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용, 유년의 고향 인천에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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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용, 유년의 고향 인천에 돌아오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06.08 19:07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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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방송 '행복한 10시' DJ, '특색있는 방송' 만들고 싶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콧노래를 부른다. 가사만 봐도 저절로 멜로디가 흥얼거려진다. 80년대 최고 인기곡이었던 이용의 ‘잊혀진 계절’. 30년도 더 된 노래지만 여전히 찬바람이 불면, 10월이 되면, 우리는 크고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불후의 명곡’을 들을 수 있다.


이용이 고향 인천에 돌아왔다. 정말 80년대 가수왕 이용 맞아? 나이는 묻지 마시라. 그는 젊고, 여전히 에너지가 넘친다. 가수로 또 디제이로 활약하면서 ‘잊히려야 잊힐 수 없는 전설’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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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이용이 ‘행복한 10시, 이용입니다’ 진행하고 있다. ⓒ 이재은


이용은 중구 송학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자유공원과 그 일대는 눈 감고도 지도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벌써 사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그 주변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새로 생긴 건물도 허물어진 것도 없다. 다만 깨끗하고 예뻐졌다.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세 살에 인천에 왔고, 축현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갔지만 이용에게 인천은 각별하다. 누가 뭐래도 이용의 고향은 벚꽃과 아카시아가 흩날리던 자유공원과 친구들과 뛰어놀던 팔각정, 홍예문, 차이나타운, 하루 한 번 헬리콥터가 이착륙했던 맥아더동상이 있던 언저리다. 월미도와 작약도에도 자주 갔다. ‘옛날 송도’에서 물놀이도 많이 했다.


가족이 살던 집도 아직 그대로 있다. 언젠가 ‘공인’의 특권으로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부에 들어가 봤다. 화장실이 재래식에서 현대식으로 바뀐 걸 빼면, 거의 예전과 똑같았다. 고향에 대한 향수, 어린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 왔다. 그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경인방송 iFM 90.7MHz

‘행복한 10시, 이용입니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꽤 오래 전부터 고향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침 DJ 자리가 있다고 해서 흔쾌히 승낙했다. 가수(연예)생활 34년. 그 기간에 이런저런 방송 경험도 많이 했다. 미국 살 때, 음대에 다니면서 4년 가까이 한인방송을 진행했다. 1(one)-MC로 자유롭게,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이끌어갔는데 지금의 경인방송 스타일이 그때와 비슷하다.


“저, 이용을 존중하고 믿어준 것 같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필라델피아 템플 대학에서 음악 공부하면서 하루에 2시간씩 교포 방송을 했어요. 기술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방송은 큰 차이가 없어요. 다만 한국 방송은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일반적이에요. 방송에서 욕만 안 하면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데 정적으로만 하려고 하면 발전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새로운 걸 원하거든요. ‘이용, 방송 잘하네’보다 ‘이용이 하는 방송은 특이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지난달 12일 경인방송은 ‘제2의 개국’ 수준으로 프로그램을 개편했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이용이 ‘행복한 10시, 이용입니다’를 진행하고, 한국 최고의 로커 박완규도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박완규의 희희낙락(RockRock)’에서 마이크를 잡는다.


‘행복한 10시, 이용입니다’는 자리를 금방 잡은 편이다. 이용은 “자신의 방송 순발력과 안병진 피디의 뛰어난 선곡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안병진 피디는 ‘저 나이에 어떻게 저 많은 곡을 알까’ 싶을 만큼 최신 음악, 예전 음악 할 것 없이 폭넓게 노래를 소개한다.


“피디랑 디제이는 노래 취향이 맞아야 하는데 너무 딱 맞아. 찰떡궁합이에요. '이 노래 뭐 하러 틀지?' 한 적도 없고 '이 노래는 왜 안 틀지?' 한 적도 없어요.”


방송 중에 청취자들이 보내는 문자메시지 양만 봐도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오전 프로그램에는 많아야 5, 60개 정도가 오는데 이용이 진행을 맡은 후로 300개 이상의 메시지가 쏟아진다. 네다섯 배 많은 숫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꼬박꼬박 출근해서 생방송 하고 토, 일요일은 녹음 방송을 내보낸다. 생방송 할 때는 ‘보이는 라디오’도 함께 하기 때문에 헤어스타일과 의상에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내일모레면 환갑’인, ‘세 달 전 첫 손녀를 본’ 젊은 오빠 이용은 매일 텔레비전 방송 수준으로 옷을 챙겨 입고 온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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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이용과 안병진 피디 ⓒ 이재은



첫사랑,

그리고 당돌하게 들이댄(?) 중2 여학생 청취자


“첫사랑이 인천여고 학생이었어요. 서울 휘문고 재학 중에 친구들과 만리포에 놀러갔는데, 거기서 그 여학생을 만났어요. 얘기하다 보니 인천에서 온 친구였고, 이것도 인연인가 보다 했죠. 나이는 동갑이었는데 저는 2학년이고, 상대는 3학년이었어요. 인천여고는 고3인데도 놀러 다니고 그래? 하면서 놀렸더랬죠. 손 한 번 안 잡아보고 4년을 만났어요. 서울과 인천을 오가면서요. 결혼하고 토론토로 이주해 잘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인천과의 끊이지 않는 인연을 언급하며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더니, 조금 후에는 언제 그랬냐 싶게 손녀 이야기로 넘어간다. 미국에 사는 며느리가 보내준 손녀 사진을 보는 게 요즘 가장 큰 낙이라지만, 그는 천상 가수다. 새로 시작한 라디오 방송이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평일 오전에는 경인방송에 출근하고, 오후에는 가수활동 등 외부 스케줄이나 열린 음악회 준비, 백화점 공연 등을 한다. 일주일에 세 번은 라이브카페에서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른다.


“그날도 오늘처럼 공휴일이었어요. 방송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휴일에도 나와 생방송을 했거든요. 평일에는 주로 주부들이 연락을 하는데 그날은 고3학생이 ‘아저씨 때문에 밥을 굶고 있어요. 엄마가 라디오 듣는다고 밥을 안 차려줘요.’ 라고 메시지를 보낸 거예요. '누구 어머님, 티비도 아닌데 밥 차려주면서 라디오 들으세요~'라고 멘트를 하고 하루에 1장씩 나가는 외식상품권을 줬죠.”


그런데 5분도 안 돼서 “저는 여중 2학년인데요, 우리 엄마는 더 심해요. 밥도 안 주고 아예 저를 쳐다보지도 않아요. 저도 식사권 한 장 주세요.” 하고 연락이 왔다. 이용은 ‘아무래도 수상한데? 거짓말 아닐까?’ 의심하면서 전화 통화를 해서 맞으면 (식사권은 하루에 1장밖에 안 되니) 직접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전화 연결을 시도했더니 정말 중2 학생이 메시지를 보낸 게 맞았다. 여학생은 당돌하고 당당하게 물었다. “약속대로 밥 사주셔야죠?”


고급스러운(?) 중국집에 데려가려고 했지만 일요일이라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근처 생태찌개 집에 갔다. 학생과 같이 온 엄마는 옷맵시에 신경 쓴 티가 역력했다. 여학생은 생태찌개를 처음 먹어본다고 하면서도 맛있게 잘 먹었다. 이용은 휴일만 되면 그 여학생 생각이 난다. 헤어질 때 “저 아저씨 방송 팬 할게요.” 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가끔 문자메시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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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P 대전은 이런 식으로 합니다”(왼쪽), 12집 음반 자켓 사진(오른쪽) ⓒ 이재은



‘LP 대전’과

일요일에 듣는 세상의 모든 1집, ‘판타스틱 데뷔작’


'LP 대전'이라는 꼭지가 있다. ‘보이는 라디오’를 통해 LP 음반 두 개를 소개하고 투표를 해서 그 중 한 음반을 듣는 것이다. 투표에 참여했지만 자기가 원하는 곡을 듣지 못한 청취자 중 한 분을 선정해 선물도 준다. LP 세대로 노래에 얽힌 추억이 있는 사람이나 턴테이블에서 흐르는 노래를 그리워하는 분들에게 호응이 좋다.


일요일에는 가수들의 ‘판타스틱 데뷔작’, 1집 앨범 듣기 코너가 마련된다. 기실 음악사에서 명반 반열에 오른 앨범 중 절반 이상은 모두 1집이었다. 산울림, 들국화, 봄여름가을겨울, 어떤날, 김현철, 변진섭, 유재하 등 수많은 뮤지션들의 데뷔작은 그야말로 ‘판타스틱’했다. 매주 남녀 가수를 한명씩 선정해 앨범 소개와 함께 서너 곡의 노래를 듣는다. 앞으로는 가수를 직접 스튜디오에 초청해 데뷔 당시 이야기를 듣는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다.


▲ 생방송 중인 스튜디오에 들어가 사진을 찍다가 기자도 그날 방송에 깜짝 (목소리)출연했다. ⓒ 이재은



철들지 않고,

젊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아요?


포털 사이트에 ‘이용’을 검색하면 네덜란드에서 대학을 다녔다, 경기대 행정대학원에 다녔다는 이력이 뜬다. 그는 네덜란드에 가본 적이 없고, 경기대는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른다. 58년생이라는 정보도 엉터리다. 그는 56년도에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은 연극영화과가 아니라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이건 ‘풍문으로 들었지’라고 웃어넘기려야 넘길 수 없는 오류다.


1985년부터 2000년까지, 약 15년 동안 그는 방송생활을 하지 않았다. 불러주지 않았고, 나가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알 만한 사람은 다 그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가수생활 한 지 4년도 안 돼 생긴 일이었고, 그는 큰 기복을 겪었다. 그의 미국행을 누군가는 ‘도망’이라고 표현했지만 이제와 그에게 사실과 진실을 따져 묻지는 않았다.


이후 오랜만에 무대에 올라 그가 부른 노래는 ‘후회’. “우리 사랑이 식었다지만/조금도 변한 게 없어/시간이 흐르며 나의 실수를/조금씩 느끼고 있어” 사람들은 노래 제목과 가사를 한 남자로서, 한 개인으로서의 ‘이용’을 떠올리면서 들었고, 어쩌면 그도 그걸 의도했는지 모른다. 돌고 돌아, 많은 시간이 흘러, 그는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섰다. 가장 사랑하는 자리,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작은 무대, 노래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올해 초 이용은 12집 음반 <눈물로 쓴 이야기>를 발표했다. 타이틀 ‘눈물로 지울 거예요’는 이용의 대표곡 ‘잊혀진 계절’을 연상케 하는 발라드 곡이다. 이용이 노랫말을 썼고, 작곡가 신재동이 멜로디를 붙였다. ‘잊혀진 계절’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흘렀다면 ‘눈물로 지울 거예요’에는 바이올린 음색이 매력적으로 깔려 있다.


한 번뿐인 인생, 다른 사람이 꾸민 미래를 대신 살 수도, 나와 어울리지 않는 꿈을 좇을 수도 없다. 어설픈 충고나 섣부른 오해에 연연할 필요 없이, ‘자기대로 사는 것’이 멋있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남자는 죽을 때나 철이 난다는 말이 있거든. 나는 그 말에 동의해요. 남자는 수놈인데, 철이 일찍 나면 숫기가 없어져. 철 좀 없이, 사회규범만 잘 지키면서 젊게 사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10시면, 경인방송 iFM 90.7MHz에서 철들지 않은 영원한 '젊은 오빠' 이용의 활달하고 친근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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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2014-06-27 21:46:06
기사가 참 진솔하네요..옆집 오빠 같은 편안함도 묻어 나구요..요즘은 행복한 10시 이용입니다..잘 듣고 있어요 방송 듣다 보면 금방 점심 시간이 다가와요 방송도 참 잘하시네요..^^*

장덕윤 2014-06-13 15:25:33
이 기사는 다시봐도 참 좋아요 ㅎㅎ

정현숙 2014-06-10 23:49:29
이용오빠 흘러온 얘기 정말 감동 이고 서민적이고 넘 순수하신것 같슴미다 매력있넉요?사랑함미다

백승한 2014-06-10 19:00:39
이용씨의 활약 기대해봅니다 예전 여러차례 방송진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부모님은 왜 아침마당 안나오시냐 묻는데어찌 답해야할지요

이용짱 2014-06-10 15:14:06
전 방송 보고 이용님 팬 됐지 뭐에요. 방송이 여타 방송들과는 달리 통통 튀는 재미가 있어요.
그 디제이가 이용님이라서 더 놀랐지요. 앞으로도 방송 열심히 시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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