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첫 소설집 낸 김금희 소설가
“그녀의 소설에서 아버지는 추락한다. 한 시대의 종언을 표상하는 이 상징적 화소는 공적 삶과 사적 삶의 분리가 결정적으로 되는 시기, 다시 말하면 생산에서 소비가 중심이 되는 사회로 꺾여지는 그 접속기를 날카롭게 반영한 바, 작가는 아버지 이후 자식들을 엄습한 위기를 정확하고 치밀하게 기록한다.” 이는 최원식 문학평론가가 김금희(35)의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창비) 뒷표지에 쓴 말이다.
김금희 소설가는 부산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인천으로 이사왔다. 김씨는 2009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가 쓴 작품에는 인천이 배경이 된 작품이 많다. 나이답지 않게(?) 버려진 것, 밀려난 것, 잊혀지는 것에 관심이 많은 그가 바라보는 인천은 어떠하며, 작품에 어떻게 나타냈을까. 벚꽃이 화사하게 핀 자유공원에 있는 어느 찻집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축하드립니다. 2009년에 <한국일보>에서 <너의 도큐먼트>로 등단하고, 5년 만에 첫 소설집을 내셨습니다. 작품집을 내놓은 기분이 어떠세요.
“부산에서 세 살 때 인천으로 올라왔습니다. 인천은 거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죠. 작가가 되고 연혁을 쓰면서 부산 출생이라고 썼지만, 부산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어요. 인천에서 초중고를 다 나오다보니 인천을 좀 아는 편입니다.”
“등단하고 5년이 돼서 책이 나왔습니다. 더 늦게 내는 분들도 있으니까, 5년은 적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3~4년 만에 내는 분도 많더군요. 저는 책이 나오길 무척 기다렸습니다. 작가가 되고 문예지에 발표는 했지만, 등단하고서 뭘하고 있나 다른 사람이 문예지를 사보기 전에는 알 수 없더군요. 문예지에 발표하는 일은 작가로서 존재하는 느낌이 좀 약한 것 같았습니다.(웃음) 물론 운이 좋아 계간 평에서 거론될 수 있지만, 너무 미미하고 희미합니다. 제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걸 평가받고 싶은데 그 통로는 막혀 있어, 책이 나오길 많이 기다렸습니다. ‘쟤는 뭔가는 하고 있는데…’ 하면서 궁금해하던 사람들한테 ‘실물’을 보여주고 ‘해명’할 수 있어 좋습니다.”
“계간지는 지면이 한정돼서 신인이 문예지에 발표할 기회를 얻는 일은 생각보다 힘든 것 같습니다. 저는 창비에 작품을 두 번 실을 기회가 있었고, 그전에 인천의 계간지인 <작가들>이나 <황해문화>에 실을 기회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중앙지에 작품을 실을 수 없던 시기에 그런 지면을 할애해주신 건 무척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신인이라 글 쓰는 패턴도 채 익히기 전인데, 청탁마저 끊기면 작가로서 존재감이 없다고 봅니다. 그랬을 때 인천에 있는 문예지에서 지면을 내줘 세 편 정도 쓸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던 시간들이 너무 힘들어서 무척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누가 물어보면 이 이야기를 꼭 합니다.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저 같은 작가한테는 인천의 문예지에 글을 실을 수 있는 기회는 힘을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글쓰기를 좋아하셨나요.
“이 질문을 받으면 열 살 때 새얼백일장에 나갔던 걸 꼭 말하게 됩니다. 외부 행사여서 그런지, 새얼백일장에서 입상한 일이 학교 선생님들한테는 눈에 띄는 일이었나 봅니다. 백일장 입상으로 ‘글짓기를 잘하는 아이’라고 인정 받았습니다.(웃음) 어릴 때 그런 일들이 글쓰기로 가는 중요한 시점이 되긴 했습니다. 인천에 있는 학생들이 그렇듯이, 성장하면서 새얼백일장에 한 번씩 나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새얼문화재단 측에서도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작품에는 인천 지역이 자세하게 나와서 독자로서 반가웠습니다. 목재단지 쪽을 많이 아시는 것 같던데요.
“어려서부터 가정동 쪽에서 거의 살아, 그 지역을 잘 알 수밖에 없습니다. 글을 쓸 때 가장 쓰고 싶은 곳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곳, 가장 의미있는 곳을 쓰고 싶었습니다. 거창하지만, 그 지역을 문학적으로 가져오고 싶었죠. 등단작을 쓸 때도 인천의 지명을 그대로 썼고, 그 다음 작품도 아예 주 배경을 오랫동안 살았던 목재단지 쪽으로 잡았습니다.”
“인화여고를 다녔는데, 제가 학교를 다닐 때는 시립화가 되고 2~3년이 지난 다음인데도 그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대부분 남아 계셨습니다. 시립화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라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이라는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재기발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막상 작품을 읽어보니, ‘신인’이라는 느낌보다는 글 전체가 안정되고 균형이 잡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제가 소설을 쓰는 방식이 약간 전통적인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 작가들은 등장인물이나 사건들에 대해 실험도 해보고 상상도 넣어서 글을 많이 씁니다. 그에 반해 제가 쓰는 방식은 약간 현실에 발을 붙이고 쓰는 편이어서 그런 평을 듣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대학교 때 읽었던 문학이 70년대 작품이고, 가까이 와도 90년대 문학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리고 있는 상이 약간 고전적인 형태인가 봅니다. 그렇게 나옵니다.(웃음)”
-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 와서 살고 계십니다. <아이들>에서 배경으로 목재단지가 나오고, 부산집을 떠올리면서 “여기도 바다 있어”라고 합니다. ‘여기도’라는 표현에도 그렇고, ‘정구지’ ‘가새’라는 말은 ‘남쪽에서 온 말’이라는 표현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정주와 이주 사이의 그 아슬아슬함이 생의 부력’이라고도 표현하셨는데,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자의 막막함을 많이 느끼시나요.
“가정오거리가 날아갔습니다. 제가 20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를 무너뜨렸습니다. 공교롭게 제가 등단하고 나서 몇 년 만에 그렇게 돼서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그런 식으로 그 동네가, <아이들> 배경이 거긴데 ‘밀렸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처음에 마을이 생길 때, 산중턱을 밀어내고 갑자기 만든 동네이긴 하지만, 제가 살던 아파트 주변은 시작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근데 무너뜨릴 때 보니까, 원래 근간이 없던 동네이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는 듯이 ‘밀어낸’ 거예요. 제가 그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1회 졸업생인데, 이제는 그 학교에 학생이 없겠죠. 도시라고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강탈해갈 수 있나,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도 그래서 쓰게 됐습니다.”
“신현동도 주공아파트 밀어내고, 밀고… 최근에 아파트가 다 들어섰더라구요. 며칠 전에도 그쪽을 지나가는데 뒤쪽이 청라여서 그런지 다 '밀리니까' 그 공간이 좁아보이더군요. 어렸을 때는 뭔가 모험이 있고 사람도 엄청 많이 다니고, 사람들이 갖가지 삶이 다 있던 곳인데 밀어내니까 공간이 너무 좁고 흔적이 없더군요. 가정오거리에서 자칫하면 길을 잃을 것 같았습니다. 이정표 자체가 없어졌으니까…. 기분이 안 좋았어요.”
“저는 이주자 2세인 셈인데, 최근 들어 드는 생각은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곳이라고 볼 수 있지만, 확장하면 내 가족이 태어난 곳이더군요. 저희 아버지가 부산토박이이신데 일자리 때문에 인천에 올라와 터를 잡으신 거죠. 명절이면 몇 시간씩 남쪽에 가서 친척들을 만난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경상도 분이라 고향은 말투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부산에 대한 기억은 없는데, 넓게 보면 가족에 대한 기원이랄까 그리움 같은 게 사실 있습니다.”
“작가가 되고 나서, 본적지를 찾으러 부산으로 혼자 나선 적이 있습니다. 작가가 되고서 고민이 많아지면서, 나는 어떻게 여기 와서 살고 있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파출소에 가보니 번지가 나와 있는 게 있어서 가봤더니, 집은 없어지고 교회가 있더군요. 누구나 자기 기원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을하는 것 같습니다. 인천에 살면서, 인천도 어찌보면 고향이고 기원인데 뭔가 너무 빨리 변하고 교체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고향과 닮지 않은 모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향에 대해서는, 나이든 세대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에도 그런 아쉬움과 슬픔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웃음)”
- <당신의 나라에서>는 우리 시대 막막한 젊은이들이 등장합니다. 카페에서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끝 부분에 관광객이 사라진 밤의 공원에서 사슴소리를 듣습니다. ‘사슴들의 얼굴이 슬픔에 차 있는지, 기쁨으로 빛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슴들의 몸체는 보이지 않고 눈동자와 진동만 있었지요. 하지만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낮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나라였지요.’ 여기서 ‘새로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요. ‘하지만 그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죠. 그건 마치 매미소리처럼 찌르르한 울림를 가진 소리가 들렸습니다.’ ‘믿는’ ‘울림’이 뜻하는 건 뭘까요.
“카페 안 풍경은 요즘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 소설 앞부분에서도 주인공이 새로운 나라에 대해 만화를 그려달라 했을 때, 결국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그 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떤지 알지 못했다고 시작합니다. 이 작품을 쓸 때는 여러 전망, 거창하게 말하면 전망에 대해 생각하던 때 썼습니다.”
“카페라는 공간은 젊은 세대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집에 있을 수는 없는데 뭔가를 하려고 하면, 이 도시는 많은 돈을 요구한다. 어디를 가서 밥을 먹어도 그렇고… 하지만 카페라는 공간은 오랜 시간 앉아서 뭘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모이는 젊은 세대들이 비슷한 이유로 모이지 않을까요. 공부를 하려면 도서관에 가서 해라고들 하지만, 도서관과는 다른 아주 미약한 연관이지만 사람들이 옆에 앉아서 얘기를 하는 공간에서 서로 미약하나마 서로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약간 폭력적이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위안을 받을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런 공간이 뭐가 있을까 하면서 사슴공원을 등장시켰습니다. 사슴공원이라는 것도 원래 사슴이 있고, 원래 신성시되던 공간이었을 때는 사람들한테 좋은 공간이었을 거라는 생각에서 지은 것 같습니다. 어떤 위안과 안락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현실 공간에서는 새로운 세계의 구체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약간의 기척으로라도 느낄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 그래서 작품 끝 부분에 사슴공원이 나왔고,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당신의 나라>에서는 상황이 아주 구체적이고 자세하더군요. 카페 안의 분위기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읽혀집니다.
“카페에서 오랜 시간을 있다보면, 김밥 먹으러 갈 때 가방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제 노트북은 오래된 거라 미련없이 갈 수 있습니다만, 많은 사람이 그런 고민을 합니다. 이중적인 거죠. 타인과의 미약하나마 연대하기 위해 카페에 나와 있지만, 오히려 그 연대가 불안이 될 수도 있고, 좀 복잡합니다.(웃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 <너의 도큐먼트> 작품에는 떠도는 아버지, 자살한 친구가 등장합니다. 제목을 ‘너의 도큐먼트’라고 지은 까닭이 궁금합니다. 또 인천이 배경으로 많이 나와, 읽는 데 현장감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글을 쓸 때 무엇을 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세대라든가, 그런 데서 글감을 찾아야 하는데, 제가 신인이다 보니까 과거 세대에서 글감을 찾는 것 같습니다. 과거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최종의 목적지 근처에도 가지 못한 세대이기 때문에 그걸 참고한 텍스트가 바로 윗세대가 됩니다. 갈등하는 세대를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비춰보다 보니까, 아버지 세대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 <장글숲을 헤쳐서 가면>에서는 아버지는 베트남에서 보고 들은 노래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를 부릅니다. 또 거대한 사학재단인 선인재단이 나오고, 칠십계단이 나옵니다. 또 화자는 ‘고3’입니다. ‘나무상자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기분이 들었다. 꽃 흔드는 바람잡이들도, 낡은 나침반도, 있는 힘껏 돌릴 방향키도 없이 시작한 초라한 항해였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어찌보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막막한’ 소시민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장글, 정글… 실제 가사가 장글이라고 나오고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그 노래를 부르진 않았지만 찾아봤습니다. 제가 태어나지 않은 때 나온 자료는 찾아봅니다. 가사가 재밌더군요. 야하고… 작품에 넣으면 재밌을 것 같아서 썼습니다.”
-작품은 막막함으로 끝나는가 싶지만, 대개는 긍정모드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화자가 고3입니다. 그 시절에는 몇 몇 장면이 제가 겪은 게 들어갔습니다. 거기 보면, 어쨌든 낡은 나침반도 방향키도 아버지 세대 것입니다. 그 시기에 저와 비슷한 또래들은 아이엠에프를 맞아 뭔가를 하려고 했지만 불경기와 침체기를 만났습니다. 왜 그런 상황이 왔는지 해석할 수는 없는데,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 거죠. 그 시절을 해석해보면, 새로운 항해를 시작해야 하는 시기였지만 누군가 환영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던 시기는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막막하면서도, 약간의 기대감이 있던 그 시기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릴리>에서는 가짜와 진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주인공과 친구는 당뇨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주인집에서 기름을 훔치고, 옷을 몰래 훔쳐다 입습니다. 처음에는 ‘가짜 꽃’인 우울치료제 릴리가 나오고, 끝 부분에서는 ‘가짜 눈’인 스티로폼이 나옵니다. 그런데 가짜와 진짜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서 꽃잎이 날리나, 노인이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면서, 그런 차이들이란 내게도 무척 사소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세상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담담함이 느껴졌습니다. 작가의 내공이 만만찮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담담한 내공(웃음). 대학을 졸업하고 편집자 생활을 7년 했습니다. 첫 직장을 그만둘 때가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는 시기였죠. 다들 열심히 일하고 애정을 갖고 일했는데, 그만둔다고 하면 당연히 다른 사람을 뽑죠. 그때 내가 교체 가능한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머리로만 알고 느끼지 못했는데, 이 사회가 요구하는 직업과 직업인, 그 형태가 수없이 교체가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썼습니다. 또 출판사 직원들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 많았어요. 합정 주변이었는데, 주거시설이 상업시설로 침략 받으면서 갈 곳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전 세대를 인식하는 게 있는데, 그 사람들이 타도의 상태든 계승의 상대는 우리가 받아올 수 있는 좋은 지점들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작품에서 주인공이 기름을 훔쳐오고 화려한 옷을 입지만 최종적인 위안은 되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 아가씨들을 배려와 인정으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작품에서는 도둑질이나 허황된 사치 등, 외형에 대해 지나치게 포장을 해도 그 나이 때 가질 수 있는 걸로 그대로 봐주고 인정해줍니다. 기름을 가지러 2층에서 몰래 내려오고 옷을 가져가도 그대로 봐주던 노인이 있죠. 그런 품, 그건 배려와 인정이 아닐까요. 그런 노인의 마음과 품이 있으니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게 쉽고 괜찮지 않을까요. 이 도시에서 떠있는 사람들처럼, 하나의 기호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런 것에 대한 자의식이나 두려움을 껴안으면서도 개인적인 삶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진짜가 몇 퍼센트이고, 가치가 얼마인가 하는 틀에서 벗어나서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 <사북(舍北)>은 <드라큘라>가 나오는 배경인 ‘어둠침침한 성’과 대비시켜 놓으셨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산비탈, 험준한 절벽, 기암괴석과 깊은 골짜기’라는 표현도 나오고, 돈을 잃은 배고픈 사람들이 ‘혓바닥을 달콤하게 적시지만 설사와 복통으로 이어지는 공짜음료를’ 먹으며 사북을 헤매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또 딸의 아이가 돌잔치를 하는 곳이 ‘회기’로 나오는데, 여기서 ‘회기’는 ‘회귀’를 뜻하나요.
끝 부분에 주인공은 동굴 안에서 ‘은하수를 등지고 선 돌들을 바라보았다. 눈코입이 모두 지워져 알 수 없는 그것들이야말로 그들의 진짜 얼굴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진짜’는 무엇일까요.
“네에, 회기가 연상이 될 수도 있겠네요. 생각지 못하고 썼는데, 아마 무의식중에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북은 다른 데 갔다가 들렀습니다. 카지노도 경험상 갔는데,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외국영화에서 본 카지노의 느낌은 화려했는데, 사북에서는 노동자의 이미지였습니다. 자기 자리가 다 있더군요. 돈을 딸 거라는 희망은 없는 듯 보였고, 심지어 화면을 보기 지겨워 만원짜리를 붙여놓기도 했고 동전 넣는 데는 이쑤시개를 꽂아놓기도 했더군요. 상상한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이런 오락도 자본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건데,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이미지로 있는 데 놀랐습니다. 예전 탄광도시였을 때 가보지 못했지만, 도시가 아마 그때보다 참혹하게 변했을 것 같더군요. 이후에 다시 갔을 때 식당 아줌마가, 사북은 아주 이상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런 데서 착안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지나치면서 진짜 얼굴이 뭘까 궁금했습니다. 지금은 회로에 갇혀서 떠나지 못하지만, 그 회로에서 꺼내올 수 있으면 그 사람들이 원래 살고 싶었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얼굴일까… 두루두루 궁금했습니다.”
“<드라큘라> 텍스트는 재미나 흥미로 넣었지만, <드라큘라>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심장을 찔렀을 때 행복해한 표정에 대해 떨떠름하게 생각했습니다. 교화의 방식으로 그런 구원이 가능할까, 오히려 그런 것도 없이 인간 본연의 무표정한 모습을 획득할 때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감정노동하는 사람들처럼 특정한 감정과 표정을 요구하는 일을 하는데, 그런 것들이 모두 삭제돼서 무표정한 나를 유지할 수 있을 때 개인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 작품 전반에 걸쳐 지나간 것, 잊혀진 것, 밀려나간 것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느껴집니다. 평소에 그런 쪽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그런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오는 편입니다. 화려하고 예쁜 것들은 볼 때만 좋고 생각으로 남지는 않습니다. 이 카페에 들어오는데 어떤 할머니가 “질경이 나물이 없네. 나는 질경이 나물이 먹고 싶은데 왜 질경이가 없지” 하시더군요. 그런 광경을 보면 오랫동안 마음에 남고 촉촉해집니다. 애늙은이처럼 항상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것들이 많은 편이라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일단 단편작업을 한 권으로 묶어내면서 과거를 해석하는 걸 점검했다고 봅니다. 이제는 현재나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서 단편을 더 써야겠습니다. 장편 구상은 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많이 쓰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틀을 잡아갈까 합니다.”
“책은 많이 읽는데, 영화는 마니아처럼 보지는 않습니다. 그냥 보죠. 책도 제 소설을 쓸 때는 읽히지 않고, 작업이 끝나면 읽힙니다. 집에서 작업을 하기보다는 인하대 근처, 송도, 신포동, 구월동 등등 주로 카페에서 주로 합니다. 서너 시간을 집중해야 하니까 몸이 힘듭니다. 집에서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집중이 안 되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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