교육도 하고 강의도 하고, 전시를 통해 보기도 하니까 많이 알려졌고, 일반인에게 관심이 많이 생겼다. 체험은 작은 소품을 만들어간다. 손거울이라든가 액세서라라든가… 화각을 만져보는 자체가 중요한 체험이 될 것이다.”
 
“화려할 화(華), 뿔 각(角), 화각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점이 일단 힘들었다. 화각장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니까, 개인이 만들어서 화각을 홍보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 따라 전시도 하고, 발표회도 많이 하다보니까 많이 알려졌다.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왕족공예이기 때문에 감춰진 걸 끄집어내기까지는 정말 힘이 많이 들었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지원 받는 일은 많은가. 예술가가 맘편히 작업활동에 몰두하려면 기본적인 생활은 보장돼야 할 것 같다.
 
“인천시에서는 지원이 없다. 나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을 약간 받는다. 인천에 살면서 작업을 하면 시에서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천시는 문화의식이 높지 않은 것 같다. 관에서도 지역문화재만 챙기지, 국가문화재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다보니 예술가들이 자꾸 지역을 벗어날 생각을 하게 된다. 전시라든지, 홍보라든지… 맞물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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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화각공예가 많이 알려져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인천시 문화재랑 전시를 하고 강의도 한 번 했다. 박물관 자체에서도 전통문화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하는데, 문화에 대한 의식이 너무 약하다. 우후죽순 지원을 해서 현찰을 달라는 게 아니라, 작품을 초대해서 전시를 한다든지, 유물을 한 점씩 복원할 수 있게 소장가치가 있는 걸 사준다든지 적극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 이런저런 부분이 해결돼야 지역이 문화적으로 수준높은 도시가 될 것이다. 엉뚱한 데 돈을 쓰면 안 된다. 인천에서 활동하면서 작업하면 홍보도 해주고 협조를 해주면 좋은데 그게 힘든 모양이다. 인천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남동구에서도 전혀 관심이 없다. 그나마 남구는 좀 관심이 있는 것 같더라. 문화를 살려야 한다고 말로만 떠들어서는 안 된다.”
 
-화각공예는 재료 준비도 해야 하니까 공정이 꽤 길 것 같다. 또 재료 준비가 돼도 작품이 완성되는 시간이 길 것 같다.
 
“작품을 하나 만드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뿔 선별하고 가공하는 것부터 시작하니까… 다른 분야는 있는 재료를 가지고 쓰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 손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면 금공예다 하면 금박도 있고 금가루도 있으니까 좀 절차가 줄어든다. 다른 분야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때까지 재료 준비하는 데 시간을 쓴다.”
 
“소뿔에 그림을 그려서 채색하고, 뒤집어 끼운다. 장은 지금은 못 짠다. 장까지 짜면 작업장 규모가 상당히 커진다. 나무도 잔뜩 쌓아놓고 말려가면서 해야 하니까 보통 일이 아니다. 몇 년이고 건조시켜야 좋은 나무를 얻을 수 있다. 예전에는 장석 붙이는 것도 다 했다. 지금은 목기 짜는 거하고 장석 만들어 붙이는 걸 다른 데 맡긴다.”
 
“주로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야 일을 할 수 있다. 시간을 잘 써야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작품 하나 하나 만드는 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그림을 그리고 채색하는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나. 같은 일을 계속하면 환기시킬 일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많이 본다. 역사는 나 혼자 이뤄지는 게 아니다. 우리 조상이 그 시대에 이룬 걸 봐야 한다. 그 시대에는 어떤 디자인과 도안을 썼고, 채색이 어떻게 됐나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비교도 할 수 있고, 유물에 대한 감정이 생긴다. 많이 보고 느끼는 게 늘 숙제다. 먼저 견문을 넓히지 않는다면 작업할 때 어려운 점이 많을 것이다. 발품을 팔아 유물도 보고, 살아있는 우리 문화도 봐야 한다. 그 시대에 태어난 분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많이 봐야 한다. 전국적으로 꼭 가봐야 하는 건 꼭 가고, 꼭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많이 봐야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작품생활에 많이 보는 건 아주 중요하다.”
 
-죄송스러운 질문인데, 손이 불편하다고 알고 있다. 주로 손으로 작업하는데 힘들지 않나.
 
“어려서 기어다닐 때 화로를 짚어서 불구가 됐다. 손가락 마디가 거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까다로운 일을 하니까 일을 하다가 다친 줄 안다. 어려운 과정을 짚고 해온 것이다. 다 손으로 하는 작업인데… 열 손가락 가운데 한 손가락이라도 감각이 뛰어나도 살 수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타자를 쳐도 열 손가락이 다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두세 손가락이라도 감각이 살아있으면 재능이 살아날 수 있다. 그림 그리고 만드는 걸 좋아해서 이 일을 결정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는 일부터 가공까지 다 하니까 힘들긴 하지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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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색에서 색깔을 만들어내는 화각공예는 화려하고 정교하다.
 
 
 
-작품 하나 하나가 다 화려하고 정교하다. 모든 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재원과 시간으로 이루어졌을 텐데, 작품 활동을 하면서 바라는 점은 어떤 것이 있나.
 
“오방색에서 색깔을 많이 만들어 쓴다. 원색에서 간색을 만들어 색깔은 낸다. 색에 대한 감각은 당연히 있어야, 다양한 색깔을 낼 수 있다. 색마다 느낌이 다 다르다. 파란 바닥일 때는 파란 색을 안 쓰고, 하얀 바닥일 때는 하얀색을 많이 쓰지 않는다. 빨간 바닥에는 빨간색을 피해서 가야 한다. 색을 만들고 칠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해서 한다.”
 
“가격은 일일이 쓰지 않는다.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꼭 돈이 있는 사람만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젊은 사람이 혼수로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결혼하면서 의미있는 걸 하나 소장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화각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든 작업인지 아는 사람이 구입한다. 물론 돈이 있어 구입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다.”
 
“예술가들이 예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전시를 해주고, 홍보도 해주고, 소장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면 사주고… 그래야 좋은 작품이 더 많이 나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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