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시] 진혼곡조(鎭魂曲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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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시] 진혼곡조(鎭魂曲調)
  • 문계봉 시인, (사)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 회장
  • 승인 2014.04.2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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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혼곡조(鎭魂曲調) 
 
 
문계봉 시인
 
 
 
기억하마. 아들아, 딸아. 꽃 피는 봄날, 너희는 그렇듯 지고, 채 피지 못한 너희의 꿈들이 아우성치는 진도 앞바다, 미처 눈물 흘릴 틈도 없이, 도둑처럼 찾아든, 그 매정한 물결 너머로 부표(浮漂)처럼 떠다니는 너희의 마지막 웃음소리. 기억하마. 멈춰진 시간과 함께 수장된 너희의 꿈, 너희의 노래, 너희의 환한 인사. 기억하마. 이후로 오랫동안 못난 아비들의 무심한 일상 위로 질기디질긴 환청으로 흐를 너희의 절규, 너희의 원망, 야속해하던 눈빛, 기억하마. 꽃은 져도 뿌리 근처에 머문다지만, 그러나 너희는 결코 용서하지 마라. 어른들의 탐욕과, 어른들의 안일과, 어른들의 나태와, 어른들의 무관심과, 너희의 화사한 희망을 시샘한 ‘세월’의 용렬(庸劣)을 결코, 결단코 용서하지 마라.
 
다만, 아들아, 딸아. 못다 부른 노래, 차마 못한 이야기는 너희가 살던 곳, 꽃과 나무와 새들이 마저 하고, 너희 눈이 닿았던 모든 사물들이 대신하리니,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 치욕의 땅, 어른들의 세상에 미련 갖지 말고 부디 편히 가거라. 가서 편히 잠들고, 봄, 가을의 꽃으로도, 여름날의 빗방울로도, 겨울날의 바람으로도 다시는 이곳을 찾지 말거라. 내 너희를 위하여 짧은 노래를 지어 부르니, 탐욕과 안일과 나태와 무관심이 만무(萬無)한, 너희의 꿈들이 오롯한 꽃으로 피어날 그곳, 멀고 먼 하늘 길 쉬엄쉬엄 가면서 노래를 불러라. 뒤돌아보아선 안 되느니.
 
 
 
근조 국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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