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도서관에서 <대중일보>를 원본을 만나다
상태바
미추홀도서관에서 <대중일보>를 원본을 만나다
  • 이희환 대표
  • 승인 2014.05.23 0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in-인천일보 협약] 인천문화사의 산실, 시립도서관
대중일보 원본을 살펴보는 조우성 인천일보 주필.jpg

지난 수요일 인천의 대표도서관인 미추홀도서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인문독서 아카데미’ 공모에 미추홀도서관이 신청한 “한국사 속의 인천” 강좌가 선정되어, 10개의 강좌를 맡은 선생님들과 도서관측이 강좌 진행에 대해 처음 만나 의견을 나누기 위해 찾았다. 게으름 탓에 간담회에는 참석치 못하고 점심 식사를 마치고 미추홀도서관의 수장고를 보여주신다는 말에 미추홀도서관의 수장고 안을 처음 들어가 보는 기회를 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예전 율동목에 위치했던 인천시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일서와 고신문자료를 비롯한 각종 희귀자료들이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


2009년 6월 23일 개관한 인천광역시미추홀도서관은 중구 율목동에 위치했던 옛 인천시립도서관의 역사를 이어받은 인천의 대표도서관이다. 율목동에 위치했던 인천시립도서관은 식민지시대인 1921년 11월 1일 지금의 자유공원에서 개관한 인천부립도서관의 역사를 이어받은 도서관이다. 인천부 당국은 개항 당시 각국조계의 퍼블릭가든이었던 각국공원을 일본식공원인 ‘서공원’으로 바꾸면서 1884년 인천 최초로 건립된 세창양행 사택을 청광각(淸光閣)이라는 음식점이 사용하던 것을 매입해 인천부립도서관을 만들었다. <인천부사>를 보면 개관 당시 인천부립도서관은 장서 900권을 갖추고 문을 열어 연간 일본인 1,242명, 조선인 550명이 이용하는 도서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이용자가 크게 늘자 1941년 4월 신흥동2가 221번지의 구 경성지방법원 인천지청을 개수하여 확장·이전했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아 임시휴관에 들어갔다. 해방 직후의 혼란이 정비되면서 인천시립박물관과 함께 인천시립도서관이 다시 문을 연 것은 1946년 12월이었다. 밤나무골이라고 부르던 율목동 242번지에 있던 구 일본인 별장을 개수하여 율목동 시립도서관시대가 문을 열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천시립도서관은 한국근대사의 여러 귀중한 문헌자료들을 전쟁의 포화로 잃어버렸다. 망실한 장서의 수가 무려 5,000여 책에 달했다고 하니 커다란 지적 손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와중에 무기휴관을 하다가 1952년 10월에 이르러 도서관은 다시 시민들에게 열람을 재개하기에 이른다. 망실된 자료 5,000여 책에 비하면 크게 부족한 것이지만, 미국공보원 인천분원이 소장하고 있던 영서(英書) 1,000여 책을 수증받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도 그나마 도서관을 지키고 키우게 된 것은 이경성(李慶成), 유희강(柳熙綱), 고일(高逸), 구연하(具然夏), 최성진(崔星鎭), 김인배(金仁培), 김영태(金永泰) 선생과 같은 여러 관장님들의 노고와 관원들의 성실 덕분이겠다. 이후 율목동 시립도서관은 인천의 도시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성장을 거듭하여 인천 출신의 많은 지식인 학생들에게 지적 영양분을 공급하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미 성장년의 연배에 오른 인천인에게 분홍색과 노란색의 좌석권을 쥐고 긴 줄을 기다리던 율목동 시립도서관은 학창시절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자락으로 남아 있다.


옛시립도서관.PNG
1970년대의 율목동 인천시립도서관 본관

고등학교 수험생으로 드나들던 율목동 시립도서관이 새롭게 다가온 건 대학원에 입학하여 연구자가 된 이후였다. 1990년대 초반 당시 율목동 시립도서관은 고서 1,148권과 외서 3,540권을 포함하여 장서 십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었다. 외서 가운데는 1922년 개관 이래 소장하게 된 일본서적들이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다양한 원본 자료들이 많았다. 새로운 자료를 찾아 율목동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학계에 보도되지 않는 희귀자료를 찾아 논문으로 인용하고 소개할 때의 희열이라니! 신문자료실에는 해방 이후 인천에서 나온 지방지들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발간된 <대중일보>을 발견하고 그 창간호의 유명한 프로시인 임화(林和) 창간 축사를 발견하고 읽어내려 갈 때의 흥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당시 율목동 시립도서관은 시설도 너무 낙후했을 뿐만 아니라 공간도 너무 부족하여 많은 책들이 그야말로 정리되지 않는 채 폐기처분될 날만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인천시에서 구월동에 미추홀도서관을 크게 짓고 수장고를 갖춰 율목동 시립도서관의 장서들을 모두 이전해갔던 것이다. 십수 년만에 율목동 시립도서관 장서들을 미추홀도서관 수장고에서 만난 희열도 잠시, 세간에 이전과정에서 많은 장서들이 유실됐을 뿐만 아니라 국내 유일본이라 할 수 있는 <대중일보> 원본도 찾을 수 없다는 풍문이 있어, 함께 방문한 조우성 인천일보 주필님과 함께 <대중일보> 원본부터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비록 제본이 해체된 상태였지만 비교적 양호한 <대중일보>의 원본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인천이 유네스코가 선정한 ‘2015년 세계책의 수도’로 선정됐다고 한다. 인천이 과연 ‘세계책의 수도’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출판, 독서문화를 갖추고 있는가? 화려한 이벤트에 앞서 내실을 다지는 노력이 절실하다. 우선, <대중일보>부터 영인본을 만들어 연구자들이 좀 더 쉽게 연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으면 한다. 뿐만 아니라 미추홀도서관 수장고 안에서 고요히 숨 죽이고 있는 역사의 유산을 널리 공유하는 일부터 착수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