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 김찬삼을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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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 김찬삼을 다시 만나고 싶다
  • 윤현위(자유기고가)
  • 승인 2014.03.27 17:4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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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컬럼] 윤현위 자유기고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는 것이 큰 호사이고, 남들에게 몇 년 동안 자랑거리가 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되면서 유럽이나 미국에 여행에 가는 일이 아주 흔한 일상의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미국, 유럽 가봤니가 아니고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하는 광고까지 등장하지 않았는가?
아마도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살던 곳을 일정기간 떠나서 새로운 사람들과 공간을 만나는 행위는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다. 좀 느끼할 수도 있는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하면 한국의 내가 아니라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그 곳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세계여행이 흔해졌는데, 그렇다면 초기 세계여행에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 누구일까하는 궁금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30대 중반 이상의 사람들은 혹시 집에 그 유명한 “김찬삼의 세계여행”이란 책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집에 15권 정도로 이루어져 있는 학생용백과사전과 더불어 김찬삼의 세계여행은 교육용으로 정말 많이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맞다. 김찬삼은 50년대 말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한 우리나라 여행의 선구자이자 지리학자이다. 김찬삼은 1926년 황해도 신천에 출생하였고 1950년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리학과를 졸업하였다. 1959년에 1차 세계일주 여행을 시작으로 1991년까지 무려 17차 세계여행을 다녀온다. 순 수여행기간만 14년이었고, 총160여개의 국가를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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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한 거리를 환산하면 지구를 32바퀴 돌 수 있는 거리라고 전해진다. 여행을 하지 않던 시기에는 세종대학교의 전신인 수도여자사범대학교와 경희대학교 지리학과에 재직하였고 대한지리학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리학자로 활동하기도 했다.그는 1953년부터 1958년까지 인천고등학교에 근무하기도 했고, 1973년에는 동산중?고교의 재단인 동산육영회의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이와 같은 인천과의 인연이었을까? 김찬삼은 2001년 영종도 중산동에 세계여행문화원을 건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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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일주 때 사용했던 자동차 
 
 영종도에 있는 세계여행문화원은 그가 평생 모은 1,800여권의 여행 가이드북, 화보집 200여권 등 2000권 이상의 여행관련 서적이 비치되어 있고, 그가 여행에서 사용했던 기구들과 각종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한 개인의 흔적을 넘어서 세계여행의 선구자가 남긴 발자취라는 점에서 후학들에게 넘겨주어야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여행의 개척자라는 점과 그가 남긴 기록들을 모아 놓은 곳이라는 점에서 지역적 차원에서도 장소자산으로 그 활용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7년부터 세계여행문화원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인천 시민 모두다 알다시피 2000년 이후에 추진된 경제자유구역으로 인해서 영종도에 공항 관련 시설 이외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하늘신도시라는 이름의 거대한 신도시가 계획되고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세계문화원 역시 이 계획구역 안에 포함되었고, 현재는 철거된 상태이다. 문화원을 운영하던 관계자에 따르면 세계여행문화원 부지는 2011년 LH공사 보상합의가 끝났다. 그 자리에는 현재 조성되고 있는 하늘신도시의 일부로 근린공원이 조성 중에 있다. 새로운 세계문화원을 조성하여 재개관할 계획을 현재는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시나 중구에서 이를 복원하거나 새로운 문화원을 건립하고자 하는 제안 같은 것이 있었냐는 물음에 없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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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삼이 남긴 저서와 사용했던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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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삼이 남긴 자료와 서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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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원의 입구가 아직까지는 남아있다.
 
김찬삼선생에서 직접 들을 수는 없었지만 선생은 왜 영종도에 문화원을 만들었을까? 2001년이면 인천공항이 개항한 해다. 그때부터 영종도는 세계로 나가고 세계가 들어오는 곳이 되었다. 서울의 관문에서 우리나라의 허브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어쩌면 영종도가 가지고 있는 입지적 특성을 그는 그렇게 읽은 것은 아니었을까싶다. 그런면에서 세계문화원은 영종도가 갖고 있는 특성을 더욱 빛낼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핸드폰으로 여행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여행사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시대다. 그러나 김찬삼은 세계여행의 초석을 놓은 여행가고 지리학자이다. 그가 남겨 놓은 저술과 정보는 이제 과거의 것이 되었지만 그것은 여행의 역사가 되었다. 인천이 고향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 인천에서 상징성이 큰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인천에서 활동한 인천이 낳은 인물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를 기념하고 흔적들을 보관했던 화려하지 않더라도 소박한 세계문화원을 다시 만들면 어떨까 싶다. 영종도는 인천공항이 만들어진 이후에 계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심지어, 카지노까지 들어올 준비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대규모의 위락시설과 호텔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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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세계문화원 부지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지역개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답은 아닐게다. 작은 공간에 기념관을 만들어주면 그나마 영종도에도 소중한 흔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인천은 도원야구장을 숭의아레나로 바꾸면서 80년 이상 사용한 야구의 흔적을 이미 지운 아픈 기억이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다시 영원한 세계인 김찬삼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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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직접 구입한 김찬삼의 세계여행, 현재는 출판되고 있지 않아서 중고로 구입했다.
마침 중고나라에 책이 나온 것이 있어 한걸음에 남양주까지 달려가 구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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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주 2014-03-28 10:23:05
아주 어렸던 시절.아버지께서 사오신 김찬삼교수님의 "끝없는 여로"를 셀수없이 보며 먼나라의 꿈을 꾸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사를 다니고 잃어버린 끝없는 여로.
지금도 가끔 가는 가까운 영종도에 있었다는 문화원을 꼭가보고 싶었는데
없어졌다는 말에 서운하기도 햇었습니다.
5~6년전 가까스로 구한 끝없는 여로는 어린시절의 꿈을 되새겨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익이 발생하는 개발과 더불어 문화가 같이 병행하였으면......
눈앞에 보이는 이익보다 중요한게 무엇인지 생각 해보아야 할것입니다.
한번 없어지면 되살리기 어려운것! 복원을 한다해도 공간,시간적 가치의 상실인데...

김종진 2014-03-28 00:39:08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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